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아닌 생산관계의 혁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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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voanews]

요즘 세상이 4차 산업혁명으로 시끄럽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며, 관련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구성을 공약으로 내걸고, 사물인터넷망 구축, 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철수는 자신이 IT업계 출신임을 부각하면서 문재인의 접근법이 과거 방식의 정부주도라는 점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갈 인재형성에 주안점을 두고 “교육혁명”을 주장하고 있다. 주류언론도 4차 산업혁명은 기정사실이고 우리가 이 대세에 잘 적응해가는 게 지상목표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촛불에 밀려 청와대에 처박혀 있는 박근혜조차 염치없이 4차 산업혁명 논의에 끼어드는 어처구니없는 광경도 연출됐다. 박근혜는 1월 25일 정규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치적으로 통진당 해산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진 것을 들었다. 혹여나 탄핵이 무산되면 대통령 행세를 다시 할 수 있을거라 착각하고 있는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클라우드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란 소문도 들린다.

4차 산업혁명이 제시하는 청사진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이다. 예전 SF소설이나 영화에나 나올만한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고,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경제적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그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이른바 “생산성의 역설”이다. 정보통신기술이 대거 도입될 때에는 뭔가 대단한 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이야기 되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정보통신기술이 본격적으로 산업에 도입된 1970년대 이후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런 실제 현실에 의거해 4차 산업혁명이 말하는 기술혁신이 얼마나 생산성 향상과 이윤 향상으로 이어지겠냐는 의구심 역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이 나온 배경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 포럼의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제기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용어이다. 세계경제포럼은 독일 출신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이 만든 단체인 유럽경영포럼을 모체로 한다. 클라우스 슈밥은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을 졸업한 후 유럽으로 돌아와 유럽경영인이 미국의 경영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1971년 스터디그룹인 유럽경영포럼을 설립했다. 그리고 1987년에는 명칭을 지금의 세계경제포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매년 1-2월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국제적 회의를 열고 있다. 슈밥은 세계경제포럼을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렇게 국제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의 주제가 ‘제4차 산업혁명 이해하기’로 잡히면서, 그의 4차산업혁명 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4차 산업혁명 개념 자체는 그렇게 엄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위해 적절히 과거의 자본주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몇차 산업혁명이 어떻고 하는 논의를 끌어온 것은 슈밥 이전에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제레미 리프킨이 있다. 그는 2011년 「3차 산업혁명」이란 책을 출간했고, 한국에도 2012년 번역 출간되었다. 리프킨에 따르면, 1차 산업혁명은 19세기 석탄 에너지에 의지하고 인쇄술, 전보 등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기반한 시기였다면, 2차 산업혁명은 20세기 석유, 전화, TV, 라디오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가 가고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의 결합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이 도래하여 공유를 중심으로 한 수평적 분산적 권력구조가 형성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리프킨이 3차 산업혁명을 끌고 나와 떠들썩했던 게 몇 년도 안 돼 이번에는 4차 산업혁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나왔다. 슈밥의 주장을 담은 책이 시중에 번역출간되었지만, 그의 주장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글로 「4차 산업혁명: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있다. 이 글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슈밥은 4차산업혁명의 도래로 소비자와 공급자는 효율성, 생산성 면에서 큰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고용의 변화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에 대해서 크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의 자동화로 인해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하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격차를 키우고, 고용시장 자체가 다수의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와 소수의 ‘고숙련/고임금’ 일자리로 양극화되고 중간층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혁신을 일으킨 3차 산업혁명과 구분되는 이유로 슈밥은 속도, 범위, 시스템충격이란 세 요인을 들고 있다. 3차보다 더 빠르고, 더 폭넓게 진행되고 시스템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구체적 예로 모바일 기기의 확산, 전례없는 지식 처리․축적․접근,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3D 프린터,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소재과학, 에너지 저장기술, 양자컴퓨터 등을 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옥스퍼드 대학 칼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의 2013년 보고서, 「고용의 미래: 우리의 직업은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가 거론된다. 이 보고서에서 따르면,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텔레마케터, 화물운송 중개인, 시계 수리공, 보험 손해사정사, 전화 교환원, 부동산 중개인, 계산원, 택시기사 등이 컴퓨터로 대체될 가능성 높은 직업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미백악관 「AI와 자동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프레이와 오스본의 보고서와 더불어 ‘AI 자동화는 인간의 직업보다는 업무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며 9%의 직업만이 없어질 것이라고 추산’한 OECD 연구를 인용했다. 4차 산업혁명이 실제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는 장담 못하지만, 슈밥이 거론한 영역에서의 기술발전이 노동자의 고용에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끝없는 기술혁신은 자본주의 자체의 본성

그런데 4차 산업혁명 논의가 앞세우고 있는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에서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사실상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이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자기 역사로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 도입으로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노동과정 및 고용구조의 변화 역시 새로운 일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고용의 변화는 실상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계속해서 나타난 현상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성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이후 인용은 김수행역 『자본론』 1권의 것이다.)

