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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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YTN 뉴스 캡쳐]

그동안 정치권에서 간헐적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던 개헌논의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권력 공백기를 맞아 공론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구성결의안이 재석의원 99퍼센트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어 1월 5일에는 개헌특위가 공식 출범하여 개헌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선 주자들 가운데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까지는 개헌에 미온적이던 문재인도 ‘2018년 개헌 국민투표’라는 자신의 개헌 로드맵을 내놓은 상태이다.

개헌 바람이 정치권에서만 부는 것은 아니다. 개헌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여론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새해 벽두에 실시된 몇몇 여론조사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찬성 응답이 반대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나 시민단체, 언론에서도 개헌과 관련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번 뚜껑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개헌 논의는 향후 대선 국면을 좌우하는 거대한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헌은 기회주의 기득권 세력이 벌이는 정치 쇼

그런데 실제로 다음 정권 출범 전에 개헌안이 나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논의 자체가 백가쟁명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데다, 논의를 주도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바람에 합의된 헌법개정안을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합의된 개정안이 나오더라도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이상 찬성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까지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지금의 개헌 논의는 대선을 앞둔 국면에서 소리만 요란한 이슈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논의를 일으킨 주체들도 이와 같은 헌법 개정의 어려움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대다수가 한 목소리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국회 개헌특위가 결의안을 통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지난 30여 년간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이 급변해 기존 헌법 체제 하에서 개별 법률의 개정이나 제도의 보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개별 법률의 개정이나 제도의 보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권력구조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 같은 사태가 발생했으므로 이러한 권력 구조를 손볼 때가 되었다는 게 개헌 논의의 배경이다. 아울러 4년 중임 대통령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 등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이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권의 패악을 권력구조 탓으로 돌리고 개헌을 이슈로 띄우면서 국정 실패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면제받으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동시에 거대한 촛불 민심을 개헌 이슈로 흡입한 뒤 정국을 주도하고, 이후 벌어질 권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일부에서는 아예 의원내각제를 추진하여 권력의 중심을 의회로 가져가고자 하는 속셈도 드러내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세력일수록 더욱 그렇다. 새누리당을 탈출하여 재결집한 ‘바른정당’이나 존재감이 어정쩡한 ‘국민의당’이 개헌논의에 적극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들에게 개헌은 성사되어도 좋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각 세력 간의 야합과 정계개편을 도모할 수 있는 이슈이다. 잘 되면 크게 남는 장사이고, 안 되어도 본전이다.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은 지금, 이들이 개헌 이슈에 마구 불을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헌은 기회주의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권력 공백기에 벌이는 정치 ‘쇼’라 할 수 있다.

‘낡은 헌법’을 개정하자는 ‘낡은 세력’의 목소리

사실 헌법을 뜯어고쳐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는 것은 역대 지배자들의 해묵은 수법이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래 한국의 지배계급은 권력 연장을 위해 아홉 차례나 헌법을 뜯어고쳤다. 대부분은 낡은 체제에 대한 기층민중의 저항이 고조되었을 때 그에 조응하거나, 또는 저항을 억압하는 방편으로 이루어졌다. 헌법 내용에 따라 현실이 바뀐다기보다는 현실에 따라 헌법 내용이 바뀌어온 까닭이다.

그 가운데 1952년의 1차 개헌과 1954년의 2차 개헌은 이승만 정권이 집권 연장을 위해 폭력적인 수단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반면 1960년에 있었던 3차, 4차 개헌은 4.19혁명으로 마련된 통치 공백 상태에서 자유주의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3차 개헌에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의원내각제가 도입되었다. 이승만 장기집권에 염증이 나 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4차 개헌은 반민주행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이었다.

