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한 집회·시위 억압에 맞서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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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뉴스]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계급

작년 2월 코로나19가 한국에 확산된 지 어느새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코로나19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 한 전염성과 위험성 그리고 빠른 변이속도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 수많은 사상자들을 내놓고 있고 지금까지도 빠른 속도로 감염 확산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정부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방역조치를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비말(침방울)에 의한 전파가 주된 감염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역조치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과 좁은 장소에서의 밀집을 막는 것, 그리고 빠른 감염경로 파악을 통해 추가적인 연쇄 감염을 막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한국 정부와 여러 지자체에서는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빠르게 시행했다. 집회와 시위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모이기 때문에 단순하게만 생각한다면 집회나 시위를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 방역 조치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사실상 지배계급에 반대하고 투쟁하려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지배계급의 의도가 숨어있다. 이는 다음의 몇가지 사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2020년 7월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조문하기 위한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수만여명의 시민들이 방문하였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시청 광장과 광화문 광장 등 인근 지역의 집회를 원천 금지한 상황이었으나, 시민분향소의 설치와 수만여명 시민의 방문은 모두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이것이 “집회가 아니라 제례”로 판단되므로 문제가 없다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올해 2월 19일에 있었던 고 백기완 동지의 영결식과 분향소 설치에 대해서는 “시에 사전 신고와 절차 없이 서울광장 남측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영결식을 개최한 백기완 선생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을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 경찰에 고발 조치할 것” 이라는 상반되는 태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는 이미 2020년 2월 27일, 마사회의 비리와 기수 노동자의 열약한 처지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열사 분향소를 감염병예방법을 내세워 경찰력과 용역을 동원해 강제 철거를 집행하기도 하였다. 이는 집회・시위에 대한 제한이 감염병 방역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집권세력이 노동자・민중을 향해 제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서 제외되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를 위하여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7월 23일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집회를 예고하자, 원주시는 하루 전에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기준을 적용하면서 집회에 대해서만 4단계로 기준을 높여 집회를 원천 금지하고 1인 시위만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집회・시위에 대한 억압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지배계급은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내건 투쟁들을 억압해왔다. 부당하게 해고되어 농성을 진행중이던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던 장소는 당시 다수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던 곳도 아니었고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들고 있던 시점이었음에도 갑작스레 집회금지구역이 되었고 이후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농자들의 농성장은 기습철거를 당했다. 또한 수협의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서 내쫓긴 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들이 농성 투쟁을 벌이던 노량진역 광장도 집회금지구역으로 고시되고나서 농성장이 있던 구시장 육교가 강제 철거당했다.(이에 대해서는 작년 7월 본지에 필자가 기고한 「지배계급이 잠가 놓은 광장, 청년・노동자 투쟁으로 열자」를 참고하라) 지배계급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민중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지배계급의 의도

이와 같이 지배계급은 노동자・민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핑계로 노동자・민중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지배계급의 의도는 명백하다. 현재 지배계급이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노동자・민중의 삶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자유주의세력이든 수구세력이든 자본가정권, 지배계급은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게되어 지배계급에 책임을 묻는 투쟁에서부터 결국은 이 모순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문제삼는 투쟁으로 발전해나갈 가능성이 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발전해나갈 가능성을 제지해야 할 계급적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태를 통해서만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최근의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이나, 문제는 불공정이니 능력주의니 같은 소리를 하며 노동자・민중의 고통의 근본적인 진짜 원인을 은폐시키는 각종 공작들에서도 지배계급의 의도는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민중은 지배계급의 무능력 탓에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점점 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능력도 의지도 없는 지배계급의 한심함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3 전국노동자대회에 8천여명의 노동자・민중을 결집시키게 했다. 이에 김부겸 국무총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해 코로나19 7월 대휴행의 책임을 돌리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위협하고는 유례없는 특별수사본부까지 구성하고 노동자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7・3 전국노동자대회는 악화일로 속의 노동자・민중들의 절박한 상황과 그것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지배계급의 방치 속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그리고 7월 26일 중대본이 발표한 ‘민주노총 7월3일 집회 관련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대회 관련 확진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김부겸 국무총리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지배계급은 사과는 커녕 7・3 전국노동자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8월 13일 발부했다. 법리적으로 구속영장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을 때 적용될 수 있으나, 이것은 양경수 위원장에게 해당될 수 있는 조건들이 아니다. 지배계급이 양경수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집행을 시도하는 것은 명백히 노동자・민중의 단결된 힘이 광장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지배계급의 의도를 보여준다. 그 의도는 집권한 정권에 관계 없이 한결같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지배계급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배계급이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자행하자, 노동자・민중들은 충분한 거리두기를 한 1인 시위나 거리를 두고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등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충실하게 따르며 행동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없는 행동에도 지배계급은 “충분한 거리 간격을 두고 피켓 등 선전물을 들고 서 있거나 행진을 하는 경우도 1인 시위가 아니라 집회로 판단”한다는 억지를 부리며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중앙일보, 「1인 시위도 델타변이?…변형 시위에 수사 착수, “공동 목적”이 핵심」, 2021.08.16)

십여명에서 몇십명의 집회인원을 해산시키려고 그보다 수배의 경찰 및 용역을 동원하는 모습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지배계급이 감염병 확산을 막기위해 집회・시위에 대해 억압하는 것이 감염병 에방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집회 시위를 차단하는 방역 지침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보건의료계의 지적이다. “야외활동에서의 코로나 감염 위험성은 전체 감염의 1% 미만 또는 0.1% 미만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준수한 야외 집회보다 밀폐된 직장이나 특히 혼잡한 출퇴근 대중교통이 훨씬 더 감염 확산에 위험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많은 노동자・민중들은 출퇴근 시간 직장에 출근해야한다. 노동자를 계속적으로 착취해야 자본주의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지배계급은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며, 단지 자본주의적 모순에 고통받는 노동자・민중에게 재갈을 씌우기만 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코로나19가 없었을 때도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억압하려 갖은 술수를 써왔고 각종 수단을 통해 집회・시위를 방해해왔다. 이번에 코로나19라는 얼핏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핑계가 생겼을 뿐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집회・시위는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민중의 삶이 더욱 악화된 지금 상황에서 집회・시위는 필수적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촛불집회의 대상은 민주당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한 청년의 질책에서 느껴지듯이, 많은 청년・노동자・민중은 지배계급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금의 청년・노동자・민중들을 고통스럽게 옥죄고 있는 문제들은 일자리・주거・여성억압・기후・생태・부채 등등 다양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보면 자본주의가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단결된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되어 나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것은 광장에서,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장을 되찾아야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지배계급, 자본가계급의 배려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결한 노동자계급의 끈질긴 투쟁으로 얻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한 지금 청년들과 노동자・민중은 더이상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그저 가만히 듣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개의 댓글

  1. 당신네들이 그렇게 물고빨아제끼는 ‘사회주의’하고 비운의 반공투사 히틀러 총통의 ‘국가사회주의’하고 결정적인 차이가 뭐요?
    진지하게 궁금해서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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