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가 이제 진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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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mrstudio.tistory.com/]

한 시대의 “진보”의 기준은 다양할 수 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는 역사가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보의 기준이 제각각이고 어떤 것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상대적인 것이기만 한 건 아니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옥죄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순이 분명 존재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빠지고서야 그 시대의 “진보”를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진보”를 규정하는 기준으로서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성, 생태, 소수자에 대한 태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되는 기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한한 이윤 추구와 노동자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 싸우고 그것을 철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의 태반은 낮은 임금, 실업, 사회보장 부재, 가계부채 급증, 주거난 등 사회경제적 어려움에서 나오고,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자체 모순에서 나온 문제들을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정면 대결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운동을 접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반자본주의”를 진보의 기준으로 분명히 세우는 문제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글은 이제 반자본주의가 진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다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① 세계대공황 이후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구제불능 상태인 자본주의

시계 바늘을 되돌려 딱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8년 9월 15일, 미국 뉴욕 월가는 마치 소행성이 도시 한복판에 떨어진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날 6천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던 국제금융회사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는 파산신청을 냈다. 158년 역사를 가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미국 금융시스템 전반에 파국적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날 94년 역사의 ‘메릴 린치(Merrill Lynch)’ 역시 파산 직전에 가까스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매각됐다. 거대보험회사 ‘AIG’는 3분기 동안 1백8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내며 붕괴 직전 상태가 되자 정부가 긴급하게 개입했다. AIG마저 파산한다면 그 파괴력은 리먼 브러더스보다 두 배, 세 배 더 커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9월 16일 AIG는 8백50억 달러의 구제자금을 받았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며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그후 10년 자본주의는 장기 침체의 구제불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이제는 새로운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사진: Oli Scarff/Getty Images]

9월 29일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이 미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유럽 등 전세계로 확대되었다. 그리스 재정위기 등 이른바 피그스(PIIG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영국을 지칭) 국가들이 험난한 경제 상황을 맞이했다. 2008년 대공황은 단지 금융부문의 위기에만 머문 게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 전반의 공황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계 세계 1위였던 GM이 파산했다. 미정부는 파산한 GM의 주식을 인수하여 새로 기업을 재편한 후 ‘신 GM’을 만들었다.

대공황 이후 각국 정부의 대응은 크게 대규모 재정·통화 정책과 긴축정책이란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재정 정책과 관련해 2008년 미국은 3조 2,290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여했고 그 후 대규모 적자 재정을 운영했다. EU는 총 1조 5,273억 유로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했다. 중국 역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2008년 11월 4조 위안 규모의 공공투자 계획을 내놓았고, 다음 해 상반기에는 7조 7,300억 위안 규모의 은행 신규대출을 실시했다. 한편 미국을 포함한 각국은 “양적완화”라 불리는 대규모 통화 팽창 정책(한 마디로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정책)과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복지 지출 등을 대거 축소하는 긴축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현상이고, 자본주의는 공황을 통해 새로운 재생산 조건을 마련한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새로운 재생산 조건을 제대로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다만 공황의 여파를 일시적으로 회피하고 노동자에게 그것을 전가하는 정책을 취했을 뿐이고, 그래서 대공황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장기 침체 상태에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들어서부터는 세계 곳곳에서 경제공황의 신호음들이 들려오고 있다. 2008년 대공황의 직접적 원인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라는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의 급증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등에서 10년 사이 기업부채가 또다시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등 이른바 신흥국의 경제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 JP 모건에서 나온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다음 위기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는 구제불능의 상태이다.

