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이벤트 정치’로 답하다: 촛불 1년, 문재인 정권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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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www1.president.go.kr/articles/1305]

지난해 10월 29일. 박근혜 국정농단을 계기로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도 견디며 연인원 1700만여 명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그 결과 기세등등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어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자유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은 문재인이 당선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촛불 정권’이 출범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촛불 1주년을 맞은 지금, 촛불로 인해 탄생한 문재인 정권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문재인 정권은 출범 초기 국정 여론조사에서 80%대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른바 새 정권의 ‘허니문’에 보내는 대중의 선물이었다. 거기에는 최악의 실정으로 바닥을 친 박근혜 정권에 의한 대비효과도 작용했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이라는 간판 아래서 수구 잔당들이 보여주는 퇴행적 행태 또한 문 정권의 지지율에 일조했다. 그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나 5.18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정도의 간단한 제스처만으로도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허니문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잔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은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려 왔고, 최근에는 60%대로 내려앉았다. 반면 부정평가는 꾸준히 증가하여 20%대 후반에 이르렀다. 정권의 자유주의적 한계가 드러난 결과이다.

촛불 민중의 요구를 배반한 촛불 정권

사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은 촛불의 요구에 어긋나는 행태를 여러 차례 보여 왔다. 출범 직후 내각 구성부터 발걸음이 꼬였다. 청와대가 지명한 인사 대부분이 이른바 ‘5대 인사원칙’에 위배되었다. 그 가운데 김기정, 안경환, 조대엽, 박기영, 박성진 후보자 등은 결국 낙마했다. 청문회를 통과한 인사들도 대부분 구린내를 털지 못한 채 임명장을 받았다.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저열한 윤리 수준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은, 여러 저서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 대상화하여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의전행정관을 끝까지 비호함으로써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공약을 스스로 뒤집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권은 촛불 민중을 정면으로 배반했다. 대선 무렵까지도 사드 배치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인 적폐로 꼽히는 이슈였다. 군사적 무용성과, 중국 등의 반발을 고려한 국내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 주민들의 반대 투쟁이 치열했다. 그 무렵 대권 후보였던 문재인 또한 “사드 배치는 안보 측면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크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대선을 치렀다. 그러나 대선 후 문재인은 당선증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드 추가 배치를 단행했다. 전략적 모호성은 속임수였음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그토록 사드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문재인의 열혈 지지자들도 이때는 침묵했다.

한편 6월 말에 미국에서 있었던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문재인은 한미 굴욕외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론 청와대와 집권 민주당은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더 이상 굴욕외교는 없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한 성과는 문재인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면서 ‘한미혈맹’을 강조한 것과 삼성, 현대, SK, LG, 한화, 두산, 한진 등 국내 굴지의 재벌 자본가들을 거느리고 가서 트럼프에게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40조원 이상의 대미투자를 약속한 것을 뜻했다. 게다가 문재인은 트럼프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도 이렇다 할 대꾸 한 마디 못하고 돌아와 논란을 자초했다.

사드 배치, 40조원 대미 투자, 한미 FTA 재협상 등 문재인 정권이 말한 성과라는 건 결국 남한 민중의 등골을 뽑아 미국 자본가의 이익을 실현해주는 내용들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친미 사대주의 정권임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것은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로 자존감이 높은 촛불 민중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급락할 판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여전히 70%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형편없는 성적은 아니다. 이전 정권들에 비해서 오히려 높은 편이다.

이벤트 정치로 무능력을 은폐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원천은 바로 ‘이벤트 정치’에 있다. 문재인 정권은 사드 배치 문제와 같이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이슈에는 모호성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또한 ‘탈원전’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과제는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방식으로 민간에 논란의 책임을 떠넘겼다. 대신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고용문제, 노동조건, 사회보장 등과 같은 과제들은 대중적 이벤트를 통해서 발표하는 형식을 즐겨왔다. 과거에 재래시장이나 훑고 다니던 박근혜 식 이벤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련되고 발전된 감성적 이벤트를 통해서 문재인은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해온 것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문재인은 대통령 당선 직후인 5월 12일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조원 50여명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나쁜 일자리로 인한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공공부문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올해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정규직 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던 인천공항공사를 콕 찍어서 벌인 이날 이벤트는 간담회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까지 더해져 성황을 이루었다. 성공적인 이벤트였다.

한편 8월 9일 저녁 뉴스는 대통령이 서울성모병원 소아병동을 찾아가 어린이 환자들을 격려하는 이벤트 광경을 보도했다. 이날 문재인은 병원 로비에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내용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직접 발표했다. 그는 “환자가 생기면 가족 전체가 함께 고통 받는 나라, 이건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대폭 늘려 보장성을 강화하고, 의료비 본인부담금 상한점을 낮추며, 긴급 의료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어쨌든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린다는 점은 환영받을 만했다. 그에 따른 이벤트도 완벽해 보였다.

