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내부자, 보수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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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약 20만의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20만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박근혜 퇴진’이었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최순실의 어이없는 국정농단에 분노했지만 이제 현 사태의 주범이 박근혜라는 것, 그 정치적 책임을 묻는 형태로 박근혜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투쟁이 진행되면서 시민들이 현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최순실과 박근혜 개인에 대한 분노에서 검찰과 언론의 태도, 자본가들과의 거래 등 점차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당장 박근혜의 퇴진 뿐만 아니라 이후의 정치적인 질서에 대한 고민들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계 역시 드러나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노동의제가 여전히 시민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사실상 현 사태의 또 다른 내부자인 보수야당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다는 것과, 셋째로는 좋은 대통령을 뽑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표적으로 미디어오늘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사에는 재벌과 대기업, 언론, 검찰과 경찰, 새누리당을 현 사태의 주요한 내부자로 지목한다. 맞다. 이들은 현 사태의 분명한 내부자이며, 이들에 대한 개혁 없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이 기사는 착취와 수탈의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개별 집단들의 문제로 흩트려놓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더불어 현 사태의 진정한 내부자인 더불어민주당을 빼놓고 있다.

자본주의의 신봉자이며 지지자인 민주당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에서 여야가 추천한 총리 후보자를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하고 내정에 대한 전권을 주면 해결된다”고 했다. 또한 우 원내대표는 “전국당원보고대회가 열리는 12일까지는 청와대의 입장을 지켜보겠다”며 “그때까지는 하야나 탄핵 등을 언급하는 메시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삼스러운 발언은 아니다. 민주당은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서 터지자 문제해결의 방안으로 문재인의 입을 통해서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한 바 있고, 이 주장은 철회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시민들의 요구인 ‘박근혜 퇴진’흐름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 5일 집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거리에 나오고,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퇴진을 주장했지만 당론은 아니다. 이것으로 민주당의 입장은 분명하다. 박근혜로부터 정권을 안전하게 인수하는 것이 목표일 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시민들이 직접 행사하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반혁명적인 발상이 아닌가?

민주당의 한계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들이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해왔다. 정리해고법안, 비정규법안, 법인세 인하 등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합법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법안의 제/개정에 앞장서왔다. 새누리에게 정권을 빼앗긴 이후에도 민주당은 자본가계급과 협력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박근혜 이후에 극복해야 할 대상엔 이 착취의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으며, 자본가계급의 절친인 더불어민주당이 빠질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극복해야할 대상이 바로 보수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중의 친구인척하며 대중의 거대한 정권퇴진 투쟁의 전진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보수정당의 양당 지배체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불철저한 입장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대중의 분노를 절차적 민주주의에 가두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격동기에는 기존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은 행동으로 시작되고, 그렇게 되어야 일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현 사태의 내부자에서 민주당을 빼주면서 자연스럽게 박근혜 정권 이후의 대안세력으로 치켜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내년에 치루어질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무너뜨리면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선동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부르주아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가두면서 보수양당 체제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며, 착취와 수탈의 자본주의에 수혈을 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희생을 통해 자본가계급의 계급지배를 영구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자!

지금 대중은 박근혜정권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 투쟁의 과정에서 이후에 올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받기를 거부한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거리로 나온 대중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지만, 여전히 부르주아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갇혀있는 대중에게는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

박원순과 이재명 등 몇몇 정치인들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면서 민주당을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그들의 한계도 분명하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그들은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밑에 있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설 수 없는 정치인의 한계뿐만 아니라, 개인은 결코 그 조직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에서 박원순과 이재명도 대중의 희망이 될 수 없다.

대중의 운명을 몇몇 개인들에게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이다. 박근혜의 집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서 통제되지 못하는 더 많은 개혁적인 국회의원, 좋은 대통령으로는 현실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충분하게 경험하지 않았나? 그 시절에 민주주의를 향유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그 시절에도 여전히 착취당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박근혜 이후를 뛰어 넘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다. 물론 이 상상력은 근거 없는 개인들의 몽상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배계급에 맞서 모든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거대한 대중투쟁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계급지배의 도구에 불과한 부르주아 정치제도가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정치제도를 뛰어 넘은 것, 그것을 우리는 사회주의라고 한다. 지금 거리에서부터 사회주의를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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