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낙태죄’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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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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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73년,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모자보건법이 제정됨에 따라 의학적 사유가 있을 경우 인공임신중절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법 문언만 보면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자보건법은 “가족계획사업의 핵심에 속하는 낙태시술의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법률”(이인영 (2010), 「출산정책과 낙태규제법의 이념과 현실」, 『페미니즘연구』, 10(1), 35-87)이었다. 8주 이내 임신중절을 가능하게 하는 월경조절술(M.R.Kit)이 도입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저런 차 안이나 보건소에서 불임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40여 년이 지난 2016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개정하여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시술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면허정지 최대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하겠다고 예고하였다. 과거에는 그토록 집요하게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지 말라고, 임신중절이라도 하라고 ‘계몽’해 놓고 이제 와서 임신중절에 ‘비도덕적’이라는 낙인을 찍는 국가는 정작 스스로의 ‘비도덕’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보인다.

임신중절 시술시 자궁 속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 초음파 영상을 보여준다는 ‘낙태 반대’ 다큐멘터리 「침묵의 절규」가 사실상 조작되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이루어져 왔고, 24주 이전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영국에서 이미 나온 상황에서 ‘낙태는 살인이다’를 외치는 우파들도 막무가내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싸게 먹히는’ 출산율 제고 정책을 원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을 더욱 괴롭혀 가며 임신중절수술을 처벌하려고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처벌 강화 흐름은 ‘저출산 정책’의 일환이다. 2005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진행했고 영부인과 여성부 장관, 통일부 장관이 참석한 제41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저출산이 ‘퇴폐적 상황’이며, “결혼은 선택이 될 수 없고 출산은 여성의 창조적 의무”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2010년에는 프로라이프의사회가 임신중절 시술 병원 3곳을 고발하자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임신중절 시술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낙태 고발 정국’이 조성되어 시술비가 폭등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여성들을 압박했는데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작년 기준 1.24명(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5월 대한민국의 신생아, 혼인 건수는 통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8월에 정부는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을 달성하기 위해 내년에 최소 2만명 이상 추가 출생이 필요하다며 ‘출생아 2만명+α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 역시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 브릿지 플랜 2020 수립’ 보도자료 35쪽에서 임신중절비율을 감소시키고 임신유지율을 높이겠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는 지금 수준의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지고 부양을 받아야 하는 노인만 가득할 것이라는 ‘저출산 고령사회’ 담론을 유포하며 사람들을 협박한다. 그렇지만 국가가 걱정하는 것은 노동력 공급의 절대적 부족이 아니다. 사실 지금의 심각한 청년 실업을 고려하면 오히려 ‘저출산’이 유지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본가계급의 입장은 다르다. 자본가계급은 실업자 집단 즉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유지되어 경기가 팽창할 때는 그들을 노동인구로 ‘유연하게’ 빨아들이고, 수축할 때는 다시 해고하여 ‘유연하게’ 뱉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의 출산율 수준으로는 산업예비군의 규모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국가는 출산율 제고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민중에게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고 기를 만한 환경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생산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여성 노동자의 안정적인 임신 및 출산과 양립하기 어렵다. 여전히 너무나 많은 사업장에서 유급 육아휴직은 말도 꺼내기 힘든 사치일 뿐이고, 국공립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여 비싼 민간 어린이집에라도 아이를 보내기 위해서는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현재의 ‘저출산’ 현상을 초래하는 이러한 상황들 중 어떤 것도, 세금의 형태로든 임금의 형태로든 자본가계급이 벌어들이는 이윤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애초에 자본가계급이 출산율을 제고하고자 하는 동기 자체가 이윤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세계적 경제 공황 하에서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미래를 위해 통 크게 이윤을 양보할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국가와 자본가계급이 선택한 것이 바로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해에만 16만 8738건의 임신중절수술이 진행되었고 그 중 69%가 허가받지 않은 채 진행됐다고 한다. 양현아 교수의 연구 「여성 낙태권의 필요성과 그 함의」(『한국여성학』 제21권 1호, 2005)와 「낙태죄 헌법소원과 여성의 “목소리” [1]-낙태경험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한양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 30권, 1호, 2013)에 따르면 임신중절수술을 경험한 미혼 여성의 93.7%가 ‘미성년자 혹은 혼인상의 문제’를, 기혼여성의 상당수가 사회적, 경제적인 여건(‘더 이상 자녀를 원치 않아서’ 70.7%, ‘경제적 어려움’ 17.5%)을 시술이유로 밝혔다. 한국에서 다수의 여성 민중에게 임신중절은 스스로의 생존조차 불확실한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선택 아닌 선택이다. 이조차도 형사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게 여성들의 처지이다. 그러나 여성의 건강과 존엄성이 어떻게 되든 자본주의 국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국가는 ‘싸게 먹히는’, 즉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건드리지 않는 출산율 대책을 원한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을 낙인찍는 성적 이중기준

