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국가물신성, 법물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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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회주의자]

필자의 주: 이글은 앞선 글 「자본주의와 물신성」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자본주의에서 전면화하는 물신성은 본질을 은폐, 왜곡하는데 이 물신성은 국가물신성, 법물신성에서도 나타난다. 이글에서는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모든 국가는 자신의 본질을 은폐한다.

국가는 인간 사회에서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가 없고,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적 소유가 출현하고, 계급이 출현하게 되자,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사적 소유자의 지배를 보장하기 위하여 비로소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때문에 국가는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기구이다. 또한 국가가 이렇게 출현하였기 때문에 국가는 구씨족적 권력과 달리 국민을 혈연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구분하며, 주민의 자주적인 무장조직과는 다른 특수한 공권력을 갖는다. 이것이 국가의 기원과 본질이다. 이러한 내용을 엥겔스는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요컨대 국가라는 것은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윤리적 이념의 현실태’나 ‘이성의 형상 및 현실태’가 아니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국가는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자기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화해불가능한 대립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대립, 즉 경제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에서 자신과 사회를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하려면 외관상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즉 충돌을 완화시켜 사회를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시킬 권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로부터 발생했으나, 그 위에 올라서서 사회와는 더욱더 멀어져 가는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

구씨족적 조직과 비교할 때, 국가의 첫 번째 특징은 국민을 그 지역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자기 자신을 무장력으로서 조직하는 주민과는 이미 직접 부합되지 않는 공권력의 창설이다. 이 특수한 공권력이 필요한 것은 계급으로의 사회적 분열 이후 주민의 자주적인 무장조직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예도 역시 주민의 한 성원이다. 9만의 아테네 시민은 36만 5천의 노예에 대해서 특권계급일 따름이다. 아테네 민주국가의 시민군대는 귀족의 공권력으로서 노예를 복종시켰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민을 복종시키는 데에도 역시 헌병대가 필요했다.

그런데 국가는 이러한 본질을 은폐한다. 국가는 자신을, 특정한 계급의 계급지배기구가 아니라 마치 사회구성원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구, 이해의 갈등을 초월하는 기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기구,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성의 형상 및 현실태’, ‘사회 위에 서 있는 권력’ 등으로 위장한다. 국가가 사적 권력이 아니라 공권력을 갖는다는 특징은 사적 이해로부터 독립된 권력이라는 위장을 강화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국가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은폐한다. 만약 국가가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서 노골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한다면, 그 국가는 매우 취약해지고 지배계급의 지배 역시 매우 취약해질 것이다.

2.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본질 은폐, 환상은 더욱 강화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국가도 역사상 존재한 다른 국가들과 똑같이 자신의 본질을 은폐한다. 이러한 은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갖는 특유한 성격 때문에 더욱 더 강화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Ⅲ』에서 생산수단 소유자의 직접적 생산자에 대한 관계가 국가의 특유한 성격을 결정한다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사회구조 전체의 가장 깊은 비밀과 은폐된 토대, 그리하여 또한 주권 종속관계의 정치적 형태, 그때 그때의 특수한 국가형태의 가장 깊은 비밀과 은폐된 토대를 발견하는 것은, 항상 생산조건 소유자의 직접적 생산자에 대한 직접적 관계그것의 그때 그때 마다의 형태가 당연히 노동의 방식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항상 조응하는 관계에서이다.(강조는 인용자)

이 언급은 왜 봉건적 생산관계에서 소유관계가 동시에 직접적인 지배․예속관계로 나타나고, 봉건영주를 위한 잉여노동은 경제외적 강제에 의해서만 강탈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데서 이론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본론Ⅲ』의 다음 부분을 읽어보자.

또한 명백한 것은, 현실의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과 노동조건의 ‘점유자’이기도 한 모든 형태에서는 소유관계는 동시에 직접적인 지배․예속관계로 나타나며, 따라서 직접적 생산자는 부자유인〔이 부자유는 부역노동의 농노제로부터 단순한 공납의무에 이르기까지 점점 약화될 수 있다〕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직접적 생산자는 〔우리의 전제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있으며 자기의 노동의 실현과 자기의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객체적인 노동조건을 점유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농업과 〔이것에 결부된〕 농촌가내공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는 명목적인 토지 소유자를 위한 잉여노동은 경제외적 강제〔그 형태가 어떻든〕에 의해서만 강탈될 수 있다. 〔이것은 노예경제나 식민지 농장과 구별되는데, 후자에서는 노예는 자기의 것이 아닌 생산조건을 가지고 노동하며 독립적으로 노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인격적인 종속관계〔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격적인 부자유〕와 토지의 부속물로서 토지에 결박되는 것〔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속〕이 필요하다.

이러한 봉건적 생산관계에서와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노동자는 생산조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생산조건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며 생산은 자본가들의 지휘아래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다. 또한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음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재생산을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봉건적 생산관계에서와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경제외적 강제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외관상 ‘계약관계’의 모습을 갖게 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상품거래관계’의 모습을 갖게 된다.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본질상 지배종속, ‘착취피착취관계’임에도 외관상으로는 대등한 주체의 계약관계, 상품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신비화는 더욱더 강화된다. 사회와 국가는 실제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더욱더 분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사적 영역과 공적영역도 실제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더욱더 분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와 정치도 실제로는 통일되어 있지만 더욱더 분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사적 이해가 갈등하는 사회(노동자와 자본가가 대립 갈등하는 사회)와는 달리 국가는 사회 위에 선, 이해의 중립적 조절자, 공정한 룰의 심판자, 정의의 감시자, 사회구성원의 계약의 산물로서의 국가라는 외관을 더욱 더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외관이 강화됨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계급 지배기구로서의 본질은 더욱더 은폐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는 외관상 사회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사적소유의 보호, 자본과의 융합에서 사회와 통일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강화된 신비화는 이를 은폐한다. 국가물신성이 강화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법물신성도 강화되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생략한다.

앞선 글 「자본주의와 물신성」과 이 글로 자본주의에서 전면화하는 물신성을 검토하였다. 다음 글에서는 이를 토대로 의식의 해방에서 과학이 갖는 역할과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정당의 임무를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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