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극복하자

5
2671
[사진: 민주노총]

촛불투쟁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비정상적인 박근혜 정권과 대비되어 개혁적인 정권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있다.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박근혜와 기자들 앞에서 직접 인사를 발표하는 문재인,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르지 못하게 하는 박근혜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문재인,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선거개입이 아니라고 우기던 박근혜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금지하겠다는 문재인,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에 사과하지 않는 박근혜와 사과하게 만든 문재인이 대비효과의 예들이라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약속으로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실업해소에 대한 기대, 고리 원자력발전소 중단에서부터 시작된 탈원전 사회에 대한 기대 등이 문재인 정권을 개혁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필자는 노동자들 속에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기대감은 노동운동 진보운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 힘을 실어준다든가, 문재인 정권을 견인하겠다는 태도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심지어 자유주의 세력인 문재인 정권이 대안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투표소에서는 수구세력이 걱정되어 문재인을 찍었다는 활동가, 문재인의 압도적 승리에 자신도 모르게 기뻐하는 활동가를 보기도 했다. 문제는 정권에 대한 이러한 기대감은 환상에 불과하고, 노동자 계급의 자주성을 훼손하여 노동자들이 자유주의 세력의 그늘아래서 못 벗어나게 만든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 = 자유주의 정권 = 자본가 정권

문재인 정권이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점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체로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외신을 보면, 지난 5월 10일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자, 영국 BBC방송은 “자유주의자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탑기사로 보도했다. 실제 노동운동, 진보운동에서도 문재인 정권을 자유주의 정권이라 규정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민주노총 상집에 제출된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민주노총의 과제」라는 발제문에는 “신정부의 출범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재집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좌파노동운동단체인 노동전선은 ‘문재인 정권의 성격과 대응방향’이라는 문서에서 문재인 정권의 출범을 “보수정권에서 자유주의 정권으로의 정권교체”라고 표현하고 있다. 노동전선의 이런 규정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를 보수정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이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단지 자유주의 정권이라고 규정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렇게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무슨 토론을 할 때 장식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 정권의 성격규정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유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한다 한들 이 정권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가진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수구정권의 실정에 대한 분노로 인해 새 정권에 대한 상대적 기대감이 적지 않고, 자유주의자들이 10년간 자유주의를 진보적인 것으로 포장해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주의 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진보운동 내에서조차 동요가 관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최장집, 김상조, 장하성 등은 그동안 한국자본주의에 천민성과 정경유착 등 퇴행적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과제이고 따라서 자유주의는 진보적이라는 논리를 개발해 유포시켜 왔다. 현재 이런 논리는 상당히 많은 영향을 대중에게 끼치고 있다. 아울러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 퇴보하고 일부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투항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노동운동과 자유주의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진 점도 자유주의에 대한 불철저한 태도를 낳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이념이고,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말은 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정권이라는 뜻이다. (자유주의에 관한 내용은 박남일의 글 「자유주의, 잔혹한 불평등의 역사」를 보기 바란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을 자유주의 정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 정권이 자본가 계급을 대변하는 정권이고, 노동자 계급은 이 세력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면서 이에 입각한 실천태도를 갖는 것까지 의미한다.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잘못된 태도

그런데 현실은 이와 다르게 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성격에 대해 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하면서도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 협력을 한다거나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식의 태도가 진보운동 내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민주노총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를테면 지난 5월 2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 지금 당장 촛불행동’ 집회에서,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오는 6월 30일로 예고된 사회적 총파업에 대해 “6.30 사회적 총파업은 노동자들의 이기적 투쟁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삶이 나아지는 절실한 요구에서 나온 것이다. 총파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 추진에 힘을 보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실현하고 노동자 계급의 단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주의 정권의 개혁에 힘을 보탠다는 게 민주노총 대표자의 입에서 나올 법 한 말인가?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6.30 사회적 총파업 특별판)는 이보다도 더 퇴행적 사고를 보여주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특별판에서 『노동과 세계』는 “민주당은 친자본의 때를 벗지 못한 보수중도정당”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규정 어느 하나 명확한 규정이 아니다.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 대해 “친자본”을 운운하는 것은 민주당을 매우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진보운동에서 많은 역할을 해온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 역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승호 대표는 『매일노동뉴스』의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이라는 칼럼에서 자유주의와 노동계급이 지향하는 바가 확실하게 다르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수구보수 지배세력이 청산되는 혁명 국면까지는 대체로 대립적이지만 비적대적 성격을 가질 필요가 있고, 이에 지혜로운 관계설정이 양자 모두에게 요청된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자본주의 체제 문제보다 수구세력의 청산이라는 과제가 우선적이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과 적당한 협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김승호 대표는 그동안 촛불항쟁을 있게 한 근본원인을 자본주의 그 자체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불만으로 보지 않고 독점재벌, 파쇼적 국가기구를 두 축으로 하는 “천민자본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자본주의의 천민성 극복에서 찾는 것은, 비록 천민성의 내용에 편차가 있지만 현 정권에 등용된 장하성의 논리와 사뭇 유사하다. 만약 한국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라고 본다면, 세금도 내지 않은 대자본가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이나 최근 어이없는 이유로 아파트 화재가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한 영국 역시 천민자본주의라고 말하는 것으로, 현실과도 맞지 않다.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전선의 문서를 작성한 김동수의 경우 문재인정권의 성격을 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에 싸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는 ‘공동정부’에의 참여가 아니라 민주노총/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이 힘으로 문재인 정부를 견인/견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의당을 진보로 규정하는 것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이와 관련해서는 성두현의 글을 볼 것), 문재인 정부를 견인하자고 말하는 것을 통해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철저한 태도를 결여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제 노동자 계급이 투쟁해야 할 주된 대상은 자유주의 세력이다

