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 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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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 Images]

이미 필자가 쓴 물신성 비판 글들에서 필자는 물신성이 본질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왜곡하여 본질을 전도(거꾸로 뒤바뀜)시킨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이때 간략하게 언급한 것이 화폐 물신성과 자본 물신성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그런 다음 여기서 확인된 물신성이 야기하는 전도를 다른 영역에도 적용하여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의 문제를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1. 화폐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전도

상품 생산과 교환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화폐가 발생하게 된다. 맑스의 『자본론』Ⅰ 제1장 상품의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는 맑스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자본론』Ⅰ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맑스는 화폐형태가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에서 출발하여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를 거쳐 도달한 가치형태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 가치형태’에서 ‘화폐형태’로의 이행은 특정한 상품, 보통 금이 다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독점할 때 이루어지는 데 이 이행은 이 점에서만 특별할 뿐 다른 진보는 없다고 맑스는 밝히고 있다.

가치형태의 발전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금이 화폐로서 다른 모든 상품들과 직접 교환될 수 있는 능력은 금이 다른 상품들과 똑같이 상품이고, 다른 상품들이 사회적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역할을 금에게 고정시켰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이 외관상 거꾸로 나타나게 된다. 마치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상품들이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가치를 이 특정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즉,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똑같이 상품인 금을 화폐가 되게 만들었는데, 쉽게 말해 화폐 역할을 몰아주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잊혀지고 거꾸로 금이 원래부터 인간노동의 화신인 것처럼 나타나서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것 같은 환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폐물신성이다.

물론 금은 다른 상품에 비해서 자연적 속성이 화폐의 여러 기능에 적합하다. 금은 어느 부분도 동일하고 균등하다. 또한 금은 마음대로 분할할 수 있고 그 부분들을 다시 합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적 속성 때문에 대부분의 문화적으로 발전한 사회에서는 금이 화폐의 역할을 최종적으로 독점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금이 다른 상품에 비해서 유리하게 화폐로 역할하는 상품이 되게 한 것일 뿐이다. 금의 자연적 속성이 사회적 과정과 무관하게 금으로 하여금 화폐가 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본질적인 관계는 화폐물신성에 의해 은폐되고 전도되어 화폐는 신비로운 존재가 된다.

마치 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산물인 화폐가 거꾸로 다른 상품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부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나타나서 규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과정의 산물, 결과가 그 과정이 잊혀짐으로써 자립하여 원인인 것처럼 나타나는 전도, 거꾸로 뒤바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화폐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는 전형적인 전도로서 이와 비슷한 전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민중에 의해 선출된 자들이 민중으로부터 분리되어 오히려 민중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는 경우가 수없이 발생하며 조직 대중의 결정에 의해 조직의 지도적 위치의 역할을 부여받은 개인이나 집단이 마치 조직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오히려 조직 대중 위에 군림하는 현상 역시 수없이 발생한다. 이러한 전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전복하는 데에서 화폐물신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강력한 투쟁 무기가 될 수 있다.

2. 자본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면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늘어나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 늘어난 가치,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재생산하는 시간보다 더 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을 재생산하는 시간보다 더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자본가를 위해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잉여노동시간) 동안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 계급관계 때문에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상은 이와 달리 나타난다.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마치 생산수단의 자연적 속성 때문인 것처럼 나타난다. 그리하여 잉여가치의 원천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인데 겉으로는 생산수단의 자연적 속성 때문에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화폐의 가치가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증가하는 자본의 신비성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욱 더 증대된다. 잉여가치의 생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전체 노동일을 늘려 잉여가치를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있고, 전체 노동일이 정해진 상황에서 필요노동시간을 노동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을 통해 줄여 잉여가치를 늘리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있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기계 등의 도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분업의 효과로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 발전한다. 그런데 이 발전한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은 노동에 속하는 힘으로 나타나지 않고 전도되어 자본에 속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자본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이다. 그 결과 노동자의 힘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 점점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고 영향력이 늘어나지는 않고 가령 삼성 등 대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력만 늘어나고 삼성 엑스파일에서 드러났듯이 대자본이 사회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늘어나더라도 이것이 노동자의 처지를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자본의 지배력만 강화시키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는 현상이 본질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아예 본질을 왜곡하여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화폐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와 그 원리가 같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그러면 이러한 전도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이 만들어 내는 전도는 과학의 도움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과학의 도움으로 화폐가 갖고 있는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로운 비밀은 폭로된다. 똑같이 과학의 도움으로 자본의 신비로운 비밀도 폭로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전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품생산사회가 지속되는 한 화폐는 지속되고 화폐가 만들어내는 환상 역시 지속된다. 자본주의사회가 지속되는 한 자본의 힘은 지속되고 강화된다. 이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과학의 도움으로 본질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 인식을 토대로 전도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 자체를 바꾸어내야 한다. 이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전도를 만들어내는 근본원인, 자본주의 상품생산사회를 바꾸어내야 하는 것이다.

