저출산: 지배계급이 해결 못하는 문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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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뉴스캡쳐

이 글은 20년 동안 약속하고도 지배계급이 해결에 실패한 문제들을 정면에서 다루는 연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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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투자기간을 줄이는 정책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 등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 시간을 합리적으로 투자할 줄 아는 인재를 뽑는다는 것을 고용시장에 알림으로써 불필요한 스펙 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고 지원자와 기업 간 탐색과 매칭이 일어나는 연령을 낮출 수 있을 것임. …… 마지막으로,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함.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음.

2월 24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제13차 인구포럼’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을 발표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약 10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에 따라 출산율 제고를 위해 8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2016년 합계 출산율은 7년 전 수준이자 OECD 최하위권인 1.17명이었다. 위의 보고서는 이렇게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불필요한 스펙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하향선택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돌린 것이다. 작년 12월 29일 행정자치부가 출산을 장려하겠다며 243개 지자체별로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집계한 ‘가임기 여성 분포지도’를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임신 가능한 나이의 여성이라면 마땅히 임신, 출산을 해야 함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거센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이 사과문을 게시했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했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사퇴했으며, 행정자치부 역시 하루만에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고 수정 공지문을 게재해야 했다.

[출처: http://www.jeongu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47]

그런데, 물론 박근혜 정부가 저출산 현상에 대해 여성의 임신출산결정권을 존중하는 관점, 성평등한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의아해진다. 여성을 권리를 가진 시민이 아니라 출산 기계로 바라보는 자기들의 속내를 조금 숨기거나 도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성들의 반감만 키우는 이런 노골적인 정책이라도 내놓아야 할 정도로 그들이 조급해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 지배계급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공통점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새로마지플랜 2010)을 발표한 이래로 2010년과 2015년에 각각 제2차 계획과 제3차 계획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성은 바뀌지 않고 계승되어 왔다.

첫 번째 방향은 보육을 시장화하여 자본이 이윤을 창출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아동 수 대비 30% 확충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는 아예 ‘자율형 어린이집’과 같은 민간보육 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무상보육’을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성을 추구하던 민주당의 정책 역시 양적인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질적인 차이점은 없었으며 정작 중요한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에 대해서 침묵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4만 2,517곳 어린이집 중 국공립어린이집은 2,629곳으로 6.2%에 불과하다. 그리고 작년 12월 언론 기사에 따르면 “내년도 보육 예산 중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2016년 302억 3,400만 원에서 2017년 223억 7,000만 원으로 78억 6,400만 원이 줄었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해마다 감소 추세다. … 반면 기존의 민간어린이집을 활용한 공공형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공공형어린이집은 이름만 ‘공공형’일 뿐 사실상 민간어린이집을 지정해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2013년부터 0~5세 영유아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경우에는 보육료 지원, 가정양육에 대해서는 양육비 지원이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실시되어 왔지만, 이는 “비용만 제공한 시장화 전략”이었다. 2016년 7월부터는 그마저도 후퇴하여 “맞벌이가정 등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가구의 경우만 기존 12시간(7:30~19:30) 종일반을 이용하게 하고, 그 외 전업주부가 아이를 돌보는 경우는 6시간에 월 15시간의 긴급바우처를 추가 제공하는 형태의 맞춤반을 이용하도록” 하는 ‘맞춤형 보육’이 실시되었다. 당장은 고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곧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교육, 훈련 등 준비를 해야 하는 여성들은 ‘전업주부’라는 이유만으로 육아 부담을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업주부’인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여성들이 비정규직 파트타임 일자리에라도 빨리 취업을 하도록 만들어서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는 두 번째 방향과도 관련이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던 2005년부터 삼성경제연구소는 ‘낮은 고용률-현상과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여성 등 비경제활동인구의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을 위한 “일과 가족을 조화시키는 근무형태, 즉 탄력적 근무시간제와 파트타임 등의 고용형태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이를 따라 노무현 정부 역시 “‘출산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위해 양질의 파트타임 근로 모델 개발·보급’, ‘기업에 대한 지원책 마련’, ‘문화산업분야 등 여성전문 인력 양성 체계 추진’으로 이어지는 … 노골적인 노동유연화 전략”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유연근로제, ‘퍼플잡’, 박근혜 정부의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 역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이렇게 2005년부터 마련되어 온 여성 고용률 제고 정책을, 다른 말로 하면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화 정책을 계승했던 것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들어 “이제는 낮은 임금 수준의 시간제 일자리가 곧 여성 근로자로 여겨지면서 여성 근로자의 고용형태가 시간제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한다. 비정규직화의 명분으로 제시되는 ‘일-가정 양립’이라는 슬로건은 훌륭해 보이지만, 이것을 여성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일-가정 이중부담을 지는 게 마땅하다는 성차별적 시각을 반영한다.

