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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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y 황정규, CC BY 2.0

우리는 『사회주의자』를 창간하면서, 창간 특집으로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주제를 잡았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확산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왜 사회주의인지 공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극복의지에서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왜 문제의 근원이 자본주의인지 밝히는 글을 통해 사회주의가 답인 이유를 말해보고자 한다.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 자본주의

2008년 공전세계적인 경제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전까지 공황과 달리 2008년 황은 자본주의 심장부 미국에서 발생했다. 이 공황은 사실상 2001년 IT 공황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2001년 IT 거품이 꺼지며 경제상황이 심각해지자,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연속적으로 금리인하 조치를 취했고, 이를 통해 인위적으로 주가하락과 소비수준 격감을 막고자 했다.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 부동산 경기, 특히 주택경기를 부추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했고, 오히려 주가거품을 부동산거품으로 이전하고, 경제의 거품을 더욱 키웠다. 이렇게 키워진 거품이 계속 유지될 리 만무했다. 결국 이것은 2008년 전례 없는 공황의 발발로 이어졌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상징되는 이 공황은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08년 공황은 기존의 공황과 달리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파국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찍어내 금융상품을 사들여 은행과 금융시스템을 지켜냈다. 당시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울러 미연준은 2008년 말 금리인하를 단행하여 7년 동안이나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해왔다. 이는 철저히 사회의 다른 부분을 희생한 채 은행의 이해를 대변하여 금융자산을 회복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금융이윤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

2008년 공황이 자본주의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자본가계급의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자본가계급은 2008년 이후 1%의 탐욕을 비판하는 민중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머니를 더 채우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2008년 공황 이후 사실상 자본가계급을 위한 소득재분배가 일어났다. 공황의 책임자들이 공황의 수혜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소득은 정체·감소한 반면 자본가 계급의 부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2012년에는 1917년 데이터 분석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미국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넘었다. 2013년 한 해 자본주의 중심국에서 실질 가계소득이 늘어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런데 주식과 부동산은 뛰어오르고, 각국의 채권은 사주는 사람이 많아 이자율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 EU, 일본 정부는 양적완화를 통해 재정적자폭을 유지하면서 정부부문의 주도적 역할을 지속시켜오고 있지만, 결국 기대했던 경제회복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심지어 일본의 경제단체들은 경기회복을 위해 각 기업이 임금인상을 해야 한다는 초유의 성명을 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임금인상을 통해 수요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옵션이 아니라는 게 이미 2008년 이후 각국의 경제정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공황의 여파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경제가 다시 하강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말부터 미국 경제는 악화되고 있다. 유럽의 경제상황도 밝지 못하다. EU는 오랫동안 1%대 성장률을 넘지 못한 채 현상유지를 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가령 독일은 작년 1.5%성장을 하였고, 프랑스 1.2%, 이탈리아 0.8% 성장을 하였다. 세계 경제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에도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했다. 이것은 중국의 과잉투자, 과잉설비를 악화시키는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전세계적인 과잉생산 구조 역시 악화시켰다. 2008년 대공황 이후 중국에서도 심각한 경기후퇴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5,86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도 약발이 떨어져 작년부터 경기침체가 가시화되었다. 중국경제는 세계 GDP 성장의 1/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중국 경제의 급전직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공황을 재점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일본 다이아 증권은 중국경제의 ‘멜트다운’을 예측하면서, “그 충격은 세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최악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2016년이 2달여 남은 시점에서, 올해의 여러 경제 전망치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은 바닥을 기고 있다. 가량 9월 27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수출입 증가율이 전년대비 1.7%로 사상 최악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의 경제지표들도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9.3%로 1999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구소득상승률 4분기 연속 0%를 맴돌고 있다. 올 2분기 제조업 가동률은 72.3%에 불과했다. 전 세계 자본주의는 구제불능 상태에 빠졌고, 그것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자본가들도 자본주의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잃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자본주의가 다시 살아나지 않자, 이제는 말을 바꿔 ‘장기침체론’이라는 이론을 만들어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조선비즈는 20명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장기침체론’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는데, 그 중 16명이 ‘장기침체론’에 동의했다. 부르주아 학자들인 만큼 장기침체의 원인이 자본주의라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이미 현재 자본주의가 ‘노답’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이 제시하는 처방이라고는 결국 공격적 재정확대 정책으로, 빚을 내서 부양하는 경제를 영속화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삶의 파탄,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가 ‘노답’상태로 빠지면서, 그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인간다운 삶이 파탄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왜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하는지 절감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모순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20년 전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에서 29%를 차지했는데, 현재는 45%가 되었다. 이 수치는 일본보다도 높고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가진 자들의 몫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진 자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불행한 시절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전체 소득 중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증가했다. 기업소득 비중은 2000년 국민총소득의 17%로 OECD 평균(17.64%)과 비슷했지만, 2005년 21.34%에서 2009년 23.47%, 2013년 25.16% 등 급격히 증가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작년 삼성, 현대차 등 5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370조 원으로 10년 만에 3배가 증가했다. 반면 가계는 빚이 2015년 기준 1,200조원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가 늘었다. 노동자 민중은 저축은커녕 빚 탕감하기 바쁘지만, 재벌들은 쌓아 놓은 돈더미를 어떻게 굴릴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c%b0%bd%ea%b0%84%ed%8a%b9%ec%a7%911-2_%ec%82%ac%ec%a7%843자본주의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청년들일 것이다. n포세대니 하는 말이 나오지만 결국 청년세대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표된 실업률 지표를 보면, 10.9%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 실업자 중 대졸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4.5%로, 실업자 2명중 1명이 대졸 청년실업자다. 수백 곳에 입사원서를 내도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이 산업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높아진 전월세는 청년들을 좌절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어렵게 돈을 벌면 월세로 다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청년수당을 무언가 대단한 것처럼 내놓았지만, 월세 내고 학원비 내면 다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지주와 학원 원장만 배불릴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청년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좌절할 이유만 남아있다.

