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투쟁기조를 넘어서야 성과퇴출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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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 세계]

4월 8일 광화문광장에서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그 제목은 “이게 나라다! 공공노동자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 성과퇴출제 폐기를 넘어 공공대개혁으로 토크콘서트”였다. 국민건강보험노조는 이 집회에 전국의 전조합원이 참여하였다.

이 집회 후 노조게시판에서는 집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입장들이 개진되었다. 다른 경로들을 통해서도 불만들이 표출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지적이 있다. 바로 노조가 노조답게 투쟁을 해야지, 토크콘서트라는 명분으로 대선후보들의 선거운동에 조합원들을 들러리로 전락시켜서야 되겠냐는 지적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자 민중들은 엄청난 저항으로 국회와 검찰 그리고 언론을 압박하였고, 결국은 국회가 박근혜를 탄핵하고 민심을 의식한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의 파면을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박근혜가 구속되었다. 이러한 정세를 반영하여 노동조합이 그동안 침체되었던 활동을 재개한다는 점에서, 이 날 집회는 분명 의미가 있는 집회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공공대개혁’은 분명 정세에 부합하는 구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불만과 비판들이 나오는 것일까?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저급한 욕망과 투쟁회피로 점철된 노조

우선 최근 몇 년 동안 건강보험노조가 어떻게 활동해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의 잘못된 점들을 밝혀 노조가 나가야 할 올바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IMF 공황 이후 자본가정권의 공격이 강화되자, 투쟁파들은 저항했지만 거듭되는 패배에 조합원들은 이제 협조파들을 선거에서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상층관료들은 공단 내에서는 ‘기관평가’를 잘 받기 위해 사측과 협조적으로 나아갔고, 대외적으로는 “4대사회보험노조협의회”(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포괄하는)라는 틀을 만들어 이것을 정치권에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단 내 상급조직이 다른(사회보험노조는 민주노총, 직장노조는 한국노총) 두 노조를 합치는 ‘묻지마식 통합’이 등장했다. 노동운동 내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에서였다. 즉 지금은 노조가 나뉘어져 있어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통합되어 하나가 되면 힘이 세져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들은 노조원들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출세를 위한 목적으로만 통합을 주장한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고 통합 후 기존의 산별노조인 ‘공공운수노조’가 아닌 민주노총 직가입을 추진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민주노총이 정권과 자본의 무차별 공세 속에서 현재의 민주노총-연맹-산별 등 조직체계로는 조직적 결의는 하지만 실질적 실행이 되지 못하고 있는바 조직적 결의 후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 전체적 조직 개편이 이루어 질 때까지 한시적 직가입을 요청함”(직가입요청 공문). 이 공문의 의도는 명확하다. 어려운 일은 상급단체로 넘기고, 위원장의 권한을 가지고 공단 내에서 노사협조적 지위를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는 4대사회보험노조를 활용하여 정치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임금피크제 공격이었다. 상층관료들은 직감적으로 공단 내의 협조관계로는 임금피크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015년 교섭권과 체결권을 공공운수노조에 넘긴 후, 마치 그것이 자신들의 투쟁 결의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이번만큼은 공공부문의 공동투쟁을 성사시켜 임금피크제를 막아내겠다고 공언했다. 사실 이들의 속셈은 공투 분위기를 띄워 놓고 이에 편승해서 자기들 사안 먼저 타결하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사측은 갑자기 돌변하여 정부가 정한 기일 내에 임금피크제를 통과시키지 않으면 예산이 삭감된다며 조합원을 협박하였고, 결국 임금피크제를 통과시켰다. 그 과정에서 노조는 규약에 있는 공고기간도 지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총회에 부의된 안과 실제 실행된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지기까지 했다. 그 결과 임금피크제 재협상이 노사간에 합의 된 상태다.

노골적인 정치권 줄대기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이러한 상황에서 전임 집행부보다 후배들로 이루어진 현 집행부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조합원 전체의 조직적 투쟁보다는 정치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대의원대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도록 결정하고, 이를 실행했으며, 현 대선국면에는 정치후원금(세액공제)사업을 전조합원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4월 8일 토크콘서트가 열린 것이니 조합원의 시선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기대는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노조 고유의 사업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유명무실해진 상태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면, 임금피크제 재협상도 사실은 방치상태였으나 들끓는 조합원들의 원성에 밀려서 하고 있다. 조직의 가장 큰 현안인 성과연봉제 투쟁은 더욱 한심한 처지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중식집회 사진 찍어서 게시판에 올리는 것과 성과연봉제 실시금지 가처분 신청한 것이 전부이다. 게다가 선배들의 못된 점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도 배운다. 전에 있던 “4대사회보험노조협의회”를 확대하여 “전국사회보장기관 노동조합연대”를 만든 후, 투쟁회피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정책용역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마치 일제치하의 독립운동이 초기의 투쟁위주에서 문화운동, 교육, 실력양성 등의 자치운동으로 나아가며 사실상 친일행위로 변절된 것을 연상케 한다. 그 당시도 독립은 불가능하다며 자치운동, 협동조합운동 등 운동으로 포장된 거짓 행태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자 자신들의 이익을 찾는 저급한 자들이 득세하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정치권 줄대기 및 연대활동(국회, 정부, 시민단체 등과의)은 사실은 자기조직의 투쟁현안을 조직적 투쟁으로 돌파하려하지 않고 회피하면서,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조합원의 눈을 속이는 알리바이성 활동이다.

노조가 협조적이 될수록 식물노조로 전락한다. 학습하고 토론하여 투쟁하는 노동조합으로 거듭나야 한다.

4월 8일 광화문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수 있게 된 것은 민중들의 투쟁 때문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민주주의 후퇴에 분노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민중들이 거리에 나선 이면에는 자본주의가 만드는 고통이 있었다. 박근혜가 물러난 이상 이제 우리는 민중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맞선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민중 투쟁의 선봉에 서야할 노동조합은 반대로 자본에 매달려 고용과 사내복지에 발목이 잡힌 협조적인 노조로 전락하였다. 노조가 협조적이 될수록 조직력, 투쟁력, 조합원들의 의식은 퇴화되어 식물노조로 전락하였다. 이제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만 한다. 노동조합의 고유한 장점인 조합원 교육‧토론을 통해 투쟁력을 높이고, 투쟁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는 민중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1300조가 넘는 가계부채, 저출산, 청년실업, 비정규직화, 구조조정, 노후빈곤 등, 이 사회는 자본주의가 만드는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노동조합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충실이 이행하여야 한다. 즉,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와 싸우는 투쟁을 해야만 한다. 이제부터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자본주의와 싸워나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동조합은 “성과퇴출제 폐지, 노동자가 주도하는 공공부문 대변혁”을 정치권에 당당하게 주장하여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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