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열풍은 왜 사그라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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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Justin Saglio, Getty Images

2016년 미국대선이 이제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처럼 막장에 그런 막장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로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지저분한 모습들이 폭로되었다. 그런데 현재 대선구도에 시선이 가서 망각해서 그렇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혁명”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바람을 일으킨 정치인이 있었다. 바로 버니 샌더스이다.

버니 샌더스는 2015년 중반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 출마를 선언한 후, 선풍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미국 동북부 작은 주 버몬트의 70대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부자 증세, 월스트리트 규제와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정부가 운영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확대, 공공기금에 의한 선거, 기후변화 대응 정책 등의 정책을 제시하며 젊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가 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으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정치후원금만 해도 2억5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한 사람 평균 27달러를 후원해서 이룬 기적과 같은 결과였다.

선거 전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샌더스는 2월 1일부터 시작된 예비경선 레이스를 매우 잘 이어나갔다. 그는 예비경선 투표에 참여한 투표자 중 43.1%를 득표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민주당 주류인 힐러리를 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힐러리가 대의원 2842명(이중 슈퍼대의원은 571명이 지지함), 샌더스가 대의원 1865명을 확보하였고 7월 25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힐러리를 대선 후보로 지명했다. 그 후 그 엄청났던 샌더스의 정치바람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샌더스 돌풍의 사회적 배경

샌더스가 일으킨 돌풍의 배경 자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는 징표였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풍요로운 삶은 197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감소했다. 1980년대까지 각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삶이 나아졌지만, 그 후부터는 두세대 동안이나 생활수준의 악화를 겪었다. 공식 실업률은 5% 미만으로 나오지만, 미국인 중 58%가 통장에 1,000 달러도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특히 1990년대에 태어난 20대들에게 과거 미국이 누리던 풍요로운 삶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2008년 대공황 이후 삶의 조건이 더욱 악화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종주국으로 행세했던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은커녕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형성되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제국의 쇠락 속에서 생활조건의 지속적인 악화만을 겪어 온 미국의 20대 사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증가하였다. 올해 4월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까지의 답변자들은 51%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42%만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하였다. 설문내용을 보면 답변자들이 여전히 여러 모순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다른 연령대 사람들보다 확연히 높은 비율이며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요컨대 경제위기로 인한 삶의 조건 악화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무방비로 노출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증가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저항이 월가 점거 운동일 것이다. 샌더스의 정치적 돌풍 이면에도 이런 변화를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샌더스의 실제 역할

샌더스가 열풍을 일으키자 심지어 좌파, 사회주의자들까지 샌더스 지지에 동참했다. “월가 점거”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자코뱅』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유명해진 바스카 순카라도 샌더스 지지에 동참했다. 그에 따르면 샌더스가 미흡한 점은 있지만 미국 내 좌파가 취약한 상황에서 “샌더스의 입후보는 장기적으로 좌파를 강화시킬 것”이였다. 이런 생각에서 민주당의 후보 출마하기 위해 내부 경선에 나온 샌더스를 지지했던 좌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샌더스의 열풍 이면에 자본주의에 불만을 품은 대중들의 변화 열망이 존재한다고 해서, 샌더스를 마냥 지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샌더스는 미국 주류 양당 중 하나인 민주당의 예비경선 후보로 나온 것이었고, 경선 결과가 어떻든지 그 결과에 승복하여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렇다보니, 이미 샌더스가 등장한 초반부터 그의 역할은 급진적 흐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에 불만을 가진 대중들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표출할 수 있게 해주면서 민주당으로 흡수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샌더스는 이 역할을 정말 제대로 해낸 격이 되었다. 예비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선거부정 의혹과 애초 불리한 선거제도, 주류 그 자체인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필라델피아 전당대회 장소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시위로 시끄러웠다. 지지자들은 “버니 아니면 무효(Bernie or Bust)”를 외쳤고, 힐러리에게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을 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에서 샌더스는 힐러리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로 자기 소임을 마무리했다.

