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로의 투항을 자랑으로 삼는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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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연대노동포럼 페이스북 페이지]

박근혜 탄핵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던 지난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는 많은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방침이 논의되었다. 정치방침관련 주요한 안건 내용은, 대선 전에 선거연합정당을 건설하여 단일한 민중후보로 대선에 대응하며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 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원칙적인 방향만 제시하는 수정안, 진보적인 정당들간의 단일한 후보를 지지하자는 수정안, 민중후보 전술은 삭제하고 정당 건설을 추진하자는 수정안 등 여러 가지 수정안들이 나왔으나 모두 부결되었다. 작년 8월에도 민주노총은 정책대의원대회를 열어 정치방침을 오랜 시간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지난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과는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근본 이유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전망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벼랑으로 내몰리는 노동자 민중의 상황과는 달리 진보정당은 우경화로 일관하면서 분열했고, 급기야 자유주의 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정의당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정당의 구분조차 흐릿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급기야는 자유주의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아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에 투항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소수의 변절자로 치부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노동자를 위한 것인 양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으로의 투항을 자랑으로 삼는 사회연대노동포럼

대표적인 것이 작년 12월 발족한 ‘사회연대노동포럼’이다. 사회연대포럼에는 지난 시기 민주노총의 위원장 등 지도부를 구성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임성규(전 민주노총 위원장), 문성현(전 민주노동당 대표), 정용건(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백순환(전 금속산업연맹 위원장), 이재웅(전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을 포함해, 현대자동차 지부장을 했던 김광식, 윤해모, 이경훈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촛불 민심이 이번에는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자유주의 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주장하고 있다.

사회연대노동포럼은 정책대회에서 ‘30년의 반성, 20년의 전망’이라는 자료를 통해 “대중조직의 간부들은 지난 시기 진보정당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사분오열된 진보정당으로 인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먼 미래의 과제로 던져버렸다”며 “오죽하면 분열된 진보정치세력들이 통합이 아닌 선거 시기 일시적으로 연합하는 ‘선거연합정당’을 이야기 하겠나”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을 정립하지 못한 채 자유주의 세력의 기회주의‘성’을 폭로하기 위해 나오는 후보전술은 추후에 도모할 정치세력화에 어떠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주체적인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차선으로 자유주의 정당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세상)

뒤가 구릴수록 변명하는 말이 거창한 것처럼 이들은 사회연대, 복지국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 나름 거창한 단어들을 동원해 자유주의 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지금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현재 실패한 이유가 진보정당의 ‘사분오열’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어려운 상황을 핑계삼아 자신의 배신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지도부를 꿰어 차고 관료집단을 오랜 기간 유지해왔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니,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장식품 정도로 치부되었을 뿐 아니라 망가져왔던 것이다.

이들은 지난 2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정책대회를 열고, 문재인에게 △ 최저임금 1만원 인상, △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확대, △ 노동가치와 고용의 정상화, △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 정부의 산업육성 및 일자리 정책 등 5대 정책과제를 담은 제안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말 당선가능한 자유주의 정권으로 교체를 통해 위의 과제를 실현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 등은 지금 노동자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자본가들, 재벌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쟁취할 수 있는 과제들이다.

영리한 이들이, 자본가 계급의 일부인 자유주의세력이 자본가들과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장식품으로 해서 정권교체 후 새 정부에서 한자리 하겠다는 것, 이것이 이들의 본래 생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울산저널 기사를 보면 문성현은 1월 19일 울산노동포럼 출범식에서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고 우리 뜻을 모아서 우리가 하자, 노동부장관이 됐건, 청와대 수석이 됐건,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이 됐건 우리에게 맡겨라, 필요하다면 경제부처와 치열한 권력투쟁을 해서라도 이번만큼은 노동에 관한 한 우리가 하자”고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활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의 악화는 또다시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을 민주노조운동의 길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신입조합원 교육을 하면 항상 하는 것이 있다. 사회를 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자고 하면서, 이 사회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나누어진 자본주의 사회이며,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착취를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배우고 가르치고 토론한다.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들이 보수적인 자본가 계급이고,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왔다는 점을 말해왔다. 이것이 진실이고 이에 입각해 실천하는 게 맞다면, 자유주의 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을 노동자가 지지해야 할 대상으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일은 결코 노동자들 사이에서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

아무런 구속력 없는 민주노총의 보수야당 지지 금지 결정

 

최근 3월 7일 민주노총은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지 못한 정치세력화 방침을 ‘대선대응 기본방침’이라는 내용으로 사업계획에 포함시켜 결정하였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2017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퇴진 대중투쟁이 만들어낸 조기 대선으로서, “한국사회 대개혁 대선”으로 규정하고 한국사회의 진보변혁적 재편을 위한 대선투쟁의 요구와 의제를 전면화한다.
  2. 3월 29일 각 지역별 대선투쟁을 선포하는 결의대회를 사회적 총파업 연대기구 출범, 2017 투쟁실천단 발대식과 병행하여 조직한다.
  3. 4월 15일(안) 노동자 민중의 대선 요구 실현을 위한 민중대회(가)를 세월호 3주기 투쟁과 연동하여 진행한다.
  4. 민주노총은 진보진영 후보를 지지한다.
  5. 보수정당을 상대로 한 정책적 견인이 아닌, 조직적인 지지로 경도되는 것을 금지하고, 의제-투쟁을 중심으로 한 대선 대응사업의 성과가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6. 투표방침: 추후 확정