박근혜로 대변되던 수구세력은 지난 겨울 거대한 투쟁으로 사실상 몰락하고 말았다. 물론 수구세력은 수십 년 동안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이러한 몰락에 저항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수구세력의 철저한 청산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몰락은 되돌리기 힘들고, 향후 한국 지배질서의 주도권은 자유주의자들이 갖고 갈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촛불투쟁으로 드러난 민중의 불만을 일정정도 반영하여 개혁을 추진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이 겪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성두현의 지적처럼 “수구 정치세력이 급속하게 몰락하면서 이른바 민주대 반민주의 정치구도는 과거의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이제 과거의 구도에서는,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밀릴 것을 강요당했던 문제, 자본주의체제의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노동자 계급이 투쟁해야 할 주된 대상은 자유주의 세력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 수구세력 청산과 개혁에 대한 기대감에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기대하고 협력, 견인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결국 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갖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자계급 운동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사례들을 가지고 있다. 맑스는 1848년~49년 독일혁명을 경험하고 평가하면서, 귀족에 맞서 함께 투쟁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에 대해 기대는 태도를 비판하고 노동자 계급의 독자성을 확고히 하면서 이들에 맞서 투쟁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러시아 혁명에서 멘셰비키는 1917년 2월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보고, 이 혁명은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이 주도해 완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임시정부에 협력하는 한편 전쟁을 반대하는 민중의 요구를 묵살했고, 결국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과 같이 몰락하였다. 반면 볼셰비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조차 불철저한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주도할 때에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자유주의 부르주아와 철저히 선을 긋고 투쟁한 것은 혁명의 승리로 이어졌다.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가 쓴, 「1850년 3월의 호소」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승리한 그 순간부터, 타도된 반동 당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불신을 보낼 필요가 전혀 없고 지금까지의 동맹자에 대해서, 즉 공동의 승리를 혼자서 차지하려 드는 당파에 대해서 불신을 보내야 한다.

5 댓글

  1. 자유주의가 싫으면

    아니 자본주의가 싫으면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문명의 혜택은 왜 누리나??

    자본주의가 아니였다면 스마트폰이 만들어졌겠냐?

    인터넷은 또 어떻고?

    문재인을 보면서 역겨움을 느끼는데 이 기사를 보며 더 역겨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100만원을 주면 너무 많다고 하는 사람과, 너무 적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등등 너무나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공산주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획일화 시키기땜에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부자를 도우면 투자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비용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사회탓, 제도탓으로 돌리지말고 빈자의 행동거지부터 살펴봐라

    그러면 그 사람이 왜 가난한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공산주의는 모든 것을 획일화 하려하니 사람들이 명령을 어기게 되고

    이를 강제하기위해 공산당 독재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2. 사람들은 원래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한다.

    좌파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면 서민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천만의 말씀!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공공임대주택을 벗어나 부유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몰려가게된다.

    왜냐면 사람심리상, 자기보다 아래랑 어울리고 싶지 않거든

    그리되면 공공임대주택이 건설된 지역은 점점 슬림화된다. 그 이후는 말 안해도 알것이고

  3. 근로소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부터가 문제다

    자본주의 최고의 제도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이다.

    일반인들이 주식을 사서, 회사의 경영에 동업자로서 참여하고 매년 회사의 이익 중 일정부분을 배당이라는 형태로 지급받는다.

    한국 좌파들은 주식을 투기의 대상으로 본다.

    주식투자를 하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않는다.

    주식투자를 함으로서 세계적 기업의 이익 중 일부를 공유하는게 그리 아니꼬운가??

    아니면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인가?

    가령 국민이 빈곤해져야 사회주의의 구호가 잘 먹혀 들어갈것같은 그런 의도??

  4. 끝으로 한가지만 더 쓰겠다.

    자본론을 쓴 칼 막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사치스러운 부르주아였다.

    칼 막스는 노동을 해본적이 없는 위인이다.

    항상 기생충마냥 주변 친척과 앵겔스한테 의지했다.

    앵겔스한테 맨날 돈달라고 징징댔다.

    항상 돈에 쪼들리면서 자기 집에 하인을 두었고 온갖 고급스런 가구들을 샀으며 주기적으로 여행도 갔다.

    한마디로 배때지가 쳐불렀으니 자본론같은 개소리를 지었던게지 ㅋㅋㅋㅋㅋ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