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산불: 눈앞의 재앙이 된 기후위기와 그 원흉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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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간 호주 산불

호주 대륙이 불타고 있다. 지난 9월, 호주 남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시작된 산불이 5개월간 지속되며 호주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호주의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소방관들의 증언에 의하면, 40층 건물 높이의 불기둥이 도처에서 솟구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서울시의 160배에 달하는 1,000만 헥타르의 토지가 전소되었으며, 1,300여채의 주택이 불타 없어졌다. 26명이 사망했고, 2,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집중된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는 총 3번의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으며, 재앙 지역으로 지정된 빅토리아주의 주지사는 지난 9일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만약 떠나라는 지시를 받으면, 떠나라.  …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동남부 해안의 호주 주민들은 화재를 피해 바다로 뛰어들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다. 

대도시의 주민들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숲에서 떨어진 지역 또한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황빛 스모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성은 캔버라 공황의 활주로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사망하기도 했다. 현재 시드니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은 하루에 담배 34개피를 피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호주 산불로 인해 뉴질랜드의 빙하마저 재로 덮여 갈색으로 변했다고 하니,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닌 듯 하다. 호주 산불의 연기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에까지 도달해 있다고 한다.  

이번 산불로 인해 호주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5억 마리에 달하는 동물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약 5만 마리의 코알라가 밀집하고 있던 캥거루 섬의 1/3이 불타면서 코알라는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헤이스팅스강 쥐, 적갈색 덤불새, 날여우박쥐 등 호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희귀종들의 서식지 또한 40% 이상 파괴되었으며, 긴발 쥐캥거루, 안테키누스 등 멸종위기 동물은 거의 절멸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로 인해 여러 종의 동물들이 곧 사라질 ‘기능성 멸종’의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산불은 원래 호주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산불은 기간과 규모의 차원에서 기존에 일어나던 산불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본래 큰 피해를 입지 않던 동물들도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호주 산불의 원인은 기후위기와 그 원흉인 자본주의에 있다.

이번 산불이 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산불은 본래 호주에서 여름에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연일 높아지는 기온으로 인해 산불은 이전보다 더 이르게 찾아와서 더 오래 지속되었으며, 산불이 일어나는 지역의 범위도 점차 넓어지게 되었다.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호주에서 무더위와 산불은 더욱더 강해지고 빈번해질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며,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주 당국은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탄소 배출·소비의 규모를 결코 줄이지 않았다.

호주는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라는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2017-19년에 호주에서는 약 5억 1천만톤의 석탄이 채굴되었으며, 호주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잇는 세계 제3의 탄소 수출국이다. 호주에서 석탄은 지난 10년간 두번째로 많이 수출되는 자원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화석연료 산업은 호주 지배계급을 지탱시켜 준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또한 호주 정부는 화석연료 기업에 매년 약 12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탄소 자본가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보장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호주 정부와 자본가계급은 국제 사회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해 마련된 최소한의 합의 사항도 지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가령 2000년대 초에 호주 보수당은 교토 의정서에 명시된 탄소배출권거래제(이하 ETS)조차 시행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후 노동당으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노동당은 미온적인 기후 정책으로 일관했고, 2010년에는 ETS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ETS는 자본주의를 전제하는 시장 메커니즘에 기반을 뒀을 뿐 아니라 이미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ETS조차 호주 정부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호주의 지배계급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보수당, 자유당)과 미온적이고 보여주기식 녹색 정책(노동당)을 펼치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탄소 자본가들은 이들이 만든 균형 속에서 평화롭게 이윤을 벌어들였다.   

지배계급이 배를 불리는 사이 호주는 점점 뜨거워졌다. 2019년에 호주의 기온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평균 기온보다 1.52도 높아지며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가장 큰 산불 피해를 입은 뉴사우스웨일즈주의 기온은 위 기간의 평균 기온보다 1.95도 높았는데, 이는 최고 기록에 올랐던 그 전년의 기온보다 0.27도 더 높은 수치다. 지난 12월에는 하루 사이 최고 기온이 두차례나 경신되었다. 12월 17일에 섭씨 40.9도로 최고 기록이 만들어진 지 하루 만에 41.9도로 새로운 기록이 세워진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심화된 인도양 쌍극자 현상으로 인해 이러한 이상 고온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양 서쪽 해수면의 온도는 올라가는 한편, 동쪽 해수면의 온도는 내려가면서 호주에 폭염과 가뭄, 화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남반구 극진동이라 불리는 기후 변화 현상으로 강한 서풍이 몰려오면서 산불의 규모가 한층 더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상 현상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잇따른 경고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소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인 탄소 자본가들과 이들의 몸집을 키워준 지배계급이 ‘생태계의 아마겟돈’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위기를 만든 것이다. 호주에서 연일 펼쳐지는 종말론적 풍경의 배후에는 석탄과 석유를 먹고 자란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며 대규모 화석연료 산업을 고집하는 호주 정부 