3.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이 만들어 내는 전도는 전형적인 전도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전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에서 나타나는 전도 현상은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원인 중 하나가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이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때문에 화폐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를 사용하여 이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여전히 현실적 타당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견지되어야 하는 당의 성격은 당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 역할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의 역할은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당은 노동자계급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일부라는 점이다. 당은 노동자계급과 함께 나란히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며 노동자계급과 분리되어 자립된 당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당은 노동자계급과 분리되어 노동자계급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당은 단순하게 노동자계급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분이라는 점이다. 즉, 당은 노동자계급의 일부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분이며, 당이 이러한 선진적 부분으로 이루어질 때 당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할 때 당은 노동자계급의 전위로서 역할할 수 있다.

당의 이 두 가지 측면은 어느 것 하나를 놓쳐도 중대한 오류를 만들어낸다. 당을 노동자계급과 분리하여 그 역할을 특화하고 과장하는 것은 자기해방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을 왜곡하고 당의 대리주의적 실천을 초래한다. 다른 한편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의 역할을 부정 혹은 축소시키는 것은 해방투쟁 과정에서 당이 해야 할 역할을 왜곡시키고 당을 노동자계급의 전위가 아니라 후위부대로 전락시킨다.

그런데 실제로 역사에서 사회주의정당과 관련하여 실천 상 많은 오류가 발생하였다. 이미 필자의 글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식」에서 밝혔듯이 제2인터내셔널 이후 카우츠키의 ‘사회주의의식’ 계급투쟁 외부도입론이 확산되어 지식인 출신 사회주의자와 당의 역할이 과장되었다. 제2인터내셔널 시기에 맑스가 강조한 물신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약화되었다. 이 점도 당의 역할에 대한 과장에 일조하였다. 또한 러시아 10월 사회주의혁명 이후 불리한 주객관적 조건 속에서 내전의 종료 이후 러시아공산당의 당내민주주의는 훼손되고 레닌 사후 이것이 더욱 악화되어 러시아공산당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자립하여 노동자계급과 사회전체에 군림하는 당이 되었다. 당은 무오류의 조직으로 격상되고 이 과정에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가 출현하였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핵심적 문제의식과 그 성과 중 하나는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자본주의사회가 형성해낸 온갖 물신성을 폭로한 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물신성을 폭로하여 본질적인 사회관계를 투명하게 폭로 노출시키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자신의 임무 중 하나로 하여 실천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주의노동운동 내에서조차 새로운 물신성이 발생하여 당물신성 현상이 출현하였다. 특히 혁명의 승리 이후 당물신성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소련에서 당은 신비화되고 당은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존재로까지 격상되고 다시 당에 이어 수령이 전지전능한 존재로까지 격상되었다. 이러한 현실사회주의나라들의 역사적 경험은 물신성 현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지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재발생하는지를 확인케 하였다.

당물신성은 또 하나의 전도이다. 즉, 해방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당인데 당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전도인 것이다. 이는 결국에는 수령물신성으로까지 타락하게 된다. 당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이고 혁명과 해방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당 역시 노동자계급이라는 주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당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되고 마치 당에 의해 노동자계급이 주체화되고 이러한 주체화된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가져온다는 미망에 빠져든다면 그 당은 이미 새로운 억압을 만들어내는 존재일 뿐이다. 이것은 화폐물신성에서 나타나는 전도 현상과 일치한다. 상품들이 같은 상품인 금을 화폐로 만들어내었는데 마치 하늘에서 전지전능한 금이 뚝 떨어져 다른 상품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같이 보이는 전도와 일치한다. 그런데 실제로 가치는 화폐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상품들이 가치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당물신성은 결국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주체의 위치로부터 객체의 위치로 몰아내는 것과 같다. 수령물신성은 이것에 더하여 당조차도 객체의 위치로 몰아내고 수령을 모든 것의 주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역사상 사회주의사회를 자처하는 사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숭배를 만들어 낸 자는 스탈린이었다. 그런데 스탈린조차도 말로는 개인숭배를 비판하였다. 매우 위선적인 행태였는데 스탈린조차 개인숭배가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감히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가 스탈린주의적 체제의 일종이고 스탈린에 이어 김일성 역시 개인숭배를 조장했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개인숭배는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능가했는데 사망한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는 이를 부러워하며 흉내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북한은 단순히 스탈린주의적 체제에 머물지 않고 이를 더욱더 타락시켰다. 북한은 개인숭배를 수령론으로 이론화하여 개인숭배가 마치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이론화하고 이를 오히려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이르러 수령물신성은 극단적 형태에 이르고 노동자계급은 말뿐인 주체, 객체로 완전히 전락하였다. 이 점은 주체사상이 스스로 내거는 주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체사상이 스탈린주의의 가장 타락한 형태인 것도 주체사상이 내거는 주장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이글의 직접적인 목표는 주체사상에 대한 전면적 비판이 아니다. 때문에 이글에서는 왜 노동자계급이 주체사상에서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완전히 전락하였는가를 비판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북한에서 수령물신성의 전도가 극단적인 수준으로까지 악화된 것을 독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주체사상이 내거는 주장을 원문 그대로 인용해보겠다(태백총서 12 『주체사상연구』에서 재인용).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하자면 반드시 지도와 대중이 결합하여야 합니다. 인민 대중은 역사의 창조자이지만 옳은 지도에 의하여서만 사회역사발전에서 주체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 혁명운동, 공산주의운동에서 지도문제는 다름아닌 인민대중에 대한 당과 수령의 영도문제입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김정일, 강조는 인용자 )