우선 자본주의가 기술혁신을 추구해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게 생산의 목적인 체제가 아니라 이윤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 이윤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의 일부를 착취하는 것을 통해 형성된다. 자본가와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일정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데,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임금)을 생산하는 ‘필요노동시간’과 자본가들의 이윤(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잉여노동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자본가들은 이 잉여노동에서 이윤이 나오기 때문에 잉여노동을 극대화하는 데에 사활을 건다.

자본가가 잉여노동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길이를 연장하는 방법(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 일정한 노동시간 내에서 잉여노동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방법(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있다. 여기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을 하락시키는 방식을 통해 잉여노동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하락은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서 노동생산성의 상승이라는 말은 노동과정에 변화가 일어나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단축되며, 그리하여 주어진 양의 노동이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426쪽)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산업에서 생산성이 상승하여 생활수단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하락할 것이다. 결국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이전보다 구매력은 같지만 액수는 줄어든 임금을 주는 것을 가능해지고, 이로써 상대적으로 잉여노동의 비율이 증가한다. 그런데 노동생산성의 상승은 기술혁신을 전제한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는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수 있으려면 먼저 노동과정의 기술적, 사회적 조건, 따라서 생산방식 그 자체가 변혁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426쪽)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 전체에게뿐 아니라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키는 것이 이점이 있음을 밝힌다. 즉 개별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보다 빨리 신기술을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그는 시중의 동일제품보다 낮은 가치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 자본가는 이를 통해 다른 자본가들은 누리지 못하는 “특별잉여가치”를 얻는다. 따라서 “각 개별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서 상품가치를 저렴하게 하는 동기를 가지게 된다.”(430쪽)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은 과거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약적 생산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의 상승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면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조금 일하고 일 자체도 수월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발생한다.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조차 기술혁신이 사회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고용구조를 양극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일이 이미 기계제 대공업이 시작될 때부터 발생했다.

우선 기계의 도입은 인간을 기계에 완전히 종속시키고 이를 통해 자본가에 대한 종속을 완성한다. “매뉴팩쳐와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공장에서는 하나의 생명 없는 메카니즘이 노동자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며, 노동자는 살아있는 부속물로 그것에 합체되어 있다.” “노동이 가벼워지는 것조차 고통의 원천으로 되는데, 왜냐하면 기계가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동으로부터 일체의 내용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의 지적 요소들을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자를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 기계의 토대 위에 세워진 대공업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개별 기계 취급노동자의 특수한 기능은 기계체계에 구체화되어 있는 과학과 거대한 물리력과 사회적 집단노동 앞에서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사라져버리며, 기계체제는 이 세 가지 힘들과 함께 고용주의 지배력을 구성하게 된다.”(567-568쪽)

마르크스는 고용구조의 변화도 지적한다. 우선 기계제 대공업에서는 “매뉴팩쳐에서와 같은 유기적 집단 대신에 우두머리 노동자와 여러 명의 조수 사이의 결합이 나타난다.”(564쪽) 그리고 “노동자를 육체적 노동자와 노동감독자로, 산업군의 병사와 하사관으로 분할하게 된다.” 두 번째로 기술혁신이 노동시간의 단축과 노고의 경감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자연적 한계를 넘어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세 번째, 기계의 도입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고 실업이 증가한다. 마르크스는 그래서 “노동수단이 기계의 형태를 취하자마자 곧 노동자 자신의 경쟁자로 된다”고 말한다.(577쪽) 기계제의 도입으로 기존의 수공업, 매뉴팩쳐의 숙련 노동자는 이전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기계에 의한 노동생산성 증가는 기존 노동자보다 적은 수로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상대적 과잉인구’가 형성된다. 기계의 도입으로 새로운 산업이 형성되거나 시장 확대 등으로 기계 대체로 감소하는 노동자를 상쇄할만큼 투자가 일어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실업의 증가가 만성적이고, 그것의 중요한 원인이 바로 생산에서의 기술발전이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혁명을

