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교육자, 대학 기업화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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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여러분은 피교육자입니다.

작년 4월 7일 고려대학교 염재호 총장이 신입생 특강에서 했던 발언이다. 학생은 학교의 사업과 정책에 관한 의결권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다. 일개 대학 총장의 발언이지만, 오늘날 대학 안에서 학교 당국과 학생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은 학교 당국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대학평의원회같은 기구가 있더라도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사실상 학생은 학교 당국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러한 억압적 구조에서 많은 학생들이 맞서 싸웠지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전국의 대학에서 통폐합된 과가 995개에 달한다. 그런데 작년 12월, 이러한 절망적 현실에서도 승리를 거머쥔 피교육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대학 구조조정과 민주주의 억압에 맞선 고려대 학생들의 투쟁

투쟁의 시작은 박근혜 퇴진 투쟁이 한창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작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월 2일, 고려대 당국이 ‘미래대학 설립안’을 발표하며, 정원 확보를 위해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겠다고 어떠한 사전협의도 없이 통보했다. 이에 분노한 학내 구성원들은 11월 10일과 15일에 학교 측이 주최한 관련 토론회를 연이어 무산시키며 항의에 나섰고, 총학생회는 미래대학 전면 철회와 박근혜 퇴진 운동 결의 등 4개 안건을 내걸고 11월 28일 학생총회 소집을 선포했다. 그런데 염 총장이 학생총회 전날에 해외출장으로 출국하여 미래대학 설립안을 의결하는 교무위원회 직전에 귀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치닫게 된다. 이는 곧 학생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날치기로 설립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1월 24일, 분노한 학생들이 총장을 직접 대면하려고 본관에 갔지만 학교 측은 총장이 본관에 없다며 학생들을 문전박대하고 모든 문을 봉쇄했다. 분노한 학생 200여 명이 본관 앞에서 계속 항의하자, 건물에 몰래 숨어있던 총장이 “피교육자”들을 앞에 두고 옆문으로 줄행랑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불통과 졸속에 학생들은 급기야 본관 점거까지 돌입했다. 그리고 11월 28일에는 학생 2천여 명이 총회에 모여 모든 안건을 통과시키고 지속적인 투쟁을 결의했다. 특히 총회에서 박근혜 퇴진과 미래대학 철회 요구를 함께 내건 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마침내 12월 9일과 21일, 학생들은 두 차례의 교무위원회를 모두 무산시키며 총장으로부터 미래대학을 철회하겠다는 대답을 얻어냈고, 이후 학사운영제도 개편 백지화, 학사제도협의회 발족을 얻어내며 32일간의 점거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염 총장의 미래대학 설립안이 박근혜 정권의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이었다는 점에서, 고려대 투쟁의 승리는 고려대 학생들의 열정적 투쟁과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광장의 촛불투쟁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캠퍼스의 투쟁과 광장의 투쟁이 함께 박근혜 정권의 대학구조조정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제동의 첫 징후는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삭감 조치에서 나타났고,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박근혜 정권이 사실상 파산을 고하면서 대학에 가해지는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도 일시적으로 미약해졌다. 정국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고려대 당국도 당장의 사업추진은 보류한 셈이다. 그러나 염 총장이 “임기 중에는 재추진 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미래에는 다시 추진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게다가 고려대에서의 승리가 모든 대학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흥캠퍼스 반대 점거투쟁이 한창인 서울대에서는 학교 당국이 점거중인 본관 건물의 전기와 난방을 차단했으며, 점거중인 학생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동덕여대, 교통대 증평캠퍼스에서도 학과 통폐합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미지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대학 기업화 및 구조조정 궤도에 놓인 사업과 학내 민주주의 탄압에 저항하는 투쟁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새해 업무계획 보고에서 “대학구조개혁을 안정화 하기위해 ‘대학구조개혁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기업화와 박근혜 정권의 대학구조조정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박근혜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학령인구 감소, 노동시장 수요 공급 “미스매치”로 인한 청년실업 증가를 구실로 대학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특히 저출산의 영향으로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는 현재 양상을 심각한 상황으로 간주하며 대학 정원 감축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정부 통계에서는 현재 대학입학정원 56만 명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 10년 뒤에는 최소 약 8만 명, 14%만큼이 정원미달로 남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학은 자진해서 문을 닫거나 정원 감축 및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실대학 정원 감축 및 퇴출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가 2015년부터 실시되었다.

