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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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2016년에서 17년으로 이어진 겨울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어, 그동안 노동자 민중의 가슴속에 쌓여왔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누적된 삶의 불만에 불을 붙였고, 노동자 민중은 연인원 1,7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힘을 ‘광화문 광장’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분출하였다. 그 결과 유사 이래 처음으로 노동자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역사적 경험을 갖게 되었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선언하는 투쟁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그것만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지난 촛불집회 과정을 되돌아보면 많은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촛불이 박근혜 퇴진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 삶의 현장을 바꾸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의 현장, 일터, 학교를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자”는 우리의 바람, 촛불에 참가했던 노동자 민중의 바람이기도 했다. 이 글은 지금 촛불집회 1년이 지나는 상황에서 촛불집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노동자들에게 촛불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전히 핍박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

작년 촛불집회는 87년 투쟁과 비견될 정도로 한국 노동자 민중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작업장 내 노동자들은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배후의 또 다른 주범인 재벌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만도헬라를 보자. 만도헬라는 한라그룹의 자회사인데, 한라그룹은 자회사 만도에서 노동탄압, 노조파괴를 일삼았던 재벌이다. 한라그룹은 자회사 만도헬라를 설립하면서 인천시로부터 공장부지 사용특혜를 받았고, 350여명 생산인력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해왔다. 최근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졌고, 불이행할 경우 범칙금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배 째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과 비인격적 대우에 분노하여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계약해지, 업체폐업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 전원이 공장 밖으로 내몰렸다. 뿐만 아니라 사측은 원청의 대체인력투입이 불법이 아니라는 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가고,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겠다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핍박당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구미 아사히글라스 또한 불법파견 판정이 나고 불이행 과태료까지 떨어졌지만, 아사히글라스 자본은 배 째라는 태도로 돌변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 임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은 빠른 해결을 원하지만 자본에게는 문제를 장기간 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법제도 때문이다. 오랜 기간 노조파괴, 노동탄압에 맞서 투쟁했던 유성기업에서도 여전히 부당노동행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조파괴를 일삼았던 유성기업 유시영 사장은 형이 감경되었고, 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하겠다는 노동부는 집중근로감독을 하고도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도 않았다. 전자잉크를 만드는 하이디스의 경우, 대만자본이 기술만 빼가고 노동자들을 해고한 사업장으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한국지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이 취임 후 가장 강조한 것이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러나 한국지엠에서는 지엠 자본이 의도적으로 물량을 축소하여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의 위협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한국지엠의 경영을 감시·감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대우자동차가 지엠으로 해외매각이 된 이후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산업은행은 지엠의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비토권마저 상실했을 뿐 아니라 “지엠이 철수해도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하여 비판을 받았다.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박근혜의 공범인 재벌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 노동자들은 이처럼 여전히 핍박받고 있다.

점차 줄어들고 있는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기대

지난 1년,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권이 등장한 후 노동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고 있는 대표적인 변화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언과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여전히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인천공항을 찾았다. 이곳에서 1만여 명에 달하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더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포했다. 이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가까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멀게는 제조업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으니 무언가 바뀌겠거니 하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연말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계획이 연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정규직화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천공항 제2청사 개통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 채용이 추진되는가 하면, 직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이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다. 더구나 인천공항운영관리(주)라는 자회사 사장에는 노조탄압을 일삼았던 대우자동차 전 사장을 임명하여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문재인 정권은 생색만 내었을 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행동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1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역대 최대 임금인상을 자랑하며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최근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비록 개인의 견해임을 전제했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 식대, 교통비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주장이다. 김영주 노동부장관은 이미 인사청문회 당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얘기했고, 집권여당은 더불어민주당은 어수봉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침묵하며 비켜나갔다.

박근혜가 대선 당시 노인연금 20만원을 공약했다가 후퇴하자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나마 문재인 정권이 노동자민중의 눈치를 보며 뭔가 했다고 볼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조차 꼼수를 부리며 그 효과를 무마시키려 한다면, 노동자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이런 꼼수에 대한 반발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소정근로시간을 월 240시간에서 209시간으로 하향조정함으로써 최저임금인상 효과를 줄이려고 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발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일은 대부분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들어선 곳에서 강하게 추진되고 있어, 노동자들의 배신감과 반발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권은 자신이 핵심적으로 강조했던 정책들조차 후퇴하려는 움직임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촛불집회 이후 노동자들은 집권 초기 문재인 정권에 대해 가졌던 기대보다는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애초 정권이 지닌 계급적 한계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노조 조직화의 확대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전진

촛불투쟁 이후 노동자들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색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건재한 자본의 압박, 문재인 정권의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를 통해 정치적 각성을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의 설문조사결과(“2017년 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올해 노조가 정치적 민주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은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보다 49.9%포인트나 더 많아 지난 1989년(50.3%포인트)과 유사한 인식 수준을 나타냈다고 한다. 또한 1989년에는 노조가 사회 불평등 완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비율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비율보다 64.1%포인트 높았는데, 올해 역시 62.2%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다. 노동조합이 회사의 부당대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효과는 지난 2007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33.6%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으나, 올해 조사에서 70.3%로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변화는 실제 노조가입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 박근혜 퇴진 투쟁 당시, 인천 송도에서는 만도헬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65일중 350일을 일하는 장시간 노동에 맞서 전체 노동자가 비정규직인 공장에 노동조합의 깃발을 세웠다.
  • 마찬가지로 전체 공장 노동자가 비정규직인 현대모비스의 경우, 오랜 기간의 노조탄압과 감시에도 불구하고, 아산과 화성에서 각각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 금속노조의 경우 각 지역에서 노조가입상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열악해지는 상황이 박근혜 퇴진 투쟁과 맞물려 노조 조직화를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 이는 제조업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파리바게트 제빵기사들은 대규모 불법파견 판정을 배경으로 제빵기사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문재인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한 효과 때문에 노조가입이 확대되고 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감과 겹쳐 5월 12일 이후 조합원이 6백여 명 늘었다.

촛불집회 1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노동탄압, 고용불안, 저임금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는 대체로 박근혜와 함께 수구세력은 정치적 힘을 잃었지만, 또 다른 주범인 재벌은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 최저임금 인상, 쉬운 해고 양대지침 폐기, 부당노동행위 척결 등 박근혜와는 차별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않아 자유주의 자본가세력이라는 자기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노동자의 이해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후진하는 모습을 가시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비록 촛불투쟁을 통해 당장 자기 주변, 생활 속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고 느끼지는 못했을 테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선출된 권력을 쫓아냈다는 자심감과 함께 스스로 조직화하고 투쟁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이것이 노동조합 조직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지만, 향후에는 자유주의 세력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상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더욱 급진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닫고, 이를 실제 투쟁으로 분출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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