자본주의에서 기술혁신이 노동자를 더욱 예속시키고 고용구조를 악화시키고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증대하는 수단이 되는 이유가 기술 그 자체 때문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기계 및 기술 자체와 특정한 생산관계에서 그것을 이용하는 방식을 구분했고, 기술혁신과 이로 인해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는 것 자체는 인간해방을 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또한 기술혁신이 인간해방이 아니라 인간의 예속과 고통을 낳는 것은 기계가 제한된 생산의 목적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그 누구의 수고를 덜어 준다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주장했다.(499쪽) 또한 “우리는 사회적 생산과정의 발전에 기인하는 생산성 증대와 그 발전의 자본주의적 이용에 기인하는 생산성 증대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567쪽)

그런데 자본가는 기술과 기술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구분 못하고, 이 둘을 동일한 것으로 등치시킨다.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가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 이외의 다른 어떤 사용도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기계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exploitation)는 노동자에 의한 기계의 이용(exploitation)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폭로하는 사람은 기계의 사용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이며 사회적 진보의 적이다.”(593쪽) 4차 산업혁명 논의와 관련해서도 이런 식으로 기술혁신을 신성화하며 이를 비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세력이라는 주장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19세기 초반 러다이트 운동이다. 기계와 무망하게 싸웠던 과거의 운동을 비판하는 것을 통해 혁신된 기술의 수용이 피할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이를테면 『한겨레』는 연초 게재한 「한국은 왜 ‘4차 산업혁명’이 안 보일까」라는 기사에서 “19세기 초 러다이트가 기계와 싸우려했듯 로봇과 싸워야하는 어두운 여정에 우리가 들어서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조선일보』도 동일하게 4차 산업혁명을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들이민다. 『조선일보』는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서 뒤처지면 미래를 송두리째 잃는다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기술결정론을 비판하는 논지를 접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이런 기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적, 정책적 노력을 지적하는 것이지 기술 변화의 자본주의적 속성을 비판하는 것을 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592-593쪽)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사실 자본주의적 기술 이용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이미 마르크스가 설명하였고, 현실에서 확인되었으며,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 스스로도 시인하듯이, 더 큰 불평등과 예속을 낳는다. 그렇다면 기술의 자본주의적 이용을 제거하고 기술이 인간의 해방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은 맹목적 기계거부로 러다이트 운동을 왜곡하지만, 19세기 초 위대한 노동운동 중 하나였던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평가는 달랐다.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지만, 노동자는 결국 “기계와 자본에 의한 기계의 사용을 구별하고 따라서 물질적 생산수단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형태를 공격하는 것으로 옮길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575쪽)

농민의 자식이라는 성장배경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싹 트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번역서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이 있다.

한개의 댓글

  1. 산업사회 본질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매우 예리하고, 정확합니다. 물론 공산주의 실패로서 그의 통찰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상호작용은 산업사회 분석과 예측에 중요한 부분이며, 정보혁명 이후 정보사회에서도 계속 학문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센서의 연결과 상호작용을 통한 생산혁명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눈 앞에 두고 있는 정보혁명과 일부 겹치지만 산업사회의 유물입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의 필요를 통해 존재하게 됐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기기, 기계가 생산과정에서 생성하는 정보는 오직 그 생산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까지 오직 제품 생산 관련 동작을 하던 기기, 기계가 동작과 관련된 정보를 생성하고, 생성된 정보의 수집, 상호작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되는 제품의 형태와 형질을 다양화할 수 있는 기술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생산 라인의 변경 없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 노동자의 개입보다 프로그램의 개입이 절대적이며, 노동자는 클릭과 터치만으로 생산 품목, 형태, 형질, 수량을 변경, 관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땅에서 농사를 짓지만 농민이 갖는 사회, 경제적 지위와 권리, 의무, 기회가 봉건사회와 산업사회에서 전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산업사회와 정보사회에서 농사와 농민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권리, 의무, 기회는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입니다. 황정규님의 분석과 주장은 이런 달랐고 다를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거나, 부재하고 자본과 노동에 대한 통찰이 깊었지만, 한계가 분명해진 마르크스의 정의와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4차 산업혁명과 정보혁명, 정보사회에 대한 이해에 사당한 참고는 되겠지만, 한계 또는 오류 역시 상당하고 판단합니다.

    = 추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정보통신기술이 본격적으로 산업에 도입된 1970년대 이후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는 현상이 확인’된 게 있나요? 처음 듣는 얘기이고,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같은 양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자가 줄고, 같은 시간에 생산하는 생산량이 늘었다는 얘긴 많이 봤고, 공감하지만….’노동 생산성 하락이 확인’됐다는 얘긴 들어 본 적도 없고,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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