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여성해방론 독서모임 후기: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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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편집자 설명] 우리 매체에서는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1일까지 약 4주간 “사회주의 여성해방론 책 독서모임”을 진행하였다. 독서모임에는 코로나 유행인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분들이 참여하여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독서모임에 직접 참여한 분이 이번 독서모임에서 느낀 점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의의를 직접 이야기하는 후기를 준비했다. 글을 기고해준 신주은 동지에게 감사의 말씀 드린다. 

청년 사회주의자 모임에 가입한 이후로 여러 스터디에 참여했지만 여성해방론은 여태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청년×사회주의> 포럼을 준비하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 떨어져서 여성해방론 책모임에 참여했다. 나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은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문구가 익숙했던 사람이라서 페미니즘이 아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라는 문구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오세라비의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처럼 안티페미적이고 반동적인 활동으로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진 않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크게 공감했고, 우리나라 여성억압과 차별에 대해 20대 여성으로서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익숙했다. 그리고 SNS에서 페미니즘 영상이나 글을 보고 공감하고, 낙태죄 폐지시위에도 참여했었다. 물론 페미니즘에도 의문점은 있었다. 여성에 대한 외모 압박이나 불법촬영, 유리천장, 성별임금격차 등 여성 억압의 현상을 이야기 하는 콘텐츠는 많이 접했는데 이 억압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시원하게 밝혀주지 못했다. 현상 자체는 매우 공감이 가는데 원인 부분에서는 오직 남자 때문이라거나 사람들이 여성억압적인 것을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많아서 공감하기에도, 실천하기에도 조금은 버거웠다.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 법제도 정비, 남자 잃기, 탈코르셋하기, 열심히 노력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부자되기 등 조금 괜찮아질 것 같긴 한데 뭔가 ‘이렇게 한다고 모든 여성이 해방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생기는 것들이었다.

공부할 책 제목이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인데, ‘페미니즘이 여성해방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해방이 페미니즘과 동의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목부터가 내가 아는 거랑 달랐다. 책 제목에서 주제를 나타낼 텐데, ‘이 책은 여성해방과 페미니즘을 다르게 보는구나, 어떻게 다른 걸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해 답해줄 수 있을까?’ 등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책을 읽었다. 그렇게 4주간 책모임 동지들과 발제도 하고 토론도 하며 재미있게 한 권을 다 읽어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여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그리고 내용에 크게 공감했으며 이제 나도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여성억압의 기원을 밝혀주는 부분이었고, 둘째는 자본주의와 여성억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이었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여성억압의 기원을 역사유물론적으로 밝혀주었다. 역사유물론은 인간 사회의 발전이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의 변천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부분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존에 접했던 여성해방과 관련된 내용들은 여성억압이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내가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주었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 따르면 여성억압은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생산관계가 달라지면서 생겼다. 수렵채집사회에서도 성별에 따른 노동분업이 있었지만, 여성억압적이지 않았다. 평균적인 신체적 차이로 인해 여성은 주로 괭이와 뒤지개로 채집을 담당했고, 남성은 수렵을 담당했다. 이 당시 여성들은 공동체에서 남성과 동등한 발언권을 가졌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채집한 식물성 식량이 주된 식량이었고, 남성들의 수렵으로 얻은 고기는 보충적인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력의 발전으로 중농업 사회가 되면서 괭이와 뒤지개 같은 농기구보다 신체적 근력을 필요로 하는 쟁기 같은 농기구를 쓰거나 가축을 이용하는 등 농업 기법의 전환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노동은 주된 노동이 아니라 부차적인 노동으로 변했고, 점차 정착생활을 하면서 유랑생활을 할 때와 달리 출산을 제한할 필요가 없게 되어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임신 상태로, 혹은 수유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런 식의 성별 노동분업이 진행되면서 남성의 노동이 여성의 노동보다 중요해지게 되고, 그에 따라 여성에게 억압적인 것이 되었다. 신체적 차이로 인한 성별 분업 그 자체는 여성억압의 요인이 아니었지만, 생산이 발전하여 중농업 사회로 접어들자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이 여성억압적으로 변한 것에 여성억압의 근원이 있었다. 이렇게 여성억압과 계급억압이 같은 시기에 출현했음을 명확하게 밝혀주었다.

자본주의와 여성억압의 연결고리도 설명해주었다.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켜 여남의 근력차이가 무의미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여성해방의 물적토대를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억압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리듬과 연결지어 설명해주었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 노동자가 기계의 리듬에 맞춰 노동하기 때문에 여성노동자가 출산, 수유, 생리 등의 이유로 쉬어야 할 때에는 이를 대체하여 중단 없이 일할 수 있는 남성을 쓰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여성들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남성에 비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 되고, 이는 각종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주에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 입장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입장 사이에서 있었던 지면 논쟁을 읽고 『변혁정치』의 「계급 환원론을 넘어서」를 논평하는 쪽글을 써가는 활동을 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을 실제로 읽어보니 왜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아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외쳐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는 계급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독자적인 여성억압의 체계인 가부장제가 있고,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여성억압이 실행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무엇이며, 자본주의와 어떻게 결탁해서 여성억압을 실행하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그리고 계급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여성억압이 있는지 동의하기에 힘들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입장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여성억압의 기원과 여성억압과 계급억압의 관계, 그리고 자본주의와의 연결고리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밝혀냈다.

『변혁정치』의 글에서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계급환원론이며 페미니즘에 선 긋고 무책임하게 계급만 없애면 여성해방세상이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서도 무책임하게 곧바로 여성해방이 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사회주의를 이루고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해 이루어야할 과제도 제시한다. 총 네 가지 과제가 있다.

  •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보장하여야 한다
  •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며, 개별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가사노동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분담하도록 한다.
  • 사회가 임신 출산 가능성을 가진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를 막거나 불평등하게 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없애기 위한 문화혁명을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페미니즘에서도 제시하는 해결방안이지만 사회주의 하에서는 더 유리하게 적용된다. 사회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철폐되고 생산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서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직접 생산과정을 통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의 리듬, 자본주의 리듬을 따라가기 위해 임신출산가능성으로 여성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이유가 없고, 대중문화 등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성역할 고정관념 등은 민주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사진: 사회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에서는 계급해방을 이루고 나서 ‘나중에’ 여성해방 하자는 게 아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나 웹하드 카르텔 규탄,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를 규탄하는 등의 실천을 나중에 하자는 게 아니다. 실천을 하되 이론을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명쾌한 이론을 기반으로 여성해방을 외치는 것이 공감하기에도 실천하기에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을 하다 의심이 들면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허탈감이 오는 것이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하는 물음으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명확한 이론이 기반이 되어야한다.

4주간 책모임을 하며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단순히 ‘안티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고, 확실하고 시원한 이론을 통해 내가 기존 페미니즘에 갖고 있던 의문들을 잘 해결해주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모든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필요하고 결국엔 계급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모임을 할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은 이 좋은 걸 왜 사람들이 모르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좋은 게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주의자로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그 사람들에게 같이 외치자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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