이런 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보육의 시장화와 여성 비정규직화라는 두 가지 정책 중 어떤 것도 출산율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정책들은 노동계급의 삶을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며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불리는 역할을, 그래서 저출산 현상을 보다 심화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자본가계급은 풀 수 없는 딜레마

저출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민중은 일자리가 아예 없거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직장에 고용되어서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심지어 토지와 주택조차 상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주거조차 안정적으로 마련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를 원하는 사람들조차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방식 자체가 임신, 출산과 충돌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착취가 존재하고 노동강도가 높더라도 생산과정, 노동과정 자체는 상당 부분 직접생산자들 스스로의 통제 하에 있었기에  임신, 출산의 필요가 생산과 충돌하지 않았다. 예컨대 중세 봉건 경제 시기에도 여성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월경, 임신, 수유 등의 이유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없었다. 여성은 아직 남성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열등한 노동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노동자들로부터 생산과정, 노동과정에 대한 이러한 통제권을 빼앗아갔다. 매뉴팩처 단계에서 기계제 대공업으로 이행하면서 노동자들은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서 노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제 예컨대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수유 등의 이유로 쉬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그 필요를 전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처럼 충족시킬 수 없다. 자본가는 굳이 임신한 여성 노동자를 위해 기계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충분한 출산 휴가를 유급으로 주거나, 수유 시간을 중간 중간에 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를 선택한 여성 노동자는 자본의 입장에서 남성 노동자보다 쓸모가 없을 수밖에 없으며 여성들은 열등한 노동력이 된다. 자본주의가 성맹적(gender-blind)인 관점에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를 ‘똑같이’ 대우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억압받고 남성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생물학적 인간 재생산의 필요와 충돌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적인 인구증가가 제공하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양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기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이 자연적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 산업예비군을 요구한다.”(칼 맑스,『자본론 I(하)』,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866쪽)는 사실이 문제이다. 산업예비군은 “변동하는 자본의 가치증식욕을 위해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인간재료”(칼 맑스, 같은 책, 862쪽)를 이룬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배계급이 저출산 현상에 대해 이렇게까지 걱정을 하며 출산율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산업예비군이 근미래의 자본축적을 위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우려스러운 상황인데,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임신과 출산의 필요성을 생산 과정에서 일일이 고려해 주면 그것도 자본가의 이윤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80조원보다 더 많은 돈을 써도 이 딜레마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풀릴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저출산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선택, 우리의 선택

결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처럼 노골적으로 성차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여성의 임신출산결정권을 제약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이려는 지배계급 앞에 놓인 유일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가 낙태 시술 단속에 나섰던 것, 작년 하반기 보건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개정하여 낙태 시술 의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고 시도했던 것, 최근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 분포지도’를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저출산 문제에 있어서 지배계급은 자기들의 속내를 숨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성차별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은 이기적이라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성소수자 커플은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저출산 문제에 대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사진: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캡쳐]

자본가계급의 유일한 선택지가 그런 것이라면, 노동자계급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먼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사회적 합의’ 같은 것으로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2006년에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등이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에 참여하여 정부의 보육 시장화, 여성 비정규직화 정책을 사실상 승인했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배계급이 사회적 합의나 애국심을 들먹이며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모습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가 서로 적대하는 두 계급으로 찢어져 있으며 국가는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는 기구일 뿐임을 잘 보여준다. 계급이 철폐된 사회에서는 공동체와 개인이 그렇게 찢어져 있지 않을 것이기에, 여성들이 자유롭게 임신출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과 일치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자본가계급은 절대 할 수 없고 노동자계급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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