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광풍, 희망 없는 자본주의의 신기루

0
1592

정부가 긴급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광풍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100만 원 선에 머물러 있던 1비트코인(1BTC)의 가격은 12월 초 1100만 원을 넘어 현재 2천만 원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늦기 전에 투기 대열에 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온·오프라인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의 원화는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에서 미국의 달러화, 일본의 엔화 다음으로 3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비트코인 가격의 급격한 변화가 잇따르자 국내의 대표적인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은 사이트 전면에 “암호화폐의 가치 변동으로 인한 손실 발생 가능성 등을 유념하시어 무리한 투자는 지양하십시오.”란 유의사항을 팝업창으로 띄워 놓았다. 한편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인 유빗이 지난 4월에 이은 두 번째 해킹으로 사실상 파산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암호화폐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향후 추세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대체 뭘까?

이미 많은 매체들이 보도한 것처럼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익명의 개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일종의 암호화된 디지털 화폐이다. 개발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2011년부터 성장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세계 최대의 선물 거래소인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도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이외에도 이더리움이나 라이트코인, 대시 등 다양한 암호화폐가 존재하고 개발 중이지만 그 중에서도 비트코인은 최초로 등장한 암호화폐란 점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비트코인의 특징은 기존 온라인 화폐거래에 있어 제3자인 은행 등 금융기관이 하는 역할을 ‘블록 체인(block chain)’이란 기술로 대체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송금을 한다고 할 때 우리는 화면상에 보이는 화폐거래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즉 디지털화된 돈이 ‘복제’되어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의 감소가 다른 한 쪽의 증가로 이어지는지 여부를 양쪽의 온라인 계좌 장부에 접근할 수 있는 금융기관에게 일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의 신뢰성을 확보한 대가로 송금과 온라인 결제에 있어 각종 수수료와 다소의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이 과정을 해당 시스템 내의 모든 이용자들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분산하여 공동으로 관리한다. 비트코인을 통한 모든 거래는 암호화된 블록 체인이란 디지털 장부에 기록되는데, 새로운 거래가 발생한다면 이 때 사용된 비트코인이 이미 사용된 비트코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 거래를 새롭게 블록 체인에 저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암호화된 블록 체인을 푸는 작업에 참여한 이용자들에게 참여한 공로만큼의 비트코인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 바로 마이닝(mining), 채굴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매우 복잡한 수학적 암호를 해결한 대가로 채굴했다고 생각하는 비트코인은 암호화폐 거래에 있어 신뢰성을 확보하고 이중지불의 문제 등을 해결한 대가인 것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

이로써 비트코인 이용자들은 전 세계의 어느 누구와도 비트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고 상호 직접 거래를 하다 보니 금융기관 등에 별도의 수수료를 낼 필요도 없게 되었다. 또한 2100만 개로 한정된 비트코인의 공급량은 손쉬운 채굴이나 공급량의 증량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억제하는 기초가 되었다. 화폐를 통제하는 국가도 금융기관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의 수평적 금융네트워크의 등장은 언뜻 보기에 이상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거래가 획기적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비트코인과 실물상품간의 교환비율, 즉 암호화폐의 가격은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한 사이트에서는 어림잡아 10가지가 넘는 가격 결정 요인들을 열거하고 있지만, 사실 명목상의 화폐안 암호화폐에 내재적 가치가 존재할 수는 없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나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대표, 폴 크루그먼 등이 비트코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이 때문이다. 하다못해 달러 등의 현실 화폐는 강제 통용력을 발휘하는 국가를 보증으로 삼지만 비트코인은 가치를 담보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한편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화폐가 가치를 표현하는 존재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달러와 마찬가지로 화폐가 반드시 가치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내재적 가치가 없음에도 비트코인은 정부와 중앙은행에 의존하지 않는 화폐로써 기술적으로 의의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의가 없는 가치를 만들거나 비어있는 가치를 채워주진 않는다.

오히려 현재 비트코인의 가치를 보증하고 있는 건 비트코인의 기술적 우수성이 아닌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 그 자체다. 지난 12월 4일 국회 공청회에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가상화폐 열풍은 다른 투자자들이 자기가 산 것보다 높게 사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투자에 뛰어드는, 다분히 폰지(다단계 사기) 수법적인 특성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한 건 이런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즉 사놓으면 팔리고 또 누군가가 살 것이란 기대가 비트코인의 가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화폐물신성과 비트코인 광풍

이처럼 비트코인은 내재적 가치도, 가치의 안정화 메커니즘도 없을뿐더러 국가에 의해 강제로 통용되는 법정화폐도 아니다. 또한 가장 큰 장점이라 언급되는 이용자 간 직거래(peer2peer) 역시 난관이 많다. 비트코인 결제가 불가능할 경우 다시 원화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수수료가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다. 결국 비트코인이 선사하는 거래비용의 감소는 비트코인 사용이 일반화되거나 또는 허가된 영역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처럼 제한적인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광풍이 몰아치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150년 전, 맑스는 『자본론』에서 화폐의 기원을 상품으로부터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상품의 생산과 교환이 증대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 즉 서로 다른 상품의 교환 척도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번거롭게 상품의 물물교환을 반복할 필요 없이 일반적 등가물‘만’ 소유하면 모든 교환이 손쉽게 가능하게 되었다. 일반적 등가물 역할을 하는 상품은 역사적으로 금과 은이란 상품화폐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품교환의 발전 속에서 등장한 일반적 등가물이란 화폐의 기능이 현실의 상품교환에서는 화폐 역할을 하는 특정한 상품이 애초부터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인 것처럼 전도되어 나타난다. 이를 화폐물신성이라고 한다.

물론 1970년대 초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 태환이 정지되며 더 이상 금이 화폐로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화폐에 덧씌워진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존재한다. 화폐를 무한한 욕망의 대상으로 갈구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도, 화폐의 내재적 속성도 아닌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써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폐의 이 능력은 화폐에 애초 내재된 초자연적 힘으로 물신화된다. 비트코인에서는 이 화폐물신성이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돈이 돈을 낳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화폐물신성에 현혹되어 사람들은 비트코인 투기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기는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말의 코스닥 붐이나 2000년대 후반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그 이후의 각종 파생상품 열풍과 꺼질 줄 모르는 부동산 투기 등 낮아진 이윤을 보전하기 자본은 끊임없이 투기에 나선다. 그리고 이런 투기 광풍은 매번 낮은 임금을 버는 노동자 민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소득을 벌충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게 만들어 사실상 전 국민을 투기장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간 이후에는 이전보다 몸집을 불린 대자본만 남게 될 뿐 수많은 개미 중 제 한 몸 건사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이번 비트코인 광풍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내일이라도 폭락할 수 있는 투기에 혹하게 되는 건 그것 이외에는 마땅히 기댈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비트코인 광풍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신기루를 쫓는 자본주의의 병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희망 없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제2, 제3의 비트코인 광풍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