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를 개최하다―“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정확히 이해했던 시간 … 그것만 알아도 싸움은 된다”

0
714

5월 9일, 울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진행한 ‘현중·미포 하청투쟁 승리를 위한 반(反)자본주의 투쟁 강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좋지 않은 조건에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며 활기차게 강좌가 진행되었다. 노동운동 내에서 반자본주의 투쟁의 목소리가 활발히 나오고 있지 못한 실정에서 울산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가 열렸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 때문에 강좌 공간의 테이블에는 방역을 목적으로 간이 칸막이가 세워져 있어 매우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참여자들은 강좌에 집중하며 눈을 빛냈다. 『사회주의자』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를 준비, 진행한 이성호 동지(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지회장)로부터 강좌의 진행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좌를 진행하면서 희망을 많이 느꼈다고 말하는 이성호 동지의 목소리가 자못 힘에 넘쳤다.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는 어떻게 기획·구성되었나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는 4월 11일부터 시작되어 매주 토요일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2019년 말부터 준비되었던 이 강좌는 원래 3월부터 진행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시작일이 불가피하게 연기됐다고 한다. 강좌도 애초 네 강의로 구성되었으나 강사 일정 문제로 한 강의가 추가되었다. 강좌는 ①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동영상 시청, ② 노동자와 자본가, ③ 공황론, ④ 국가, ⑤ 노동자 인문학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노동자가 왜 뭉쳐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과 방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모여 이번 투쟁 강좌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특히 하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투쟁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2018년부터 현중 지회는 원하청 공동투쟁을 진행해왔으나, 아직까지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사이에 거리감이 남아있었다. 더욱이 원하청 공동투쟁이 전개되려면 조선소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강화되어야 하고 이 투쟁이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부터 앞장서서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를 열어 자신의 계급의식을 높이고 투쟁의 중심을 만들어가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좌는 현대 울산 중공업과 현대 미포 조선 하청 노동자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몇몇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강좌에 참여하여 더 뜻깊은 강좌가 되었다.

강좌의 중요한 특징은 비록 외부 강사를 2명 초빙하긴 했으나, 외부 강사에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하청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강의를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섯 강의 중 ‘노동자와 자본가’, ‘국가’ 부분은 하청 노동자들이 직접 강의를 했다. 이에 대해 이성호 동지는 “참여자가 직접 강의를 진행하며 용기를 얻었다는 점이 이번 강좌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며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정확히 이해했던 시간이 되었고 … 그것만 알아도 싸움은 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더 주체적인 태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본주의 투쟁 강좌>인가!

일제시대
우리 선배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투쟁만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친일파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노조는 임금인상 투쟁만 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과제였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최선봉에 앞장섰습니다.

지금 문제는 <자본주의>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부동산 문제도, 노인빈곤 문제도 청년실업 문제도 다름 아닌 바로 자본주의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시스템 오류!

‘반(反)자본주의’=<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투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는 노동자가 됩시다. 투쟁!

(강좌 홍보 리플렛에 실린 강좌 취지)

‘우리는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다’

강좌는 1시간이 넘지 않게 진행되었다. 강의가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최대한 중심내용 위주로 간결하게 구성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집중도를 보였고, 그 모습에 강좌를 기획했던 이성호 동지는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게다가 참여자들이 반자본주의를 내건 강좌의 내용을 다소 어려워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 ‘쉽게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마침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시기인지라 자본주의가 무엇이며 왜 일자리가 사라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또한 강좌에서 현실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잘 풀어낼 수 있게 논리와 언어를 제공해주었다. 이런 두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참여자들이 내용을 쉽고 빠르게 소화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노동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시간 역시 강좌가 낳은 굵직한 성과였다고 한다. 특히 ‘노동자와 자본가’, ‘국가’ 강좌를 하청 노동자들이 직접 준비하여 강의하면서 ‘우리는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근로자라면 노동자는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고, 우리는 뭉쳐서 싸울 수 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활기를 나누었다. 이에 대해 이성호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좌를 진행하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됐죠. 그것만 하더라도 싸움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변화가 생기겠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이렇게 싸움을 해 나가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요.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쥐어진다는 말과도 같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로 명백히 계급이 나뉘어있지만 실제로 삶에서는 이를 교묘하게 감추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는 지배와 싸우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알고 또 그것이 또 어떻게 숨겨지는지에 대한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노동자가 누구고 자본가가 누구인지 알고, 착한 자본가가 없는 이유, 자본가와 싸워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 이것이 노동자들이 듣는 반자본주의 학습이 중요한 이유라고 이성호 동지는 덧붙였다.

‘스스로의 고용과 임금 지켜낼 수 있게, 반자본주의 주체를 지속적으로 형성할 계획’

이 글을 작성하고 있던 5월 21일에도 현대중공업에서는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용접용 가스인 아르곤가스가 파이프 안에 고여 있는 상태였는데 안쪽 용접부위를 점검하러 그 파이프 안에 들어갔던 노동자가 산소부족으로 질식사한 것이었다. 2월에 1건, 3월에 1건, 4월에 2건, 5월에 1건으로,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무려 5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2016년부터 현대중공업은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말부터 지금까지 금속노조는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9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원청사에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3차례에 걸쳐 발송했으나, 현대중공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금까지 거의 4만 명 가까이 되는 노동자가 해고당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금도 조합원들이 계속 해고가 되고 있다며 이성호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막아내지 못하면 계속해서 쫓겨나겠죠. 초창기 대응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2017년 고공농성, 현중지부와 현중사내하청지회의 통합, 2018년 원하청 공동투쟁의 시작, 2019년 오토바이 시위와 원하청 공동집회를 거치며,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25% 인상과 같은 더 과감한 요구안을 걸었고 조합원들의 수도 점점 늘었다. 조선업의 불황과 그로 인해 발생한 조선업 자본의 구조조정은 자본주의 안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자본주의 모순으로 발생한 책임을 자본가는 폐업, 임금체불, 중대재해 책임회피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 반자본주의 강좌는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알려줌으로써 참여자들로 하여금 투쟁 대상이 하청업체 사장이 아닌 원청 자본이며, 국가는 원청 현중자본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를 돕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강좌가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은 왜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의 삶이 점점 악화되는지 경험을 넘어선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공장의 주인은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임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이성호 동지는 이제 원하청 노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강좌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반기에 반자본주의 투쟁 강좌를 한 번 더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투쟁 강좌가 한두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장기적 전략으로 꾸준히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좌를 이어가면서 반자본주의 투쟁 주체를 형성해 나가면 자본가라는 공동의 적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하청, 원청의 연대를 도모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강좌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이 점차 성장하고, 당면한 생존권 투쟁이 의식적인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발전해나간다면, 희망이 보인다던 이성호 동지의 말처럼 노동자의 투쟁에 새로운 실천과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