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최대권력조직”, 이제는 “계약자유의 시대”?―나경원의 망발이 알려주는 세 가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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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패스트트랙 논란으로 국회를 수개월 보이코트하던 자유한국당이 국회에 돌아오자마자 황당무계한 망발을 쏟아냈다. 7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내뱉으면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그 절정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묻겠”다는 대목과 “근로기준의 시대에서 계약자유의 시대로 가겠”다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나경원은 “근로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있어야 할 노조가 집단 이기주의에 함몰돼 대부분의 근로자, 또는 예비 근로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민노총은 대한민국 법질서 위에 군림하는 대한민국 최대 권력 조직이 되었”고 “그런 민노총에 한 없이 휘둘리는 문재인 정부, 한마디로 친노조, 반노동 정부”라고 주장했다. 또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을 추진”하고 “노동자유계약법”을 만들어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기준’의 시대에서 경제주체가 자율적으로 맺는 ‘계약’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유계약법? 자유한국당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되는 시대부적응 집단

이젠 “근로기준법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고, “계약자유화”로 가야 한다는 나경원의 망발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이것은 19세기에나 나올 만 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유한국당은 수구를 넘어 시대부적응 수준에 이른 정치세력임을 드러낸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막 확립되던 시기인 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는 노동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자본과 국가의 시도가 계속 되었다. 자본의 착취에 대한 법적 제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완전히 확립된 19세기 들어서부터는 자본의 착취를 제한하기 위한 각종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제한이 없을 경우 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증식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무제한적으로 착취하여 결국 노동자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퇴화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러한 자본의 속성을 『자본론』 1권 제10장 노동일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고 잉여노동의 흡수인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노동력으로부터 그 정상적인 도덕적·육체적 발전조건과 활동조건을 탈취함으로써, 인간노동력의 위축을 가져올 뿐 아니라 노동력 그 자체의 조기 소모와 사망을 가져온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자본의 착취에 제한을 가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점차 노동자의 요구는 공장법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1833년에 공장법이 최초로 제정되어 근대적 산업의 표준노동일이 면, 모, 아마, 비단 공장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공장법 제정은 비단 노동자들의 투쟁 결과만은 아니었다. 자본의 착취가 극심해지자 자본가도 이를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퇴화를 계속 방치하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유지가 어려워질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노동자들의 집단적 대응, 이를 위한 노동조합의 결성 역시 자본의 착취를 막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맑스가 『자본론』 1권에서 언급했던바 노동일 규제의 역사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일단 일정한 성숙단계에 도달하면 개별노동자, 즉 자기 노동력의 ‘자유로운’ 판매자로서의 노동자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약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개별 노동자는 자본과의 계약 관계에서 힘의 압도적 차이 때문에 자본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의 무제한적 착취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야만 했던 것이다.

자본의 착취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들에 대해 자본가들이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저항했다. 특히 1848년 유럽 혁명이 패배하고 차티스트 운동도 실패하면서 “공장주들은 10시간 노동법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1833년 이래 노동력의 ‘자유로운’ 착취를 제한하려고 시도했던 모든 입법에 대해서도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켰다.”

현재 나경원이 주장하는 노동자유계약법과 대동소이한 “노동의 자유”란 자본의 논리도 이 당시 등장했다. 이에 따르면 공장법 제정과 같이 자본의 착취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들과 노동조합의 결성은 노동자에게 “독점”적 위치를 허용하여 수요·공급 원리에 입각한 “자유경쟁”의 원칙을 허무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마치 노동자의 자유로운 계약의 권리를 주장하는 듯 치장했지만 실상은 아무런 제약 없는 자본의 착취를 요구하는 파렴치한 논리였다. 그런 논리는 19세기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노동일 및 공장법 제정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제는 자본주의 하에서조차 자본의 착취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자본과의 관계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임금·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 역시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심지어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한 ILO 협약마저 등장하여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이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나경원과 자유한국당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황당무계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바로 민주당

근로기준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계약자유의 시대로 가야한다, 이런 망발을 하는 나경원과 자유한국당이야 말로 신속히 해체되어야 마땅한 정치세력이다. 마치 소수의 기득권 노동조합을 비판하고 다수 노동자 편을 드는 듯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착취의 제한이 없던 19세기 자본주의, 이른바 자본주의의 최악 버전으로 가자고 종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나 히자 않을 수 없다. 탄핵된 박근혜 잔당일 뿐 아니라, 각종 망언을 일삼고 이제는 제정신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운 망발까지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한국 사회에서 수구세력이 여전히 적지 않은 수를 이루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대여론 때문일까? 그것으로는 자유한국당이 아직까지 존재하면서 황당무계한 망발을 하고 다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서 자유한국당이 계속 존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딱히 내세울 정치적 내용이 없는 자유주의 정권으로서는 만인의 미움을 받는 수구세력인 자유한국당이 계속 존재해줘서 그에 대한 비교우위를 통해 자신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친일-좌파독재와 같은 거짓 프레임으로 민중을 호도하고 있다.(관련 내용은 박준규의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의 적대적 공생관계」와 성두현의 「자본가 정치세력의 허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프레임 경쟁―좌파독재 대 친일」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번 나경원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나오게 된 과정을 살피면 수구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공생관계가 다시금 드러난다. 민주당은 몇 달 전 패스트트랙 논란을 뒤로하고 국회를 정상화한다는 미명 하에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추진해 이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민주당과 공조해온 정의당 심상정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유한국당을 한국정치에서 추방하기는커녕 끊임없이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고 멍석을 깔아 준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다.

반민주노총 악선동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나경원의 망발이 나올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수구세력, 자유주의세력을 막론하고 집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민주노총 악선동을 들 수 있다. 수구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은 그렇게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민주노총이란 상대를 두고서는 하나가 된다. 정규직만 위하는 기득권 노조, 귀족노조, 이기적 세력 등등이 민주노총에 대해 퍼부어지는 상투적 비방이다. 그러나 이런 비방의 구체적 내용은 단지 민주노총을 비방하고 타격하겠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구실에 불과하다. 만약 비방의 내용대로라면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우호적 댓글이 달려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비방 일변도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 기사에 달린 비방 일색의 댓글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반민주노총 악선동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 등을 통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지만,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세력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민주노총은 기득권 노조, 정규직만 위하는 노조, 귀족노조, 이기적 세력이라는 비방이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런 비방이 ‘여론’으로 둔갑하여 민주노총에 대한 각종 비난과 강경대응을 정당화하는 양상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민노총은 대한민국 법질서 위에 군림하는 대한민국 최대 권력 조직”이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나경원의 발언이 스스럼없이 나온 것이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민주노총을 대중의 공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 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기획이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새 야금야금 민주노총에 대한 악선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자본과 정권에게 유리하게 이용되고 있다. 백만 조합원을 지닌 민주노총이 이에 대해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민주노총, 노동운동세력이 나서서 반민주노총 악선동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한개의 댓글

  1. 근로기준법도 일종의 공장법입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산물입니다. 자본주의적 착취는 노동자의 재생산조차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와 지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영국정부조차 나서서 장시간 노동에 제한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후발 자본주의나라에서도 따라갔습니다. 나경원의 주장은 무지몽매한 주장입니다.이미 부르주아 법학에서조차 사회법이라고 해서 노동법의 필요성을 말해왔는데 이것조차 부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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