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생태론 강좌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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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에서는 지난 11월 20일부터 3주간 ‘사회주의 생태론 강좌’를 진행했다. 이번 강좌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사회주의 생태론의 기본 이론과 최근 가장 심각한 생태문제인 기후위기의 원인 진단, 노동자가 중심이 된 기후운동의 필요성 등의 주제를 다루고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만들어 갈 것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사회주의 생태론을 설명하고 사회주의 생태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중 강좌가 처음으로 시도되었다는 데에 이번 강좌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시도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이번 강좌를 수강한 분의 후기를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 당부드린다. 

나는 사회에 불만투성이인 사람들이 공부할만한 학문인 사회학 책을 평소에 즐겨 읽었다. 사회학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사회의 문제들을 더욱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랑 대화도 하고 같이 행동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가입해 계정들을 둘러보는 중 굉장히 사회비판적인 글들이 있는 계정들 중에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며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가 뭔지도 몰랐는데 굉장히 진보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사람들이 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사회주의 생태론 강좌 수강 신청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그런 강좌를 하는 단체가 많이 없었는데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 지 들어보고 싶었다. 심지어 나의 관심분야인 환경에 관련된 것이라니. 바로 신청했다.

첫 강의: “사회주의 생태론은 무엇인가?”

첫 강의에서는 맑스주의 생태론의 역사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맑스주의는 1960-70년대까지는 반생태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제임스 오코너는 2차 모순론을 내세웠지만 여러 한계가 있었다. 1999년 존 벨라니 포스터와 폴 버킷이 오코너의 한계를 넘어선 맑스주의 생태학 책을 출간하여 맑스주의만으로도 충분히 생태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후 생태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 및 계급문제와 통일시켜 바라보는 관점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맑스주의 생태론은 ‘유물론’에 기반을 둔 사상이다. 맑스는 ‘변증법적 방법론’과 그것을 역사에 적용시킨 ‘역사 유물론’을 발전시켰다. 역사 유물론은 인간을 자연속의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의 역사도 자연의 운동처럼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인간의 특수한 활동으로서 노동을 강조한다. 맑스는 노동을 통해 외부 자연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인간 본성도 변화한다고 하여, 인간과 자연은 서로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맑스는 노동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이며 그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물질대사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이러한 물질대사 과정인 노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느냐에 따라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가 결정된다고 했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노동형태인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생산 방식 때문에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의에서는 생태위기를 물질대사의 균열로 설명했다. 일례로 19세기 자본주의 농업에서 일어난 물질대사의 균열은 지력을 고갈시켰고 농민들은 약탈적인 방법으로 비료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로의 발전으로 인하여 도시와 농촌이 극단적으로 분리됨에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순환하는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강의 내용도 있었다. 이 부분의 설명을 들을 때 예전에 시골에서 인분으로 비료를 주었던 이야기를 강사님께서 해주셔서 비위가 상했지만 그만큼 인상 깊었다.

자본주의 농업이 물질대사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단기적 이윤만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자의 착취는 더욱더 심해지며 자연 또한 무제한으로 남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가 철폐되어야 물질대사의 균열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강의: “기후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다”

두 번째 강의는 내가 가장 기대하던 수업이다. 강의의 제목이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다’였는데 1강 내용을 듣고 복습을 하고 나니 그 내용을 빨리 들어보고 싶었다. 강의는 ‘기후위기’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시작하였다. 기후변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후가 변하는 것이다. 인간 때문이든 자연적 변동 때문이든 기후가 변화하는 것 자체를 기후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인간이 야기한 것이고, 기후 위기는 이러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담기위해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IPCC 보고서에서 인간 활동이 기온상승의 절반 이상을 야기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가장 놀랐던 사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1%가 전세계 100개 기업(대부분 에너지 기업)이 배출 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개인적 실천을 나름대로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었으며,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원인 중 육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앞서 말한 통계를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에서 화석연료가 주동력으로 쓰이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배웠다. 점점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더 큰 동력기가 필요했고, 이러한 요구 속에서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복동식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부터 화석연료가 주 동력원으로 쓰이게 된다. 이 화석원료는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현재까지도 주 동력원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를 압도적으로 배출하여 우리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맞이하게 된 원인이다. 어릴 때 어린이 박물관에서 증기기관차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그것을 굉장한 업적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인 화석연료 사용의 시초라니 흥미로웠다.

기후위기는 자본가 계급의 책임이라는 여러 통계자료들도 확인 할 수 있었다. 가장 부유한 1%가 하위 10%의 175배나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통계와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의 배출에서 에너지와 산업공정의 배출비율이 94.5%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기후위기의 책임은 자본가들에게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기후위기는 가난할수록 큰 타격을 입힌다. 그런데 전기를 아끼기 위해 내복을 껴입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며 한파나 폭염을 난다는 사례들이 미담인양 선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날씨 때문에 목숨이 위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개인의 탓이 되어 버린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세상을 그래도 본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했었는데 더욱 더 본질적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자본주의, 자본가에게 있다는 것,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통계들이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존의 대안들은 보통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파리협약의 경우에도 결국은, 또 다른 이윤을 창출하기 위할 뿐 있으나 마나 한 규제(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포집기술)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문재인이 제시한 그린뉴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자본가 계급에게 이 기후위기의 해결을 맡기는 현실 때문이고,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한 기후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수업의 내용이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제는 본질적인 문제를 들춰 낼 때가 되었다. 허울만 좋은 친자본적인 해결책들이 아니라, 노동자가 중심에 서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말이다. 사회주의 생태운동이 꼭 필요해 보인다.

세 번째 강의: “기후위기 대응, 노동자가 중심에 서야 한다”

세 번째 강의는 ‘기후 대응, 노동자가 중심에 서야 한다’는 주제로 기후위기 대응의 역사부터 살펴보았다. 80년대 말~90년대까지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충분한 시기였지만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던 시기라,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폭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선한 의지와 지배계급에게 기후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09년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에서도 아무런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자,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 운동은 이제 성년이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기존의 자본가나 지배계급의 선한 의지에 기대는 식으로 환경문제를 해결 할 수 없고 이제 우리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레타 툰베리 역시 이러한 메시지가 담긴 연설을 수차례 해왔다.

노동과 환경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환경운동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내용도 볼 수 있었다. 노동자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배제된 환경운동은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가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는 결론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린뉴딜의 역사와 그 내용을 검토하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발전’(미래세대가 욕구를 충족하기에 충분하게 자원을 아껴 쓰자는 것)은 주류화 되어 녹색 경제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환경과 성장이 양립가능하다는 개념이었으며,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그린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이후 급진적 그린뉴딜이 제기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장과 환경을 다 잡겠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성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가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것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취약계층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존 계급질서는 그대로 둔 채 노동자나 취약계층들의 목소리도 반영해달라는 식의 호소 밖에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철폐 해야지만 환경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한시가 급한 지금,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본격적으로 확산해 가야 할 것이다.

마치며

사실 나는 이러한 내용을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 듣게 되어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살짝 강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복습으로 교재를 자세하게 읽어보면서 서서히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신청을 한 것인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고, 사회학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들이 속 시원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회학은 피상적으로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면(예를 들면 사회학에서는 개개인들이 차별적인 언행을 하는 것을 멈추고, 잘못된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해결책이어서 상당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맑스주의는 그런 사회문제들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명확히 밝혀주어서 속 시원함을 느꼈다. 또한 내가 개인적 차원에서 하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상당히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도 느꼈다.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환경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으로 환경이 걱정된다면 사회주의 생태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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