이어 1961년에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에 5차 개헌을 단행하고 대통령제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이어 박정희는 1969년 6차 개헌을 통해 3선 금지 조항을 철폐하여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게다가 1972년에는 7차 개헌으로 ‘유신헌법’을 도입하여 종신집권의 꿈을 꾸었다. 이처럼 박정희가 주도한 세 번의 개헌은 독재체제 구축을 위해 권력구조를 바꿀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박정희 사망 후 다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8차 개헌 또한 박정희 시대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상징되는 9차 개정 헌법이 탄생했다. 그로써 본격적인 자유주의 헌법이 마련되었다. 9차 개헌은 4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온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최초의 여야 합의로 6공화국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비록 여름 내 뜨거웠던 항쟁의 열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성과였지만, 9차 개정 헌법은 이후 30년 동안 모든 실정법의 상위법으로써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처럼 지난 70년 동안 헌법은 지배세력 내부의 사정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개악되거나 개정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이즈막에 박근혜 탄핵 국면을 맞아 새누리당 잔당 세력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촉발되었다. 거기에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등이 동조하면서 개헌 논의가 공론화되었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이들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된 견해는 있다. 그것은 30년 묵은 지금의 헌법은 낡았다는 것이다. 군부독재의 유산을 답습한 가장 ‘낡은 세력’이 ‘낡은 헌법’을 뜯어고치자고 달려드는 진풍경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헌법에 노동자는 없다

개헌이 공론화되면서 정치권 밖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산발적이긴 하지만,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촛불 민심은 개헌이 아니다’며 외면하는 쪽이다. 국회의 낡은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개헌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하자’는 쪽이다.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된 정치권의 개헌논의에 기본권 강화,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도입, 지방분권 강화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도록 압력을 행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지금의 개헌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주지해야 할 게 있다. 개헌은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단지 헌법의 일부를 고치는 일이다. 따라서 웬만한 규모의 개헌으로는 우리를 지배해온 헌법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헌법의 본질은 무엇일까.

헌법은 한 시대의 지배 이념과 그 이념을 실현하는 권력 구조를 그린 기본 설계도라 할 수 있다. 봉건왕조 체제가 무너진 20세기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근대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조응하는 국가를 세웠다. 이른바 ‘민주공화국’이었다. 동시에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합리화한 자유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작동 원리를 헌법에 담았다.

요컨대 현행 헌법은 그 전문에서부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함으로써 그 자유주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헌법의 제9장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경제 질서에 대한 조항으로 채워져 있는 바, 그 첫 조항인 헌법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란 기본적으로 자본의 소유자가 임금노동자와 고용관계를 맺어 잉여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또한 헌법 126조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현행 헌법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구현하고 있다. 요컨대 헌법은 자본을 가진 개인과 기업을 경제 주체로, 여기에 고용된 임금노동자를 토지나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으로 간주한다. 또한 현행 헌법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거대 재벌 기업 소유자들의 독점적 지위를 합법화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 착취 기반의 경제 질서를 용인하는 내용을 매끈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곧 지금의 헌법인 것이다.

이젠 개헌(改憲)보다 제헌(制憲)을 논할 때

지금의 자유주의 헌법에는 자본가만 있고 노동자는 없다. 그렇다고 자유주의에 찌든 낡은 정치세력들이 주도하는 개헌으로 헌법의 본질이 바뀔 리도 없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헌법 조문을 뜯어고친들 그것이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헌법이 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헌법은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본가계급의 안정적 지배를 보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지금의 개헌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컨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새해 벽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으로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나아질 것(40.1%)’이라는 응답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44.5%)’이라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게다가 젊은 층으로 갈수록 부정 응답 비율의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대중이 찬성하지만, 개헌으로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처럼 삶의 위기에 처한 대중은 낡은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개헌의 한계를 스스로 파악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총리나 의회로 분산된다고 해서 인민에 대한 억압이 약화되는 게 아니며, 대통령 임기가 5년에서 4년으로 줄어든다고 해서 인민의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사회모순은 정치적 권력구조가 아니라 경제적 생산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답이 없는 것처럼, 자유주의 헌법에도 답이 없다. 그것이 상식이다.

지금 노동자계급은 낡은 지배세력의 개헌논의에 휩쓸릴 때가 아니다. ‘경제 질서’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교묘히 합법화하는 자유주의 헌법의 본질을 여지없이 폭로하며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나서야 할 때다. 절실한 것은 자유주의 헌법을 고쳐 쓰는 개헌이 아니다. 잉여노동에 대한 착취가 극에 달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나아가 자본주의 이후의 체제를 스스로 건설하는 일이다. 개헌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개헌 대신 차라리 제헌(制憲) 논의를 벌여야 한다. 작금에 타오르고 있는 촛불 민심도 궁극적으로 여기에 닿아 있을 것이다.

2 댓글

  1. “이어 1961년에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에 5차 개헌을 단행하고 대통령제를 부활했다.”
    에서 부활했다 보다는 부활시켰다 로 쓰는 것이 맞는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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