이러한 방침에 따르면 사회연대노동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전 지도부들은 징계대상이다. 이것은 개인의 정치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을 파괴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갈테면 가라’는 식으로 이들을 비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절차에 따라 징계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근간을 바로세우는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전·현직 간부들이 보수야당 선거캠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호기롭게 “민주노조와 민주노총을 버리고 양지를 찾고 싶으면 부끄러운 마음안고 홀로 가라”고 비판했다. 이 성명서에 대해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실상 그저 시원한 말에 불과할 뿐 그에 걸맞은 행동은 뒤따르지 않았다. 요컨대 말뿐인 성명서 한 장으로 전·현직 간부들의 배신행위를 갈음하고 있다.

3월 7일 결정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은 이 대의원대회에서 “조직적인 지지로 경도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명확한 조직적 지지 금지가 아니라 결정 자체에 “경도되는 것을 금지”한다는 애매한 표현을 삽입했다. 게다가 이 결정이 사실상 아무런 구속력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게 금새 드러났다. 3월 16일 대선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이영주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소속 일부 사업장의 보수야당 지지에 대해 “개인적 정치활동”이라고 치부하면서도 “개인을 통제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발언을 했다. 사실상 개인적 정치활동이지만 통제할 수 없다는 명목으로 보수야당 지지를 허용하는 뒷문을 만들어 둔 것이다. 따라서 이 결정은 소속 노조에게 사실상 보수야당 지지를 허용해주면서, 총연맹 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내외의 비판을 모면할 구실을 만들어 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책협약, 변형된 보수정당 지지일 뿐

더욱이 공공노조 및 산하단위에서는 성과연봉제 철폐 등 현안 요구를 쟁취한다는 명분으로 자유주의세력과의 정책협약을 버젓이 진행하고 있다. 현안 요구를 정책협약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은 문구 속에서만 등장할 뿐, 실제 분위기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될 것이 뻔한 정책협약으로 성과를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경도되어 있다. 따라서 말이 정책협약이지 이것이 실제로는 자유주의세력에 대한 조직적 지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건강보험공단 노조의 경우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조합원을 참여시키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그동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지향해왔던 민주노조운동의 현재 모습이다. 자유주의세력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현안문제에 갇혀 자유주의 세력에 너무 손쉽게 손을 내밀고, 노동자 집회, 토론모임에 자유주의 세력들을 스스럼없이 초청하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이렇게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무너뜨려 왔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기틀을 다져나가기 위해서도, 이렇게 변형되어 진행되는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를 실제로 막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수의 활동가들은 대선시기 조합원들에게 단일한 대선방침과 선거방침을 가지고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조차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게 어렵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어렵다고 무작정 정치세력을 통합하거나 선거에서 단일한 투표방침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는 무너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본을 바로세울 수도 없고,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조기대선 상황 속에서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는 대선에서 후보전술을 고민하고 연합정당 건설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설정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왜 이처럼 실종되었는지 처절히 되새기고 교훈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간부들부터 조합원들까지 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토론하고 배워 온 대로 우리들이 해왔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어렵지만, 헬조선에 대한 분노가 잠재된 노동자 민중은 역사상 처음으로 선출된 권력을 쫓아내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전망을 펼쳐나가기 위해 좋은 조건이라는 낙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탄핵으로 민중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지금, 정말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문제 중 핵심 중의 핵심을 설정해서 반드시 쟁취하는 투쟁을 만드는 것 또한 필요하다. 매번 계획으로 제시되는 총파업이 공허하게 끝나는 현실이 반복되는 것, 요구사항만 나열하고 실제로 쟁취하기 위한 전조직적 투쟁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무관심을 증가시켜왔다. 가령 민주노총이 제일의 핵심 과제로 선정하고 있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투쟁에 총력을 집중해 투쟁하는 것도 필요하다. 촛불정세를 바탕으로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반영하는 핵심 요구를 설정해 집중적으로 쟁취해내는 경험을 만들어 나간다면, 그것이 노동자가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하고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나설 계기가 될 것이다.

한개의 댓글

  1. 근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 이념도 이념이지만 상식이 먼저 담보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다른 때와는 달라서 그간 민중들을 착취해오던 구 새누리 일파를 사실상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왔습니다. 이럴 때는 일시적으로나마 민주당에 협조하고 구 새누리와 그 부역자인 국민의당을 척결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정치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지요. 수구꼴통 세력이 무너지면 종북몰이도 보다 해소되고 노동운동을 전개하기도 더 수월해질 겁니다. 이런 전략적인 이점을 취하고자 민주당과 잠깐 협조하는 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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