② 대공황의 결과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반자본주의 의식과 투쟁의 성장

2008년 대공황은 노동자 민중에게 좋은 교육의 장을 마련했다. 공황이 발생하면서 자본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이로 인해 민중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대공황이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시작했고 유럽의 선진국들로 확산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나라들에서, 직장에서 잘리고, 매달 공과금을 걱정하며, 노인들이 받는 연금에 기대 그 자식과 손자들이 살아가고, 일자리가 없이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장 경제가 발전하고 풍요로운 나라에서 사는 노동자 민중이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대공황 이후 자본가계급과 각국 정부가 취한 정책은 이런 모순을 완화시키기는커녕 더욱 악화시켰다. 대공황은 자본가들 때문에 발생했는데, 긴축정책을 통해 그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부 떠넘겼다. 이 긴축정책은 특히 유럽에서 민중의 증오와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구제금융, 양적 완화, 제로 금리 정책으로 인해 주가 상승 등 새로운 금융팽창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땅 짚고 헤엄치듯 축재를 했다.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심지어 최근 경제가 잘 나간다는 미국에서조차 실질임금은 전혀 상승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맑스는 『자본론』 1권에서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이 자본주의 축적의 일반법칙으로 필연적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일이 대공황 이후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점차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스 재정위기에 맞선 노동자들은 파업과 거리 시위, 스페인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분노하는 자들’ 시위, 청년 실업의 급증에서 촉발된 아랍의 봄 등이 그 예이다. 2011년 9월 미국에서는 1%에 맞선 99%라는 주장을 내세운 월가 점거운동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의 투쟁도 급증했다. 이로 인해 기존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온 정치구조도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양당구조가 흔들리고 사회주의 운동이 대거 확산되었다. 유럽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해 온 사민당이 급격히 쇠퇴하고 새로운 급진적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각국 노동자 민중 투쟁 급증과 사회주의 운동 고양의 배후에는 모두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와 그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의식 각성이 있었다. 이것은 미국 밀레니엄 세대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된 이유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그 이유를 바로 2008년 대공황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필자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 비결: 사회주의」에서 인용한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34세 사이의 민주당원 중 61%가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침체(Great Recession), 교육비 증가, 부실한 건강 보험, 직장의 불안정성 증가가 결합하여 젊은 사람들은 물질적 불안이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2017년 1월 20일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반트펌프 시위 현장. 사진 속 시위참가자들은 “자본주의를 박살내자”는 구호가 적힌 플랭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wikimedia]

③ 한국 노동자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는 주범도 바로 자본주의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역시 계속 악화되어 왔다. 경제는 수출 산업 외에는 대부분 침체된 상황이고 새로운 경제위기가 점쳐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이 나락으로 치닫는 것은 이런 자본주의 모순 악화 때문이다.

우선 실업률은 사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 폭이 두 달 연속 1만 명을 밑돌았고 실업자는 113만3천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3만3천명이 증가했다. IMF 위기 직후인 1999년 이래 최대의 실업자 수라고 한다. 청년 실업률은 더욱 심각하다. 역대 정권들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권은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후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일자리 현황판을 청와대에 설치하고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고용상태는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 이는 실업 문제가 정권의 의지와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급증했다.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바로 자본주의 때문이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데에서 이윤이 나오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자기 말에 고분고분한 저임금 노동자를 사용하려고 애쓴다. 비정규직은 이런 자본가들의 속성에 딱 맞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 역대 정권이 모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역시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없애나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노동자 내부의 갈등만 조장하고 비정규직 일부를 허울뿐인 ‘중규직’으로 바꿨을 뿐이다.

2018년 2분기 1,493조2천억 원에 이른 가계부채 급증 역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정체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마련되지 못하기 때문에 빚을 내서 생계를 유지하고 집을 사게 되는 것이다. 현재 고령층 부채문제가 심각하고 가처분 소득 대비 채무상환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부채로 인해 소비지출이 감소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확보해주기는커녕 빚을 쉽게 늘릴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을 추진했다.

언론에서 수시로 다뤄지는 저출산 문제도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를 사회경제적 조건이 전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육아를 원하는 젊은이들조차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와 정부는 각종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2006년부터 152조8000억 원을 허비했지만, 여전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저출산 문제를 단지 미래의 노동력 공급이란 차원에서 접근하여 여성의 몸을 아이 낳는 기계로 여긴다는 여성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이를 막고 있다.

고령화 문제, 소자영업의 몰락 문제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른 여러 심각한 문제들 역시 자본주의가 낳은 문제들인 동시에 자본주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평균 수명이 연장되었지만 평소 임금으로는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노년에 들어서 급격히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자본가와 정부는 보잘것없는 수준의 연금마저 줄이고 없애려고 하고 있다. 사회에 충분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소자영업에 내몰린다. 이들은 자그마한 점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얼마 안 가 태반이 폐업한다. 그러나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개인 창업을 조장하며 소자영업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청년과 여성은 자본주의 하에서 특히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다. 지난 8월 31일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토론회 발제문에 나와 있듯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20대의 실업률이 9.1%나 된다. 6월 3일자 경향신문 기사 「배고픈 청년들, 끼니 걱정하며 사는 알바 인생」에 따르면 29세 이하 청년층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82만원에 불과하다. 위 기사에서 인용한, 2017년 통계청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에 해당하는 30세 미만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8만1000원이다. 설상가상으로 부채까지 증가하여, 2010년 이후 7년 동안 30세 미만 청년의 부채는 154.8%나 급증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2016년 11월 기준 20대 여성 실업률은 7.3%였는데, 이를 두고 ‘1999년 이후 최악’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20대 여성 실업률은 2017년 6월 7.9%였고, 현재(2018년 6월)는 7.8%이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게다가 한국여성정책원에 따르면 청년여성의 전체 일자리 중 비정규직 비율은 35.4%나 된다(동양일보,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여성」, 2016. 8. 18.). 일자리를 가진 여성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진보”로 포장된 자유주의, 반자본주의 의식 성장을 막고 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는 주범인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이제 자본주의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조차 없다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당연히 진보의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문제를 빼놓고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반자본주의’가 우리 시대 진보를 규정하는 핵심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자본주의 수호를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들이 진보로 행세하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처음부터 자유주의가 ‘진보’로 행세한 것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정당은 ‘보수’정당으로 불렸다. 그런데 십여 년 동안 진보세력이 몰락하고 민주대연합 등을 통해 이들이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점차 자유주의 세력이 스스럼없이 ‘진보’를 표방하기 시작했다.(필자는 창간 초기 쓴 「진보를 가장한 자유주의자」에서 이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이 자유주의가 ‘진보’라고 주장하는 논거는, 비록 편차가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조차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했던 대표적 인물이 최장집이다. 촛불투쟁을 거치면서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되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최장집의 주장은 정치권에까지 큰 힘을 미쳤다.