이벤트는 가을에도 이어졌다. 10월 18일, 문재인은 제3차 일자리위원회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헤이그라운드’ 빌딩에서 주재했다. 노숙인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 등 사회적 기업이 다수 입주해 있는 곳이었다. 문재인은 지난해 연말에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서 『빅이슈』 일일 판매원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었다. 헤이그라운드 빌딩을 이벤트 장소로 택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이 날 문재인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회적 경제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적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로써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 이미지를 재고했다.

이벤트 정치의 폐단

이밖에도 문재인 정권은 지난 반 년 동안 많은 이벤트를 벌여왔다. 특히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정책을 현장 이벤트 형식으로 발표함으로써 선전 효과를 극대화 했다. 이러한 이벤트 정치는 삶이 팍팍한 대중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문재인 정권의 국정에 대한 긍정 평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벤트 정치는 자유주의 정치에서 흔한 수법이다. 하지만 온갖 사회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노동자, 민중에게 자유주의 정권의 이벤트 정치는 심각한 폐단을 낳는다. 그것은 대중의 눈과 귀를 실체 없는 이미지에 가두어버림으로써 착취 현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그런 예는 앞에서 예로든 문재인 정권의 이벤트에서도 속속 드러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문재인의 이벤트도 속 빈 강정이었다.

가령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관련 이벤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 5월에 외주 용역업체들을 통해 비정규직 400여명을 채용했다. 연말까지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화 한다는 약속 이행도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이 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이 해소될 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엘지유플러스 콜센터 노동자로 일명 ‘욕받이’ 부서에서 일하다가 실적 압박 때문에 자살한 홍수연 씨는 엘지유플러스 자회사에 속한 정규직이었다. 단, 그가 받은 가장 많은 월급은 137만 원이었다. 이 사회의 고용문제는 대통령의 감성적 이벤트와 선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재인의 이벤트 정치는 이러한 본질을 은폐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한 서울성모병원 소아병동 이벤트 또한 허풍으로 가득했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지금의 건강보험 보장률 63%를 임기 5년 동안 70%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가 내놓은 보장률 90%보다 훨씬 후퇴한 목표이다. 꼼수가 있었다. 의료체계 개혁에 대한 어떤 로드맵도 없이, 현재 보유한 건강보험 재정 흑자 20조원을 써먹겠다는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벤트였다.

일자리와 관련한 헤이그라운드 빌딩 이벤트도 알맹이 없는 선전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이날 문재인은 자신의 대선 공약인 81만 개 공공 일자리 창출에 대한 세부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전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미 추진해 오던 사업을 일부 개선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문재인은 지난 7월 20일에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 대하여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한 사유를 열거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그로써 문재인 정권의 국정과제였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는 일종의 권고사항으로 전락했다. 일선 기업에서 이유만 잘 갖다 붙이면 안 해도 되는 제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촛불 1년, 안보 정치로 퇴행하다

촛불 민중은 변화를 원했다. 덕분에 민주당과 문재인은 비교적 쉽게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은 촛불에 빚을 졌다. 따라서 촛불 민중의 진보적 요구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그 진보적 요구에 대해서는 이벤트 정치로 대응하고, 보수층의 요구에 대해서는 강경한 안보 논리로 답했다. 둘 다 무능함의 표현이다. 실제로 문재인은 집권 후 한반도 긴장 국면에서 해묵은 안보논리와 한미동맹 강화 논리로 일관하면서 역사적 퇴행을 거듭했다. 이 또한 보수층을 향한, 일종의 이벤트 정치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문재인은 한반도 전쟁 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도 줄곧 트럼프의 발언을 복창하며 대북 강경론을 이어왔다. 예컨대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그는 “우리 정부는 누차 밝혔듯이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에 대해선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공언했다. 그러자 한국의 대표적인 극우성향의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이에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폭력적 안보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자유총연맹 수준의 안보 정책은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사실상 강경 위주 정책으로 가면서 당초 공언했던 ‘운전대’를 잃어버렸다”고 비판했고,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도 “우리는 트럼프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말을 해야 한다. 이런 현실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흔히 “안보에는 이념이 없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이다. ‘안보’란 지배 권력이 자신의 무능함을 은폐할 때 내뱉는 말이다.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같은 말이다. 즉 반공주의 이념을 동반한다. 따라서 안보는 하나의 이념이다. 또한 피지배 민중에게 그것은 폭력이다. 문재인정권이 강조하는 안보도 예외는 아니다. 촛불 1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권의 퇴행성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무능함을 이벤트나 안보 정치로 은폐하는 정권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는 사실을. 촛불 민중은 한미동맹보다 한반도 평화를 우선하는 정권을 원한다. 촛불은 다 타서 꺼진 게 아니다. 잠시 꺼 두었을 뿐이다. 퇴행하는 자유주의 정권의 한계가 백일하에 드러나면 촛불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이 그 심지에 불을 붙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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