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대안인가 악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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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위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대선 후보들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보편적인 소득지원을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대안을 말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이 실현될 경우 부의 재분배가 실현됨과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노동자 민중의 협상력이 증대하고 그로 인해 불안정 고용과 터무니없는 근로조건 등이 지양되어 양질의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기본소득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아이디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기술발전 과정에서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인간이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며, 노동의 대가로써의 임금이 아닌 사회적 분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동시에 임금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이나 문화예술행위 등에 대해서도 시민권에 입각한 기본소득을 지급하여 기존 임금노동관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4차 산업혁명 등을 운운하며 기계의 자동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기본소득, 또는 우파적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대가로 기존에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을 형해화하고 상품화하기를 요구한다. 최근 캐나다의 기본소득 논쟁에서 이러한 지점에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어떤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 있어 그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타당한지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것이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느냐일 것이다. 그리고 좌우파 모두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지금,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우리에게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핀란드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중앙당’의 주도로 올해 초 기본소득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핀란드의 국영사회보험기관인 Kela가 기본적인 실업수당과 노동시장 보조금의 혜택을 받는 25세에서 58세 사이의 핀란드 국민 2천명을 무작위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기본실업수당과 노동시장 보조금을 대체하는 금액으로써 560유로(한화 68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실험을 하게 된 것일까? 2015년 총선 전까지 6년여 동안 핀란드는 더블 딥의 경기 침체를 경험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로 핀란드의 실업률은 2008년 6.4%에서 2009년 8.4%로 상승했다.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2013년 전자와 제지 산업 부문의 위기로 다시 상승했고 2014년에는 주요 교역국인 러시아가 유가 하락 및 크림반도 합병으로 인한 국제 제재로 경기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핀란드의 경제는 더욱 위축되었고 2015년 실업률은 9.6%까지 상승했다. 그 동안 정부 부채는 2008년 GDP 대비 40%에서 2015년 75%로 변화했다.

경제위기라는 배경 속에 중앙당은 총선에서 공공부채 감소와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다. 당수였던 유하 시필레(Juha Sipila)는 개혁을 통해 20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민간 부문에 창출하고 고용률을 68%에서 72%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헌했다. 이를 위해 중앙당은 경제정책으로 국가단위의 노동비용 감소와 규제완화, 정년연장을 주장하고 여기에 기본소득에 대한 짧은 언급이 뒤따랐다. “사회보장은 구직과 취직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발전되어야” 하며 “보편적인 기본소득 시스템의 효과는 지역단위의 시도를 통해 시험되고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중앙당에게 있어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는 걸 방해하는 “복지의 함정”을 제거함으로써 고용을 늘리려는 정책이었지, 노동자를 임노동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소득불평등과 빈곤을 해소하는 정책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중앙당은 2015년 선거에서 21%의 지지율을 얻어 승리했고 18%로 그 뒤를 이은 우파 정당인 ‘국민연합당’과 ‘핀인당’과 함께 시필레를 수상으로 한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이후 시필레는 자신의 내걸었던 각종의 경제정책과 더불어 기본소득 실험을 추진하였는데 2015년 가을,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기획안을 모집하였고 복지기관인 Kela가 이를 주관하였다. 그리고 2016년 3월, 초기 연구 그룹은 25세에서 63세 사이의 저소득층 성인을 대상으로 1,5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 계획에는 기본소득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지역별 샘플과 국가별 표본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최소 550유로를 지급하는 안과 더불어 일부에게 600에서 700유로를 지급하는 안도 기획되었다. 결정적으로 초기 제안에는 노동자와 실업자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는 지역 샘플과 다른 액수 등이 사라졌고 대상도 ‘25세에서 63세 사이의 모든 저소득층’에서 다른 안으로 교체되었다. 문제는 25세에서 58세 사이의 모든 실직자들이 기본적으로 실업 수당 또는 노동 시장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안은 저소득층만 대상으로 했으나 정부안은 대상자의 실업 수당과 노동 시장 보조금을 제거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지난 12월 정부는 기존의 기본실업수당과 보조금을 대체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법으로 제정하고 1월 초 첫 기본소득 지급했다. 기본소득이란 정책의 본질적 성격이 바뀐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상이한 이해

이와 같은 변질의 기저에는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집단의 상이한 이해가 깔려 있다. 실제로 핀란드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점은 지지하는 정당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상대적으로 청년층이 두터운 ‘좌파연합’과 ‘녹색당’은 기본소득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소득을 제공하고 실업자 및 저소득층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를 줄임으로써 보다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보수적이며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국민연합당의 당원들은 기본소득을 부정적으로 보며 기본소득이 유능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나태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통적인 복지국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핀란드에서는 노동조합이 실업기금의 관리와 지급을 책임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보장을 쟁취하기 위한 핀란드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핀란드에서 실업기금의 혜택을 보기 위해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실업급여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함으로써 실업노동자의 소득보장에 있어 기존 조직 노동자의 영향력과 단결력을 감소시키고 기본소득의 제공자인 국가에 모든 결정권을 넘기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하에서 약화될 대로 약화된 노동조합 상태를 고려하면 기본소득에 대한 반감을 단순히 기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노동자와 실업자를 대립시킴으로써 누가 이득을 보겠는가?

마지막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이끌고 있는 중앙당의 이념적 지향이 문제다. 현재 중앙당의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는 이들 중 한 축은 지역의 소규모 기업가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실업급여 시스템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핀란드의 기술 분야 집단과 부유한 사업가 출신의 시필레가 서로 친밀하다는 데서 우리는 기본소득이 결코 그것이 표방하는 가치와 무관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중앙당의 기본소득은 그것이 고용을 촉진하고 노동자로 하여금 열악한 노동시장에 적응하게 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핀란드의 사례는 하나의 실험이며, 이와 다른 방식의 실험 역시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통해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사회보장 정책을 와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단순한 우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실직자와 구직자를 조직 노동자의 반대편에 둠으로써, 동시에 사회보장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기본소득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비단 핀란드에서만 일어날 문제인지 객관적으로 고민해야만 한다. 기본소득이란 정책적 기술적 대안 이전에 그것이 필요하게 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과 폭로로부터 선결되고 동의되지 않는다면 대안은 언제든 변질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악몽인가? 대안인가?

좌우파를 막론하고 기본소득론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한 쪽의 과잉자본과 다른 쪽의 빈곤이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소수의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종속된 다수의 노동자 민중이란 모순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보다 지금의 체제를 수선하길 독려하거나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의 부의 재분배와 타협을 강조한다. 물론 서구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 논의가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인상, 노동환경 개선이란 의제, 나아가 그것의 주체로서의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 소개되는 대부분의 기본소득은 그것의 실현 주체를 시민으로 재단함으로써 현실의 적대계급인 자본과의 투쟁이 아닌 그들의 협조와 합의를 종용한다. 즉 전 사회적 재분배를 하는 데 있어 지배계급을 그대로 둔 채 시민사회의 사회적 합의라는 점을 밀어 넣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원부담의 대상이 누구인지, 현실적으로 얼마가 적절한지, 지금과 같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이 가혹한 시기에 무엇을 투쟁의 동력으로 삼을지에 대해 기본소득은 답하지 못한다.

또한 결과의 재조정만을 이야기할 뿐, 이윤을 위한 생산이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지양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단지 더 좋은 소비자를 창출하는 소비정책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구조적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어 대안의 외양보다 중요한 건 그것의 구체적이고 계급적인 함의다. 이것이 뒷받침 되지 않은 기본소득은 대안이 아니라 악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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