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접근법

0
1094
[사진: https://pixabay.com/en/the-national-assembly-yeouido-2094112/]

촛불집회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부르주아정치세력들이 주도하는 개헌논의가 지배계급내 권력 배분 논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논의에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들러리로 참여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촛불집회 이후 민중이 과거와 달리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내걸기 시작하면서 변화된 계급 역관계를 배경으로 개헌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1. 촛불집회가 없었고 민중이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개헌논의는 지배계급주도의 권력 배분 논의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개헌논의는 대부분 역사적으로 지배계급 주도의 권력 배분 논의를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집회 전에 개헌을 둘러싸고 벌어진 설왕설래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변화된 사회현실을 반영하여 기본권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 주장도 개헌논의의 본질을 치장하는 명분이었을 뿐이며 부르주아정치인들의 본심은 권력 배분 논의에 있었다. 이 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인물이 지금 탄핵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박근혜였다.

박근혜는 2014년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워낙 큰 이슈이기 때문에 한 번 (논의가)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할 것을 못한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가 궤도에 오르게 해야 되는 시점에 여기에 빨려들면 (경제 회복) 불씨도 꺼지고, 경제 회복은 어려울 거다.”라고 하며 개헌논의에 반대하였다. 그러던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리자 2016년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폭로 몇 시간 전에, 갑자기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근혜는 이날 국회에서의 시정연설에서 “1987년 때와 같이 개헌 국민적 공감대 형성됐다. 국민 여망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겠다”, “제 임기 동안에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바로 서게 할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 내 개헌조직 설치하고, 국회도 개헌특위를 구성해달라”고 태도를 돌변했다. 전형적으로 정세의 반전을 위해 개헌논의를 활용하는 꼼수였다.

한참 촛불집회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에도 개헌논의는 수구세력의 주요한 책략이었다. 수구세력은 박근혜의 탄핵을 회피하기 위해 ‘개헌을 통한 박근혜의 임기단축’이라는 꼼수를 들고 나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당 회의에서 “개헌이 답이다. 이 어려움을 풀 수 있는 해답 역시 헌법 개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며 “국민적 동의를 토대로 새 헌법을 만든 뒤 그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의 임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190여명 여야 의원들이 소속된 국회 개헌추진 모임의 새누리당 간사 권성동 의원은 “개헌의 최적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6. 11. 19. 기사)

개헌논의는 박근혜의 탄핵 이후에는 이른바 비문연대의 매개고리가 되었다. ‘개헌연대’에는 수구세력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세력 일부도 참여하였다.

3월 15일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교섭단체 3당은 5월 9일 대통령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치르기로 합의했다. (세계일보 2017. 3. 21. 기사)

이처럼 부르주아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개헌논의는 철저히 권력 배분 논의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촛불집회 이전에는 개헌논의에 사회주의, 진보세력, 민중이 참여하는 것은 부르주아정치인들 사이의 권력놀음에 들러리서는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폭로하는 것이 올바른 방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은 새로운 역사를 연 촛불집회와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기한 요구들이었다.

2. 촛불집회와 민중의 부분적 승리로 계급역관계가 일부 변하였다.

촛불집회로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수구정치세력은 급속하게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있다. 비록 자유한국당의 의석수가 현재 116석이지만 실제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가져온 가장 커다란 변화는 민중들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이전과 달리 능동적으로 되어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민중은 투쟁이 고양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가 현실에서 관철되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민중들은 박근혜의 퇴진뿐만 아니라 철저한 적폐의 청산을 요구하고 악화일로의 삶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촛불집회 이전과 비교하여 계급역관계가 민중들에게 유리하게 일부 변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역관계의 변화를 반영하여 개헌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 촛불집회 이전 시기까지의 개헌논의는 지배계급들이 주도하고 민중들은 배제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태에 변화를 줄 민중의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촛불집회는 민중의 힘과 발언권을 높여내어 지배계급이 개헌논의를 독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기한 요구들을 배제하고 지배계급이 자기들의 구미에만 맞게 개헌논의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배계급은 현재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역관계의 변화가 개헌논의에 사회주의, 진보세력, 민중이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개헌문제에 대해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3. 개헌문제에 대해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1) 개헌문제에 대해 개입하기 전에 먼저 개헌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한국사회의 기본 운영원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본 운영원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운영원리로서 자본주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헌법을 개정하여 좋은 문구를 넣는다고 해서 현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개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먼저 인식하여야 하고 개헌을 통해 커다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품게 하는 방식으로 개헌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개헌문제에 개입해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좋은 문구를 넣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것이다.