노동자들의 삶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는 2009년 천여 명의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해고되었다. 당시 한국지엠은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생산물량이 줄어, 노동자를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비정규직이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격렬히 저항했지만, 대다수는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공장을 떠나야 했다.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만이라도 고용을 지키기에 급급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 때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2000년에는 ‘IMF 경제위기’로 정규직 노동자 1,750명이 해고되었고, 규모를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이전에 이미 해고되었다. 2014년~2015년에는 ‘유럽 경제위기’로 군산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1,000명이 해고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발생한 ‘경제위기’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도, 비정규직 노동자 예외 없이 길거리로 내몰았다.

한국지엠만이 아니라, 2009년 쌍용차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쌍용차는 더욱 심각해서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져 30명 가까운 해고노동자들이 병으로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현재는 조선산업이 불황이라며 그 이유도 모른 채 노동자가 잘려나가고 있다. 올 한 해만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8,490명, 대우조선해양에서 6,000명이 해고되었다. 또한 사무직은 두 곳 합쳐 5,000명이 해고되었다. 2-3년의 기간 동안 수만 명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9월 고용동향(통계청)에 따르면 조선산업이 밀집해 있는 동남권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해 보다 76,000명 감소했다고 한다.

공공부문 역시 자본주의 위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공공부문은 안정된 고용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본과 정권은 이마저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들어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이 강화되었다. 정권은 2015년에는 임금피크제를 추진하여 대부분 공공부문에서 관철시켰고 올해에는 성과연봉제를 들이밀고 있다. 이처럼 모든 부문에서 노동자들의 전반적 삶은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령층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5%로, OECD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노인이 되면 두 명 중 한 명은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앞으로 몇 년 이내 720만 명의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은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당장은 매월 나오는 임금이지만 퇴직 후는 정말 막막하다. 이들은 심각한 소득절벽에 몰리게 된다. 이들의 노후를 지탱해줄 자원은 한 채의 아파트, 국민연금, 개인저축, 개인연금이 전부이다. 이들의 보유자산의 70% 이상이 주택이다. 주택가격의 폭락 가능성은 이들의 삶을 더욱 불확실한 상태에 놓는다. 그리고 경제가 나빠지고 국가가 복지재정을 축소할 경우, 국민연금도 국가가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비참한 노년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현재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에게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의 연속이다. 어느 하나 보장되지 않는 이런 삶을 선사하는 자본주의를 언제까지 그냥 둬야 하는 것인가!

사회주의가 답이다

민중들의 삶은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야만의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도의 차이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사회도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상황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 모든 상황의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는 더 이상 자기 체제의 위기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오히려 이 위기는 더욱 악화일로에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로 인해 문자 그대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고통을 감내하는 게 우리의 삶이 되고 있다. 우리는 단언할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야만의 세상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얘기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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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흐름을 아직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이 확산되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월가를 점령한 미국의 광장점거운동, 긴축과 실업에 반대하는 스페인, 그리스 민중들의 투쟁에서 하나같이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투쟁은 기존 제도정치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며 미국 대통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환호, 영국 노동당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제레미 코빈에 대한 기층 당원들의 지지, 그리스 시리자의 집권은 이러한 반자본주의 투쟁의 영향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이처럼 현실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깨닫고 이를 넘어서려는 흐름은 전세계를 관통하는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운동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후퇴하고 있다. 급진화되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계속 우향우를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인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내 개량을 추구하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도 나온다. 반면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세력들이 새롭게 등장하여, 사회주의 내용을 정립하고 선전보급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지만,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복되어야 하고, 극복되리라 믿는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예외 없이 구제불능 상태로 들어가 있고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전혀 개선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노동자민중이 처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자본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고 새로운 사회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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