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내의 또 하나의 목소리: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관련 쟁점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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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편집자 설명] 이 글은 창간 1주년 기획사업으로 주최한 <독자 기사 응모>를 통해 선정된 글이다. 글은 지난 8월 23일 전교조 중집의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반대 결정에 대한 현장 교사의 비판 목소리를 담고 있다. 잘못된 결정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교사 자신의 비판 목소리는 매우 소중하고, 더욱 커져가야만 한다. 좋은 글을 보내주신 데 기고자에게 감사드린다.

전교조 중집의 정규직화 반대 결정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멘붕사태를 겪었다. 믿었던 전교조에게 뒤통수를 맞은 비정규직들이 “전교조 너마저…”라는 말을 내뱉으며 쓰러져갔다. 우리는 하나인 줄 알았는데,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 또한 탈퇴러시와 대의원대회를 거치며 크나큰 충격을 받고 지회장 일을 잠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가장 힘든 점은 모두가 이 사태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중집과 대대에서 결정이 나고, 한 차례 쓰나미가 지나갔다. 다들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터질 일이다. 제주도 영어전문강사 사태 때도 그랬고, 유은혜 의원이 발의한 교육공무직법 통과를 할 때도 그랬다.

이럴 때는 정면돌파가 답이다. 이번 정규직화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몇 가지 뽑아서 이에 대해 반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반박 작업은 전교조 내의 ‘또 하나의 목소리’라는 집단에서 서로 고민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 임용시험을 거치지 않은 교사에게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맡겨?

최근에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문제를 살펴보면 임용경쟁시험을 옹호하며 기간제 교사의 전문성을 운운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교사 자격도 없다고 호도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임용경쟁시험은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교사의 전문성을 검증하기 위해서 시작한 시험이 아니다. 수급 정책의 실패로 교사 지망생이 많아지자 이들을 선별하여 임용순위를 정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교원공채로 불리던 임용경쟁시험의 역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립 사범대 학생들이 헌법재판소에 국립 사범대 학생들의 우선 발령은 평등권 침해라는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나는 교원공채를 시행하게 된 저변에는 재판이 아니라 교원수급 정책의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80년대 후반의 신문 기사들을 보면 교원공채 반대 시위를 하다 연행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기사들을 살펴보면 당시 국립 사범대학생들이 외친 구호는 크게 두 가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원적체 해소’와 ‘교원임용국가고시제 철폐’이다. 왜 이런 구호들이 나왔을까? 당시 88년 전국사범대학총연합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70년대 경제성장에 힘입어 대다수의 사범대 학생들이 교직을 외면하여 문교부가 성급하게 사범대 정원을 늘렸고, ▲81년 졸업정원제를 시행하면서 해마다 30%씩 초과 모집하였으며, ▲84년에는 교원대를 신설하여 600여명의 경쟁자를 양성하였고, ▲사범대의 교과과목과 일선학교의 교과과목의 불일치로 특정과목 이수자의 만성적 미임용에 의해서 교원적체가 일어났다고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 ‘교원임용국가고시제’라는 제도의 도입 시도였다. 당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신군부정권이 교원수급정책에 실패하였고 이러한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는 교원임용경쟁시험을 도입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경쟁시험을 통해 입맛이 맞는 교사를 뽑아서 전교조와 같은 교직원노조를 막아야 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신규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는 현실도 여기에 일부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임용경쟁시험은 말 그대로 임용 후보자를 선발하는 경쟁시험이어서 교직의 전문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한 해에 한 명도 뽑지 않는 과목이 있는데 그러면 그 해에 이 과목 응시자들은 모두 전문성이 없는 것인가? 1명을 뽑는다면 2등은 전문성이 없는 것일까? 만약에 이것을 교직 전문성을 검사하는, 혹은 자격 검증 시험이었다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치러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교사의 전문성에 있어서 교과와 교육학에 대한 전문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라고 해서 사범대 4년을 이수한 사람으로서 정교사로 임용된 신규교사들에 비해서 그렇게 지식이 달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직 경험을 통해서 경험적 지식을 쌓거나 현장 연구를 통해서 지식이 풍부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교사의 전문성의 발현은 자율성에 기인한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본래 교사의 전문성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전문직이라는 직업들을 살펴보면 모두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인간 발달에 대한 본인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학생들을 자율적으로 교육하는 모습, 그것이 전문성이 있는 교사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자율성이라는 것은 교사들의 조직적 투쟁에 의해서 쟁취된다. 언론의 자유와 자율성을 침탈당한 MBC와 KBS 기자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자율성을 침탈당해서 전문성을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임용경쟁시험이 단시간에 사라지는 것이 어렵다고 해도 분명히 사라져야 하는 제도다. 그리고 경쟁에 내몰린 사범대생에게 임용시험공부가 아니라 학생들과 어떻게 만날지 서로 토론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제공돼야 한다고 본다. 시험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교사를 꿈꾸는 사범대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그것이 우리 공교육을 살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범대학의 내실화, 교원수급정책의 정상화, 임용경쟁시험의 폐지, 책임발령제의 도입이다.