문재인 정권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을 하고 있는 김상조 역시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일찍부터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삼성의 지배구조 비판 등 재벌개혁 운동을 벌였다.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과잉과 구자유주의의 결핍이다. 즉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의 병폐가 심각하니 이것을 원래의 자유주의인 ‘구’자유주의로 치유하자는 것이다. 법과 규칙이 지켜지는 합리적 시장질서에 따르는 자본주의를 만드는 게 바로 ‘진보적’ 과제라는 것이다. 김상조는 이러한 인식 하에 여전히 자신이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착각하면서 7월 초에는 되레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진보진영의 조급증’을 질타하기까지 했다.

물론 김상조가 질타한 ‘진보진영’ 역시 진보가 아니긴 매한가지다. 이 ‘진보진영’은 7월 18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포기를 비판하는 선언을 냈던 ‘지식인’들을 지칭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선언을 주도했던 이병천, 김태동, 전강수 등은 모두 자유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정책의 과감한 실현, 재벌 체제 적폐 청산, 정규직 채용 원칙 등 실현, 후퇴한 종부세 개편안 즉시 폐기, 정부의 반개혁적 흐름 주도 인물 교체” 등을 요구했는데, 모두 현재의 모순을 조금 완화시키는 수준에서 자본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진보’ 지식인이라 불리고 있다.

자본주의 수호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자유주의가 ‘진보’로 포장되는 게 큰 문제인 것은 진보적 사고를 자본주의 틀 안으로 크게 제한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진보’로 포장해온 목적 역시 이것이다. 이렇게 진보의 기준이 잘못 잡히면서,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게 자본주의라는 인식이 성장하는 것이 가로막히고 있다.

[사진: 사회주의자]

이제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이 진보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운동 내에서도 반자본주의 목소리는 그다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자유주의 좌파 수준의 정치세력으로 변질된 사이비진보세력, 애초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기로 한 기회주의적 운동세력은 차치하고, 진보운동 전반에서 자본주의가 문제다,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보기 힘들다. 자본과 가장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을 둘러봐도 자본주의를 문제시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계속 힘들게 만드는 게 어떤 나쁜 자본가의 횡포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는 게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모두들 자본주의를 문제 삼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악화되는 원인은 자본주의와 연결시키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이 악화되는 삶을 개선시킬 방도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공황 이후 1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노동자 민중 투쟁의 급증과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은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민중의 자각이 높아진 데에 있었다. 한국 역시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자본주의의 본질에 눈을 뜨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자본주의 의식과 투쟁이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반자본주의 의식의 성장은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민중의 반자본주의 의식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을 없애기 위해 싸우고 반자본주의를 스스럼없이 주장하면서 이런 자각과 투쟁을 더욱 고조시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자본주의’를 우리 시대 진보의 기준으로 분명히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농민의 자식이라는 성장배경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싹 트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번역서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이 있다.

3 댓글

  1. 기사에 대한 정치적 이견(대체로 전략전술적)도 어느 정도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기본 스탠스에 동의하는 가운데 한 두가지 사실을 바로잡습니다.
    김상조씨는 공정거래위원장입니다. (딱히 그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본지 기사의 신뢰도 때문에 관련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보 지식인 선언의 주된 내용이나 주도자 다수가 자유주의자라는 것도 동의하지만, 그들 중에는 일부 급진적 지식인들도(물론 운동과 동떨어져있는 급진주의자들도 있기에 마찬가지로 크게 변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있습니다. 또한 전강수씨는 제가 알기로는 조지스트인데, 조지스트가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볼 때 토지문제만을 쟁점화 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충분한 지점이 있다고 해도 나름대로 자유주의보다는 진취성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단지 자유주의적 지식인으로 열거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 그가 민주당 일각에 종종 의존하는 것에 저는 비판적이지만 그는 나름대로 소극적이나마 현실의 토지문제와 관련된 운동에 개입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친민주당 지식인 일반에 대한 비판과는 결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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