그렇다면 호주 정부는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돌파구를 마련하려 애쓰고 있을까? 놀랍게도 호주 정부는 ‘현실 도피’에 가까워 보일 정도의 ‘여유’로운 태도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1) 호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먼저 구조 작업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장비조차 지원받지 못한 채 종이 마스크를 끼고 유독가스를 뿜어내는 화마와 맞서 싸우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관계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호주는 태평양의 섬들에 주민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용시설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있다. 수천 명의 호주 주민들이 산불을 피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한편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호주 총리는 이 와중에 외국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 호주 전역에 수차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던 12월에 홀연히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 모두를 경악하게 한 모리슨 총리는 두 명의 소방관이 화재 진압 도중 사망하고,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진 뒤에야 귀국했다. 그는 귀국 후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크리켓 팀을 관저로 초청해 신년 파티를 열어 다시 한번 호주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는 이미 화재로 인한 참사가 벌어지고 있던 11월에 SNS에 브리즈번 스포츠 경기장을 방문한 자신의 사진과 함께 “소방관들이 크리켓 경기를 통해 힘을 얻기를 바란다”는 얼토당토않은 글을 올려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근 모리슨 총리는 1/3 이상이 불탄 캥거루 아일랜드를 방문한 뒤 참담한 심경을 밝히기는 커녕 “호주는 언제든 열려있다. 여전히 가족과 휴가를 보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말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호주 방문을 독려하기도 했다. 

(2) 산불과 기후위기는 별개라는 호주 정부 

더욱더 놀라운 것은 호주 정부가 이 와중에도 기후변화가 호주 산불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9월에 퀸스랜드와 뉴사우스웨일스에서의 화재 규모가 호주 공식 산불 위험 지표(McArthur Forest Fire Index)가 정한 수위를 넘어갔을 때, 가뭄과 자연재해 장관 데이비트 리틀프라우드(David Littleproud)는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기후변화 부정론(denialism)’을 펼쳤다. 이후 모리슨 정부는 이러한 ‘소신’을 과시하듯 국제적으로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며,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했다. 

호주는 최근 열린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5)를 무력화시키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국가 중 하나다. 또한 호주 정부는 현재 다국적기업 아다니(Adani)를 통해 퀸스랜드에 거대한 탄광을 짓고 호주 북부의 각종 가스전(비탈루, 보웬, 갈릴리 가스전)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 이 계획이 실시되면 46억톤의 탄소 오염물이 추가로 대기에 방출된다고 한다.

최근 모리슨 총리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했는지 12월 기자 간담회에서 기후변화가 산불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신년사를 통해 석탄산업을 감축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듯 호주 정부는 화석연료 산업과 관련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후 위기에 맞서 확대되고 있는 호주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

산불에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량을 줄일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하는 호주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듯 보이는 지배계급의 행태를 보며 민중들도 각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스콧 모리슨 총리가 코바르고(Cobargo)의 산불 피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화난 지역 주민들은 길에서 그를 에워싸고 “당신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한 소방관이 총리의 악수를 거절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시드니의 항만 노동자들은 스모그로 인해 위험한 노동환경을 떠나 작업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건설·삼림·해양·탄광·에너지 노동조합에서는 작업을 거부하는 동료를 지지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물론 아직 작업 중단이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지고 있진 않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실제 기계를 돌리고,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수천 명의 호주 청년들이 여러 차례 기후 변화에 맞선 시위를 벌여왔다는 사실 또한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12월 중순에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활동가는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 호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네시아도, 아마존도, 남극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불타고 있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렇듯 눈 앞에서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한 호주의 민중은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태도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번 1월 10일 멜버른, 시드니, 캔버라 등 호주의 대도시에서는 ‘기후 정의를 위한 대학생(Uni Students for Climate Justice)’의 주최 하에 기후위기에 대항하는 시위가 진행되었다. 주최측에서는 “화재, 폭염, 가뭄은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화석연료를 사랑하는 정치인들의 손에 의해 수십 년 동안 기후 파괴가 이루어진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라고 말하며, “소방관들에 대한 급료 지불, 피해를 입은 지역 사회에 대한 지원 제공, 화석연료로부터의 빠른 전환”을 요구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호주의 사회주의 조직인 사회주의 대안(Socialist Alternative)에서는 같은 날 “그들은 우리가 불타도 신경쓰지 않는다–자본주의 & 기후 위기”라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이번 산불 위기 배후에 자본주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구를 불태우고 있는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호주를 살릴 희망은 노동자 민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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