#2 교육이라는 문제를 등한시 하고 단순히 안정된 일자리 문제로만 보는 거 아니야?

최근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교육이라는 문제를 등한시하고 일자리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여기서 교육을 등한시 한다는 것은 공교육이 가지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외면하며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진행한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 문제는 앞에서 다룬 전문성 시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다루었기에 과연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가 공교육이 가지는 공공성을 해치는 것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교육의 공공성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정부가 교육을 담당한다고 공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파시즘 교육도 정부가 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공성이라는 것은 사회적 필요에 기여하고 민주적인 접근과 분배의 원칙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이 공공성을 잘 지키고 있었을까? 아무래도 특목고나 자사고, 국제고와 같은 학교가 귀족학교처럼 여겨지고 일반 공립 고등학교가 붕괴되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썩 공공성이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자유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를 학교에 들여와서 학교와 교사를 교육서비스 공급자로 만들고 국민을 뜬금없이 교육 수요자로 만들었다. 그러한 신자유주의의 흐름 중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아마 노동의 유연화, 즉 기간제 교사일 것이다. 즉, 기간제 교사 및 학교 내 비정규직의 증가는 신자유주의를 학교 내에서 펼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정부는 노동자 민중을 위해서 교육을 바꿔오기보다는 대체로 자본의 이해관계를 교육에 많이 반영하였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대표적일 것이다. 학생 대다수가 노동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기업가 정신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자본가들이 원하는 노동력 공급에 우리나라 교육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정작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올바르게 발달하기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등한시 되고 인성교육이니 뭐니 하면서 말 잘 듣는 노동자로 길러지고 있다. 과연 교육을 일자리 문제로만 생각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근본적 경제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정부는 이러한 자본의 이익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정치인을 뽑아서 앉혀 놓고 좋은 교육감을 뽑아서 앉혀 놓아도 이들 자본은 언제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힘이 있다. 이는 전교조도 과거 여러 정권에서 많이 경험해 온 것이며 현재도 경험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가라는 기구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자 민중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공식적인 의회나 정치 구조 밖에서 지속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투쟁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에서는 이 투쟁을 누가해야 할까? 누가 교육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을까?

그동안 상당부분 전교조가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전교조는 단순한 교사 단체가 아니라 노동조합이었기 때문에 자본의 독재에 맞서 작업장을 멈추는 다른 노조들처럼 노동자들의 조직을 통해 이 사회를 바꾸고 제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이 발휘될 때 자본가들의 거대한 힘에 맞서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전교조의 노동3권 쟁취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 내의 교사들 중에서 노동3권이 보장되더라도 투쟁에 참여하기 힘든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기간제 교사들이 바로 그렇다. 이들은 학교 내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학교 내에서 잘못된 일을 끽소리 못하고 하게 된다. 이건 그들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생존과 관련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정규직 교사들은 교장에게 큰 소리 몇 번 친다고 잘리거나 하지 않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다음 해에 계약이 안 될 수 있고 교장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아예 학교에 발을 못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사장이나 교장의 성상납 요구가 있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정규직 교사들이 교장의 부당한 지시에 실컷 싸워 놓아도 기간제 교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그 지시에 따르게되어 무마되는 경우도 있다. 교사라면 자기 소신을 가지고 공공성에 위배되는 정책과 지시를 거부하고 교육의 공적 기능을 되살리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기간제 교사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조직을 만들고 정규직화 투쟁을 하는 것이 단순히 일자리 쟁취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3 기간제 교사는 휴직대체 교사라 상시지속적 근로가 아니잖아?