민주당, 그들은 우리의 당이 아니다

샌더스 지지자들 다수는 민주당을 통해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품었다. 민주당이 상층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그것의 대중적 토대는 민중적이기 때문에, 상층과 토대를 분리시켜서 민주당이 민중적 토대의 이해를 대변하도록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이런 생각은 매우 오래된 것이고 여전히 널리 퍼져있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당 왼쪽의 급진적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화당과 더불어 지구상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를 지배하는 자본가 정당이고, 아무리 역사적으로 개혁적인 외양을 띠어왔다 하더라도 이러한 본질은 변할 수 없다. 이제 살펴볼 이야기처럼, 오히려 민주당을 개혁해서 그것이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게 만들겠다고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고 민주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애초 민주당은 남부 노예주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적, 보수적 정당이었다. 반면 공화당은 20세기 초 장기 집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28년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공황의 전례없는 심각성과 지속성에 직면하여 미국 자본가계급은 분열했고, 그 중 상당수는 전통적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공화당을 버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당선으로 정권은 민주당에게 넘어갔다. 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힘이 세지는 것에는 우려를 했지만, 프랭클린의 개혁에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자본집약적 산업이거나 국제적 상업은행으로 개혁의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남부의 전통적 민주당원들은 대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보조금 등을 통해 뉴딜의 혜택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친노동정책 등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다른 세력과 함께 공존했다. 이처럼 뉴딜은 기존 민주당을 변화시켰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계급적 기반이 완전히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뉴딜 동맹을 통해 노동·여성·민권 운동 등 일부 진보세력을 자신의 동맹세력으로 포섭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자본가계급과 남부 지배계급의 동맹체로 바뀐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런 본질을 간과한 사람들은 민주당을 바꾸겠다는 꿈을 계속 꿨다.

1950년대, 60년대에 일부 인사들은 민주당을 ‘재편(realignment)’하려고 했다. 이 재편전략의 핵심은 민주당 내에서 보수적 경향을 대변하는 남부 민주당원들, 이른바 ‘딕시크라츠(Dixicrats)’를 민주당에서 추방하여 민주당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꿔간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흑인 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과 트로츠키주의였다가 변절한 막스 샥트먼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적 딕시크라츠들은 민주당을 떠나 공화당으로 이동했고 이로서 미국 남부지역은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민주당이 왼쪽으로 재편된 것은 아니었다. 민주당은 사민당화되기는커녕 보수화되었고, 이 전략을 추진한 인사들 자체가 이전보다 더 우경화되었다.

그 후 1970년대에는 ‘신정치(New Politics)’란 이름의 민주당 개혁시도가 이어졌다. 반전분위기, 민권운동의 활성화 등에 힘입어 민주당의 제도를 민주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민주당은 매거빈-프레이저 위원회를 만들어 대의원 선출 및 조직 체계 민주화를 진행했다. 샥트먼과 함께 활동했던 마이클 해링턴은 좌파, 자유주의 서클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자유주의-노동 동맹’으로 민주당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1930년대처럼 노동운동이 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통한 민주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상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오히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으로, 민주당은 뉴딜시기 형성된 동맹 구조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웠다. 가령 뉴딜 이후 민주당을 지지해온 석유회사들이 민주당에서 멀어졌다. 이런 이탈을 막기 위해 민주당은 자본의 이해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카터였는데, 미국 정치의 우경화에서 한 역할로 보면 카터는 레이건이나 닉슨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선 경선을 통해 민주당을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를 반복했다.

1960년대 민주당 린든 존슨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위대한 사회’를 외치면서 복지를 확대했다. 그러나 존슨은 베트남 전쟁을 지속했고 이것은 반전운동과 결합해 민심이 이반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1968년 베트남의 구정공세는 미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반전분위기에 힘입어 1968년 미네소타 주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가 당내 경선에 출마했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인에 불과했지만, 베트남전쟁에 대해 협상을 통한 종전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입장에 기대를 건 수천 명의 청년 활동가들이 매카시에게 결합했다. 그들은 장발의 머리를 깎고 양복·치마로 옷을 갈아 입은 후 선거운동에 헌신했다. 뉴햄프셔 3월 경선에서 매카시가 42%를 획득하자 린든 존슨은 대통령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해 시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시위와 폭력진압이 난무하는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비민주적으로 경선에 나가지도 않았던 부통령 허버트 험프리가 대선후보로 지명되었다. 매카시의 선거운동은 민주당의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수천 명의 활동가들이 민주당으로 합류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 민주당을 개혁하기 위해 맥거번-프레이져 위원회가 설립되어 당내 민주주의 확대 등의 제도개선이 이루어졌다. 이때 힘을 쓴 당내 민주주의의 기수 조지 맥거번이 1972년 민주당 대선에 나섰다. 청년, 소수인종, 반전, 히피 세력들이 집결하면서 민주당을 좌파가 접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선에 나온 맥거번은 민주당 주류의 반발과 반공주의의 도구가 된 AFL-CIO의 지지거부로 인해 닉슨에게 패배했다. 아울러 맥거번 자체가 자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대놓고 “좌파 포섭(co-opting the left)” 전략을 선거전략으로 사용했다. 결국 선거를 주도했던 운동세력은 선거도 패배하고 민주당도 바꾸지 못한 채, 민주당의 새로운 피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제시 잭슨이 이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2016년 샌더스에 비견할 수 있는 가장 유사한 사례가 제시 잭슨일 것이다. 시카고에서 활동한 흑인 정치인 제시 잭슨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될 때 바로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민권운동가였다. 레이건 집권기 보수화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제시 잭슨의 1984년, 88년 선거 캠패인에 결합했다. 제시 잭슨은 ‘전국무지개연합(National Rainbow Coalition)’을 구성하여 선거에 참여했다. 이들은 ‘거부당한 자들의 동맹’이라는 평을 받았고, 사회운동과 선거정치의 분리 극복을 주장했다. 선거는 부차적인 것이고 대중운동, 정치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은 풀뿌리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잭슨의 언변과 대중성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4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잭슨은 21% 득표로 11%의 대의원을 얻었다. 이 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월터 몬데일은 잭슨에게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았지만, 잭슨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좌파는 제3당 결성을 위한 ‘대중적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착각을 했다. ‘전국무지개연합’은 급속히 우경화하는 민주당에서 자유주의 분파의 위치를 얻었을 뿐이었다.