수령의 지도를 받아야 인민대중이 비로소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주체의 혁명관에서 핵을 이루는 것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은 수령에 의하여 개척되며, 당과 수령의 영도밑에 수행됩니다. 혁명운동은 오직 당과 수령의 영도를 받들어 나가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혁명관을 옳게 세우기 위하여서는 언제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합니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강조는 인용자)

우리 당을 영원히 그 창건자이시며 영도자이신 김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당건설에서 우리 당이 견지하고 있는 확고부동한 입장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김정일, 강조는 인용자)

 

아예 조선노동당을 김일성의 당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체사상 교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혁명적 수령관을 튼튼히 세우는 것입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혁명에 충실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혁명의 주체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인민대중이 혁명의 자주적 주체로 되기 위하여서는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조직사상적으로 통일단결된 인민대중만이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혁명의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통일체입니다.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속함으로써 영생하는 자주적인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게 됩니다. 개별적인 사람들의 육체적 생명은 끝이 있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속된 인민대중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강조는 원문)

 

주체사상의 수령론, 사회정치적 생명론은 ‘영생’,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 ‘어머니 당과 어버이 수령님’이라는 말과 어울리면서 도무지 사회주의세력이라 볼 수 없는 지경의 전도 현상, 수령물신성에 의한 전도 현상을 만들어 내어 스스로의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수령물신성이 종교물신성 수준까지 악화되어 유사 종교집단의 양상이 출현하고 있다.

개별적인 사람은 당조직을 통하여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인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 할 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강조는 인용자)

수령이 영생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수령-당-대중은 하나의 생명으로 결합되어 운명을 같이 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는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강조는 인용자)

우리는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당의 방침을 그 어떤 명령이나 의무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것은 가장 숭고한 삶의 요구라는 것을 깊이 간직하고 끝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받아 안아야 하며 어머니 당과 어버이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사랑과 힘이라는 것을 깊이 간직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야 합니다. 이렇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혁명적 수령관이 투철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강조는 인용자)

이제는 신의 경지까지 격상된 수령이 손자에게까지 세습되고 있다.

맺으며

이상에서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도현상을 살펴보았다. 화폐물신성이 만들어 내는 전도현상이 가장 전형적인 것인데 화폐물신성 때문에 마치 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산물인 화폐가 거꾸로 다른 상품들에게 사회적 관계를 부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나타나서 규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과정의 산물, 결과가 그 과정이 잊혀짐으로써 자립하여 원인인 것처럼 나타나는 전도, 거꾸로 뒤바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과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이 만들어 내는 전도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이 있다. 주체사상에서 당물신성, 수령물신성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종국에는 수령이 개인에게 영생을 부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은 금이 다른 상품 덕분에 화폐의 지위를 부여받았는데 그 과정이 잊혀지면서 금이 다른 상품에게 마치 처음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같은 환상, 전도와 양상이 일치한다.

맑스의 물신성 개념은 환상과 전도를 여지없이 폭로하는 사상적 수단으로서 매우 혁명적인 것이다. 노동의 힘이 자본의 힘으로 둔갑하는 현상을 이 개념을 사용하여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다. 운동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료주의적 변질도 이 물신성의 개념을 준용하여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다. 가장 타락한 형태의 스탈린주의체제인 북한 사회도 이 개념을 사용하여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다. 이처럼 물신성 개념은 죽은 개념이 아니다. 맑스 이후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이 이 혁명적 수단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만약 이 개념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다면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적 오류의 상당부분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이 사회주의운동이 고양되는 시기를 맞이하여 사회주의자들은 물신성 개념을 날카로운 투쟁무기로 되살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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