기간제 교사는 휴직 대체의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겠지만 사립의 경우처럼 원래 정규직 교사로 뽑아야 하는 자리에 기간제로 채워진 경우도 많다. 최근에 나온 시사인 기사를 보면 지난 10년간 정규직 교사의 전체 수는 완만한 그래프를 보이지만 기간제 교원의 수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휴직이 기간제 교원 수만큼 상승한 것일까? 2017년 8월 27일 한겨레 기사를 보면 서형수 더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2017년 기간제 교사 현황 및 계약 형태라는 문건이 나오는데, 전국의 국공립 학교에서 정원외 기간제는 7,600여명이라고 한다. 결국 현행 기간제법으로 따져도 상시지속적 성격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됨에 따라 교육과정의 제한적 운영을 빌미로 기간제 교사가 급증한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수가 6,000여명에 달한다. 따라서 사립뿐만 아니라 국공립에서도 기간제 교사라는 일자리의 상시지속적 성격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상시지속적이라는 기준을 정할 때 기간제법이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간제법이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우리 교육노동운동 진영이 받아 안는 것이 옳지 않다. 상시지속적이라는 말을 너무 협소하게 볼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시행된 기간제법에 규정된 2년이라는 기간을 상시적이냐 아니냐의 기준 중 하나로 삼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는 굉장히 후퇴한 접근이며 이 2년이라는 기간은 사실 2년 안에서 한시적 필요에 의해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상시다 아니다를 가르는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2009년에 100만 해고설이라는 괴담을 퍼뜨리며 이 기간을 4년으로 늘리려고 했던 MB정부의 꼼수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보통 이 문제를 놓고 상시냐 아니냐를 따질 때도 그렇고, 임용시험을 통해 기간제 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고 할 때도 그렇고, 모두 일자리와 사람의 관계를 따질 때 노동자의 관점이 아닌 사용자의 관점으로, 다시 말해 거꾸로 놓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거꾸로 놓고 보는 자들은 일자리가 상시냐 아니냐를 따질 때는 일자리가 아닌 사람을 기준으로 놓고 그 사람이 몇 개월 일을 하는지 파악하여 한시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규직화 논의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를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자리를 두고 필요에 의해 사람을 부리는 관점이다.

실상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면 노동자의 관점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상시냐 아니냐를 따질 때는 3개월이니 5개월이니 하는 기간에 매몰되어선 안되며 그 일자리 자체가 우리 사회 속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이냐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필요에 따라 갈아치우는 사용자의 가혹한 독재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정규직화를 논할 때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시키는 관점에 서야 함부로 사람을 썼다 버리는 사용자에게 제재와 일침을 가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경쟁 논리를 부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일자리의 정규직화는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겠다는 사용자의 기만이며 결국 “비정규직의 해고”로 이어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더군다나 정규직화가 선물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당연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위해 싸워왔고 그 와중에 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의한 시혜적 성격에 매몰되어 그들을 경쟁도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되려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이는 노동운동적 관점을 폐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시직으로 볼 것인가, 어떻게 정규직화 할 것인가는 기간제 교사 연합이 스스로 투쟁을 통해 정부와 결정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자신의 현재의 상상력으로 이들을 어떻게 정규직화 할지, 휴직대체를 어떻게 정규직으로 대체할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한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무원 총원제를 폐지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논의로 나아가려면 일단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부터 추진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감들도 악법으로 여기는 이 법의 폐지는 OECD 기준에 교사수를 맞추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4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한 게 아니라던데?