1988년 선거 캠패인은 84년보다 우경화되었다. 잭슨은 주류 흑인 민주당원의 지지획득을 목표로 하는 주류 전략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 다른 주류 후보와의 차별성이 사라졌다. 이 해 대선 후보는 메세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두카키스로 지명되었는데, 잭슨은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자신의 지지자를 앉히는 대가로 두카키스를 지지하기로 했다. 당강령을 진보적으로 바꾸려는 바람은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렸다. 전국무지개연합은 결국 민주당을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 거대 자본에게 활동가들을 넘겨주는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이처럼 민주당의 오랜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애초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의 대중적 토대에 대해 환상을 품은 채 민주당을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한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다. 아니 더 나아가 그런 시도를 했던 세력들은 대부분 그 스스로가 우경화되어 민주당에 흡수되고 말았다.

차악이 아니라 유능한 악

샌더스가 택한 전략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래 전에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진보세력을 지배하는 것은 이런 민주당 언저리에서 민주당에 기대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힐러리가 대선 후보로 나온 이후 정치에 대한 냉소와 환멸이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해 이러한 전략 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를 극우, 파시스트로 선동하면서 차악이라 할지라도 힐러리를 선택하자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일어날 끔찍한 현실을 상상해보면 힐러리가 그나마 낫다는 것이고, 공화당이 집권할 때에는 사회운동이 수세적인 상황으로 변하지만 민주당이 집권할 때에는 공세적으로 투쟁할 공간이라도 형성되고 “협상테이블에 자리라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한편 “딱 올해만” 힐러리를 찍자는 구차한 논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 논리의 문제는 해가 바꿔도 언제나 “딱 올해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미국 자유주의, 민주당 정치를 지배하는 특징을 바로 ‘차악주의’라고 부른다.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는 민주당이라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그리고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가 정말 ‘차악’인지는 곱씹어볼 일이다. 오히려 ‘은폐된’ 더 큰 악이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을 트럼프보다 훨신 ‘유능한 악’으로 묘사한 『블랙 어젠다 리포트』 대니 하이펑의 글이 시사적이다.

트럼프는 멕시코인을 강간범이라고 불렀고 이민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8년 전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대통령들 보다 더 많은 이민자를 추방했고 미국-멕시코 국경을 더욱 군사화했다. 트럼프는 미국 내 무슬림의 신분확인시스템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국내에서 무슬림과의 전쟁을 감행했고 해외에서 무슬림에 대한 확대된 드론 공격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이로 인해 두 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이러한 정책을 두고 오바마 행정부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얼마 없다. 그러나 수천의 사람들이 트럼프의 수사에 대해서 반대하고 나섰다. 트럼프가 악이라는 점은 정말이다. 그러나 오바마와 민주당은 여전히 훨씬 더 유능한 악이다.

민주당 차악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다행인 점은 존재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기성 양당 정치에 대한 환멸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커지고, 샌더스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새로운 제3당, 사회주의 지향의 노동자 정당의 출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요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이것은 분명 전진이며 희망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국 정치의 차악주의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치에도 미국의 차악주의와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17년 전 민주노동당 창당을 했을 무렵에는 자유주의세력과 단절하는 노동자들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문제의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퇴보를 지속하였다. 이른바 진보정당들은 우경화를 계속하여 이제는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더불어민주당같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이 진보라 불리고, 이들과 연합해 조그마한 성과라도 얻으려는 행태가 스스럼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반이명박·반박근혜라는 악에 반대하는 정치전선까지 추가하면 미국정치에서 횡행하고 있는 차악주의 정치와의 유사성은 더 커진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의 오랜 역사, 그리고 가깝게는 샌더스 열풍의 소멸은 이런 한국의 운동 흐름이 왜 문제이고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그들은 우리 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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