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자본주의 끝장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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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acobin 트위터 / 토론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월 3일 금요일 저녁 7시,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대학인 쿠퍼 유니온(Cooper Union)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그레이트 홀(Great Hall)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로 청년들이 많았다. 그레이트 홀은 1860년 A. 링컨이 노예제 폐지 연설을 한 것을 포함하여 루즈벨트나 클린턴, 오바마 같은 역대 대통령들이 정견을 발표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마크 트웨인 같은 명사들, 심지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 같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인물들 또한 연설을 하기 위해 찾았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그리고 미국의 주류 경제지인 『블룸버그(Bloomberg)』의 기사에 따르면 이날 여기서 열린 행사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를 타도할지에 대한 토론회”였다.

미국 젊은이들, 자본주의에 대한 토론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다

“자본주의: 논쟁(Capitalism: a Debate)”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회의 공식 주제는 “삶의 질을 개선하고,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가 최선인가? 사회주의가 더 나을까?”였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급진적 시각을 제공해 온 매체 『자코뱅(Jacobin)』 측이 대표적인 자유주의 매체인 『리즌(Reason)』에 제안한 것을 계기로 이런 토론회가 열리게 되었다. 『블룸버그』의 기사에 따르면, 청중석 티켓이 하루 만에 매진되어서 주최자들이 더 넓은 장소를 물색한 결과 정해진 장소가 이곳 그레이트 홀이었다. 추가 티켓도 8시간 만에 모두 팔려나갈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 토론회에 대해 자세히 보도한 블룸버그 지의 위 기사 제목도 “자본주의 없애버리자?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였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자코뱅』 측에서는 『자코뱅』 창립자인 바스카 순카라(Bhaskar Sunkara)와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자코뱅』에서 운영하는 『카탈리스트(Catalyst)』 저널의 공동편집자인 비벡 치버(Vivek Chibber)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리즌』 측에서는 편집장 캐서린 망구-와드(Katherine Mangu-Ward)와 『리즌』의 온라인 플랫폼 편집장 닉 질레스피(Nick Gillespie)가 토론자로 나왔다. 『뉴욕 타임즈』의 기명 칼럼니스트인 미셸 골드버그(Michelle Goldberg)가 사회자를 맡았으며, 이날 토론은 『자코뱅』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영상으로 생중계되었다.

토론자들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는 사유재산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가?’ 등의 미리 정해진 공통 질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돌아가면서 각자 3분 정도씩 발표하고 서로 반론하는 시간을 가진 후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토론을 전개했다.

공통 질문들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날 토론회의 초점은 주로 ‘자유를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꼭 필요하다’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주장에 대한 평가에 맞추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코뱅』 측 토론자들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왜 사회주의가 대안인지 등을 충분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였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 머무르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점이나, 노동자계급 스스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 확실히 강조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 흐름에서 아직은 다소 비껴나 있는 한국에서 보기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각 토론자들의 발언에 대한 청중의 뜨겁고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그들 중 거의 모두가 자본주의를, 또 ”자유 사상과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리즌』의 주장에 대해 적대적”이었음을 『리즌』 측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을 예찬하다 비웃음을 당한 자유주의자들

『리즌』 측 토론자들은 줄곧, 최근 몇 십 년간 절대적 빈곤이 줄어들었고 살림살이도 나아졌으며, 자유 시장이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를 보장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금 빈부 격차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여 파이가 커졌기에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예전보다는 잘 살 게 되지 않았냐는 논리였다. 사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되풀이되는 익숙한 이데올로기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이런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주입받기에, 막상 여기서 벗어나려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날 토론회의 청중들에게 이런 논리는 잘 먹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리즌』 측 토론자인 캐서린 망구-와드가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일터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강요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과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중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이 “궁극적으로, 매일 아침 일하러 갈지, 가지 않을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다는 더욱 황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가 “여러분은 가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청중석에서는 더 큰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다음 발언자였던 『자코뱅』 측 토론자 비벡 치버는 “네. 선택의 문제부터 얘기해보죠. 정말 그런가요? 여러분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일하러 갈지 말지를 고민하시나요?”라고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고, 청중석에서 “아니요!”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리고 치버가 “이것이 자본주의입니다”라고 말하자마자 거의 10초간 청중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페이스북에서도 토론회 실시간 중계를 지켜보던 이용자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일하러 가지 마세요. 그래서 길바닥에 나앉고 빚이 불어나는 걸 지켜보세요. 물론 전일제로 일해도 빚을 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생존을 하려면 유일한 수단인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강요가 아닐 수 있죠?”