전교조 내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6·30 총파업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내 건 6·30 총파업에서 전교조 집행부 및 활동가 단위의 연가투쟁이 결의되었다. 이러한 전교조의 행보에 전교조가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찬성한다는 소문이 일부 교사 커뮤니티와 교사 맘카페에서 돌았고, 여기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교사들이 의견을 남겨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몇몇 사람은 당시 교육공무직이 맨 입으로 교사가 되려고 한다고 선동하였고 교원성과급을 폐지하면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쓰인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전교조에 항의성 전화를 조직하기도 하고 탈퇴를 종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여름 방학에 있었던 일꾼 연수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찬성하는 조합원이 꽤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운동조직이라면 어때야 할까? 이 상태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공유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는 토론 및 교육선전이 필요할까? 의견이 다른 조합원 사이에 충분한 토론도 없이 바로 결정에 부치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전교조 중집의 결정은 성급한 것이었지만, 대의원대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도 전에 전 조합원에게 문자로 보내졌다. 중집위원에게 들은 바로는 조합원들의 탈퇴 러시가 심각하니 빨리 반대 입장을 내야 한다는 일부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한다. 즉각적이고 일괄적인 정규직 교사 전환에 반대한다는 것은 즉각적이고 일괄적이지만 않다면 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은 총연맹과의 관계도 신경 쓰는 한편 탈퇴하는 조합원도 막기 위해 나온 괴이한 문구일 뿐이다. 이것은 맥락을 살펴보면 사실상 반대의 표현이었다. 가령 중집결정문 3항은 상시-지속 기간제 교사에 대한 정규직 전환 동의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고 고용안정 정도에 그치고 있고 4항은 처우개선만 이야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언론이 전교조는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반대한다고 보도하였음에도, 전교조는 반박자료 하나 내지 않았다.

심지어 전교조 한 분회가 무기계약직 전환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며 연서명한 의견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는데 교육부가 전환위 회의 때 의견서를 복사해서 돌리면서 전교조조차 이렇게 반대해서 힘들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들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거의 무산되었고 이 일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전환심의위에서 기간제교사, 영어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등이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학교 비정규직 동지들은 기세가 많이 꺾였고 맘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게다가 다른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맨 처음 터져 나온 곳이 서울지하철노조에서였다. 서울시가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2015, 2016 사번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들의 피켓에는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가 부당하듯 서울교통공사 무기업무직의 무분별한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전교조도 반대했는데 왜 서울지하철노조는 찬성해야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과학기술계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정규직 전환도 문제가 되었다.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정규직 전환이 무산된 기간제 교사들처럼 우리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사진: 사회주의자]

글을 나가며

교사가 일하는 학교라는 공간은 공공부문에 해당한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정부는 사용자로서 노동자들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고용정책을 결정하는 역할도 한다. 정부는 자신의 노동시장 정책을 현실화할 때 공공부문부터 그 정책을 실현하려고 한다. 따라서 사용자로서의 정부와 공공부문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정책이 하나의 전형이 되어 민간부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 노동시장 개악이나 성과연봉제 도입을 공공부문에서 강제한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렇기에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제로는 다른 공공부문의 영역뿐만 아니라 앞으로 민간영역까지 영향을 주어, 민주노총이 강력히 규탄한 대로 ‘정규직화 제로’로 수렴해버릴 것이 뻔하다. 비정규직 철폐에 힘 있게 달라붙어 싸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안타깝게도 전교조의 정규직 전환 반대 결정은 여기에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것이다.

누군가는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논의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파악한 후에 현실이 이러하니 굴종하자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운동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논리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자본가 혹은 기득권들에게 이익을 주는 현 사회의 체제를 좀 더 다수의 노동자나 민중을 위한 것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 상황을 잘 살피고 이 상황 속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가 정한 목적을 이룰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 우리 모두가 그 고민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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