이 평가의 여파만으로 2015년에만 무려 287개 과가 없어졌다. 평가 지표에서 취업률과 학생 충원률이 중요해지면서, 각 대학 당국이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 피바람의 배경에는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황우여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인문학보다 취업이 더 중요하다면서 대학들로 하여금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압박했다. 교육부는 평가결과에 따라 A등급만 정원 감축을 자율적으로 실시하며, B등급 이하는 정원 감축을 강제로 실시하거나 최악의 경우 퇴출까지 감행할 것이라며 대학을 압박했다. 지속적인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정원감축을 모면해야 했던 대학은 정권의 기조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2016년에는 프라임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재정지원사업이 추진되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기업의 입맛에 맞는 산업예비군을 양성하기 위해 이공계 중심으로 학과구조를 개편하고 산학연계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연초부터 사립대학 총장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굳이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대학에서 자율적인 개편을 실시하도록 종용했다. 대학에서는 너도나도 선제 대응에 나섰다. 고려대의 미래대학 설립안만 살펴보더라도, 박근혜가 불어넣었던 입김—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융합 교육, 산업수요 맞춤 교육 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교육과 연구를 강화하고, 취업에 유리한 구조로 학과를 개편하는 대학 당국들의 노골적인 기업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따라서 박근혜식 대학구조조정의 골자는 이렇다. 양적으로는 대학 정원과 학교 수를 대폭 줄이면서도, 질적으로는 대학을 더욱 탄력적인 산업예비군 양성소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막에서 많은 대학들이 비민주적 학사행정이라는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사업을 강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학자본 입장에서는 돈벌이 규모가 걸린 일이니 절차적 하자를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감행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에 한 편의 대자보를 남기고 스스로 대학을 떠난 한 학생의 말처럼, 오늘날 대학을 포함한 교육기관들은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일 뿐이다. “피교육자”인 학생들이 스스로 투쟁해야만 지금 여기 기업화된 대학의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는 대학, 그리고 교육의 변화

고려대에서의 승리는 민중이 형성한 거대한 정치적 동력이 자연스럽게 다른 부문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이는 대학에서도 더 크고 강력한 투쟁을 위한 유리한 정세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캠퍼스 내에서 발생하는 당장의 민주주의 탄압과 기업화를 막아내기 위해 함께 싸우고 연대하면서, 대학구조조정을 포함하여 박근혜가 쥐고 있던 적폐들을 청산하는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손으로 어떠한 변화를 일구어내느냐는 바로 우리 스스로의 상상력과 실천에 달려있다.

대학을 포함한 오늘날의 교육 자체는 이 사회의 지배질서와 계급을 유지 및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육은 장차 노동자가 될 학생들을 ‘개돼지화’하는 것도 모자라, 성적과 학벌로 서열을 매기고 그 사이에서 죽음을 넘나드는 경쟁을 조장한다. 성적과 학벌을 얻기 위한 경쟁에는 높은 교육비가 뒤따르며, 그 비용은 대부분 개인에게 전가된다.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라는 환상은 점점 벗겨지고 있지만, 눈앞에 닥친 실업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상품화된 교육과 졸업장에 목매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교육의 수혜를 받는 대상은 교육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는 가진 자들과, 교육비 수탈로 이윤을 얻는 입시학원과 사학자본, 그리고 이 체제의 질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국가와 자본뿐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성격과 체계 자체가 뒤바뀌지 않는 한 사학자본의 횡포와 교육의 폐단은 제거될 수 없다. 2011년 칠레에서 학생들이 “우리의 미래는 팔기 위한 것이 아니다(our future is not for sale)”라는 구호와 함께 투쟁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단순히 교육의 상품화와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하는 움직임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육을 사회적 권리로 만들기 위해 그들은 체제가 운영되는 방식 자체를 뒤엎고자 했다. 무상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광산 국유화 및 대대적인 조세개혁을 외치는 동시에, 이러한 요구를 단순히 정부에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스스로가 실행할 수 있도록 반동적 관료들을 끌어내리고 정당을 점거하는 행동을 벌였다.

칠레 학생들은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적 부가 상품화되고 자신의 처지조차 임금노동자라는 상품으로 귀결되는 현실에 반대하며 교육 문제를 넘어 국가와 제도, 그리고 그것들을 지탱하는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실천은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던 카밀라 바예호의 말처럼 “우리는 현 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변화를 원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터져나오는 “새누리당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같은 구호들은 우리에게도 “완전한 변화”를 향한 의식이 잠재되어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퇴진 투쟁 또한 노동자 민중이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기 위해 나서는 움직임의 출발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 오늘날의 야만을 야기한 정치구조와 체제자체를 변화시키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가고 있다. 대학에서 연이은 투쟁의 승리는 지금 이 시기가 바로 그러한 변화의 적기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제는 우리의 삶과 일상적 처지로부터, 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말하고 실천하자. “피교육자”들에게 그 시작은 교육기관을 손에 쥐는 것이며, 상업화된 교육을 누구나 누리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권리로 되돌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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