또한 청중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는데도 일터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의 ‘독재’를 참아내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했다. 『자코뱅』 측 토론자 치버가 “미국인 노동자들은 일을 하는 시간 중 대부분 독재(tyranny) 속에 있습니다. 일터라는 이름의, 사적 독재(private tyranny) 말입니다. 캐서린, 사유재산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시민적 자유가 증대되었다고 말씀하셨나요?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단 한 곳은 직장이에요. 이것이 사유재산의 본질입니다”라고 말하자 발언 중간이었는데도 청중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들이 反자본주의에 환호한 이유: 답이 없는 자본주의

하지만 토론회 영상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느껴진 것은, 아무리 강력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공세라도 잘 먹히지 않을 정도로 현재 미국 노동자들의 삶이 힘들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리즌』 측 토론자들은, 예전에는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제 기본적 생필품은 구매할 수 있게 되지 않았냐고 주장했으며, ‘옛날보다 TV를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같은 궁색한 사례까지 들어가며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민중의 삶이 파탄에 이른 현실을 어떻게든 가리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 말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 페이스북 생중계 영상에는 실시간으로 다음과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TV 필요 없어요. 의료서비스가 필요해요.”

“집값은 얼마인지 알아요, 닉?”

“네. 기본적인 생필품(음식, 주거, 의료서비스는 빼고)을 살 충분한 돈이 있죠.”

“매일 운전해서 집에 갈 때마다 모퉁이에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다섯 명은 있어요. 당신은 완전히 틀렸어요, 캐서린.”

“미안하지만, 『리즌』 사람들이 ‘실제 경험’에 대해 말할 때마다 저 사람들은 무슨 다른 별에서 왔나 싶어요.”

이런 반응은 현재 미국 노동자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자본주의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보여준다. 통계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8월에 나온 언론 기사에 따르면, UC 버클리의 경제학자 게이브리얼 저커만은 1980년부터 2014년까지 하위 50% 계층의 소득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으며, 특히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상위 1%의 연소득은 204%, 상위 0.1%의 연소득은 이 기간 동안 320%, 최상위 0.001%의 연소득은 무려 636%나 증가했다.

또한 11월 14일에 나온 투자은행 크레딧 스위스의 『지구 부 보고서(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부의 절반인 50.1%를 상위 1%의 부유층이 차지하고 있다. 2008년에 이 수치가 42.5%였음을 고려하면 불평등이 더 심각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1980년∼2000년 사이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금융위기에 따른 실업, 부동산 가격 상승, 학자금 부채 등으로 인해 그 이전 세대보다 더 심각한 부의 불평등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올해 30세∼39세가 보유한 평균 자산은 7만 2400달러인데 이는 현재 40∼49세인 사람들이 30대였을 때 보유했던 자산보다 46%나 적은 규모라고 한다. 이렇듯 오늘날 미국 노동자계급 청년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

이제는 우리도 답이 없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을 때다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토론회에 900여 명이 찾아와서 반(反)자본주의적 주장에 환호를 보내고, 주류 경제지인 블룸버그 지에서 “자본주의 없애버리자?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제목으로 토론회 소개 기사를 쓰게 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이 존재한다. 토론회에서 『리즌』 측 토론자가 자본주의에 대해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체제이다’라고 말하자 『자코뱅』 측 토론자가 ‘맞다. 자본주의에는 답이 없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답도 주지 못하는 체제다’라고 받아쳤는데, 지금 많은 이들이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민중의 의식 급진화, 사회주의 운동 고양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는 토론회가 기획되고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자코뱅』 측이 토론회에서 한 주장 중에서는 정치적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미국 대중들도 아직은 무상보육, 공공의료체계 등 절박한 요구들을 ‘사회주의’라는 말로 표현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코뱅』에서 자본주의를 대담하게 문제 삼는 토론회를 기획한 것은 현재의 이런 흐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대중화하려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된다.

반면 아직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고 사회주의를 말하는 움직임보다는 ‘천민자본주의’를 합리적인 자본주의로 수정해야 한다든가, 개인의 노력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많이 나타난다. 매체 『사회주의자』에서는 일관되게, 「사회주의 운동은 새롭게 고양하고 있다」, 「세계적 사회주의 고양 흐름, 왜 한국은 아직 예외인가?」 같은 기사들을 통해 세계 각국에 나타나는 이런 흐름을 소개하고 한국에서도 그런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결코 한국을 비껴가지 않고 있는데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 흐름에서만 한국이 예외라면 이는 주체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자본주의까지는 너무 센 것 아닌가’ ‘사회주의는 낡은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오히려 지금까지도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는 것이 낡은 것이고 뒤쳐진 것이 아닐까? 이제는 우리도 자본주의에 대해 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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