누가 봐도 생명 존중과도, 도덕과도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런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본가계급과 국가는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여성들을 ‘문란하다’고 낙인찍고, 죄책감을 부추긴다. 그리고 그렇게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며 여성과 남성 간 권력 차이를 더욱 강화한다.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를 정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여성이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형법 제269조(낙태)와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는 임부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약종상에 대한 처벌만 규정하고 있다. 최현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에 따르면 “낙태하고자 하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할 수 없다고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일 남성 파트너를 찾아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구걸하거나 다른 남성에게 그 역할의 대행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남성이 같이 임신중절을 결정해 놓고, 나중에 여성 파트너를 형법상 낙태죄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고발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혼자 고통을 감내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남성처럼 섹슈얼리티를 향유하는 주체로 나서면 ‘문란하다’고 낙인찍는 성차별적 문화 역시 억압받는 여성들을 침묵시켜 왔다.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SNS에서 용기 있게 공론화하여 화제가 된 홍승은 씨는 공론화에 대한 반응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문란하다’와 ‘불쌍하다’는 반응이었다. ‘문란하다’는 쪽은 ‘여성은 몸 관리 잘하자’ ‘역시 혼전순결이 답이야’라는 식이었다. 몸의 향락 때문에 생명을 죽여서야 되겠느냐는 얘기였다”고 한겨레21이 주최한 좌담회에서 밝혔다. 함께 성관계를 한 상대 남성의 책임은 사라지고 여성만 ‘몸의 향락’을 즐긴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난받는 성적 이중기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 액션그룹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위원 이지원 씨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이제까지 임신중지권을 주장해 온 여성들이 ‘낙태충’ ‘창녀’라는 모욕까지 듣는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출처: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이와 같은 낙인과 억압 속에서 여성들이 계속 침묵했다면, 임신중지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성차별적 섹슈얼리티 문화, 성적 이중기준은 폭로되지 못했을 것이다.

‘검은 시위’로 침묵을 깨고 일어선 여성들

하지만 여성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10월에 서울 보신각, 광화문은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로 뒤덮였다. 그들은 ‘나의 자궁은 나의 것’ ‘난 미래의 자궁이 아니야’ 같은 구호들을 외치며 행진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문란함’이 문제라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진짜 문제는 ‘낙태죄'”라고 외쳤다.

한 여성은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한 선택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한 결정 때문에 국가에 의해, 법에 의해 처벌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점자 안내가 되어 있지 않은 임신 테스트기로는 임신 여부를 알 수 없어 누군가에게 임신 확인을 부탁해야 했던 시각장애여성, 성폭력 피해로 인한 임신에도 낙태할 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지적장애여성, 깔창 생리대를 만든 빈곤한 십대 여성들, 이성애 정상가족 중심의 출산, 입양, 양육 정책에서 차별받았던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했다. 스스로의 임신 경험을 말하며 “당신들이 말하는 비도덕적인 의료행위는 나의 삶이고 모두의 꿈과 웃음입니다. 나는 여기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외친 여성도 있었다(출처: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결국 11월 11일, 보건복지부는 입법예고했던 개정안을 백지화했다. 하지만 거리에 나왔던 여성들은 더 나아가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를 목표로 더 끈질긴 투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14일 ‘성과 재생산 포럼’에서는 “다시 말하지만, 여전히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 우리는 이미 공언한 대로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위해 나설 것이다”라고 결의하는 논평을 냈다.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는 이 투쟁이 처음에는 여성들 개개인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요구로 출발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성으로 하여금 자기 자궁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권력의 본질은 앞에서 보았듯이, 노동자민중이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허락하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투쟁은 이미 여성들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요구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타격하는 방향으로 확대, 심화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공공보육 시설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늘리고, 남성 노동자든 여성 노동자든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양육과 직업활동을 병행할 수 있어야 여성의 임신출산결정권도 비로소 온전히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 투쟁이 이렇게 노동자민중 전체의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남성 노동자민중이 이 투쟁을 선도적으로 펼쳐 온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이 받았던 억압에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임신중절 문제와 관련하여 여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켜 온 성차별적 섹슈얼리티 문화 속에서 남성이 가해자 집단이었음을 확인하고, 자신도 남성이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여성 파트너가 피임을 요구할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는지, 임신중절을 한 여성들을 쉽게 비난하는 문화에 동조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임신중지권 문제를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고, 여성들의 용기에 화답해야 한다.

10월 초 폴란드에서 임신중절수술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려 하자, 사회주의 단체 ‘노동자민주주의’와 전국노동조합동맹(OPZZ) 등은 이 문제를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고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법안은 결국 폐기되었고, 폴란드에서의 승리는 한국 여성들의 투쟁을 고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도 여성 그리고 남성 노동자들이 “진짜 문제는 ‘낙태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자본주의 국가다”라고 외치면서 함께 투쟁할 때 비로소 온전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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