2) 개헌 과정을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출한 요구를 더욱더 분명한 형태로 부각시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 자본가 세력을 폭로하는 계기로 활용한다.

촛불집회는 1년 전이라면 거의 공상적이라고 평가될 정도의 요구를 대중적인 요구로 만들어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환제이다. 민중들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고 투쟁하면서 결국 박근혜의 탄핵을 끌어내고 박근혜를 구속시켜 처벌을 기다리는 처지에 빠지게 만들었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투쟁에서 승리한 민중들은 선출된 자라도 잘못하면 언제라도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집단적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중들은 국회의원 소환제에 대해 절대 다수가 찬성이다. 3월 6일~7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85.5%가 찬성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를 개헌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민중이 직접 소환, 파면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도 요구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사드 배치 등 주요 현안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도입과 절차의 간소화도 요구해야 한다. 국민발안제도 그렇다.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에 가장 소극적인 세력은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다. 국회개헌특위는 절대다수의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최근 들어 여론을 의식하여 국회 입법 조사처는 14일 발행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국민소환제 도입’을 헌법개정 논의사항 주요 쟁점으로 꼽았지만, 이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국회개헌특위가 기초소위원회에서 개헌내용을 조문화하는 과정, 국회에서 의결하는 과정에서 소환제의 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다(국회에서 의결되기 위해서는 2/3의 찬성이 필요한데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원들이 쉽게 부결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본색을 폭로하여야 한다.

[사진: 사회주의자]

소환제 도입과 똑같이 노동권 확대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한다. 노동권확대를, 요구를 더욱더 분명한 형태로 부각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폭로한다는 관점에서 요구한다. 지난 16일 열린 ‘노동헌법 개헌 국회토론회’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항을 헌법에 도입하지고 제안했다. 노동법에서 인정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고용안정정책’을 국가가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사용 사유제한’을 헌법에 명시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도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여 비정규직 문제, 정리해고의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이의 도입을 결사적으로 반대할 자본가세력을 폭로하고 대립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노동권 확대를 요구하면서 경계해야 할 점은 노동권을 확대한다고 노동이사제, 경영참여 등의 개량주의적 요구를 제기하여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덧붙이면 이러한 관점에서 요구를 제출하고 투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최대치의 성과를 쟁취하는 데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 될 것이다.

3) 민중이 직접 요구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글의 앞부분에서 언급하였듯이 촛불집회 이전과 촛불집회 중에 부르주아정치인들의 개헌논의는 자신들 사이의 권력 배분 논의에 집중되었다. 이 점은 촛불집회의 결과 계급 역관계가 부분적으로 변화된 현재에도 여전히 그렇다. 이들은 여기에 집중하면서 이를 치장하기 위해서 촛불집회에서 제출된 요구의 일부를 수용할 것이다. 그리고 현행 개헌과정은 반드시 국회의 의결을 거치게 되어 있어 이 과정에서 민중의 핵심적 요구는 누락되거나 왜곡되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직접 요구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가 탄핵되었지만, 실제로 박근혜의 탄핵을 끌어낸 것은 헌법재판관의 판단이 아니라 민중의 박근혜 퇴진 요구였다. 같은 원리로 개헌투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주체로 나서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개헌투쟁은 이후 노동악법철폐, 노동법개정투쟁 등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맺으며

촛불집회에서 민중들이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전까지 개헌논의는 지배계급 내의 권력 배분 논의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이런 논의에 사회주의, 진보세력, 민중이 참여하여 이들의 들러리를 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여기에 변화를 가져왔다. 촛불집회로 민중들의 계급역관계가 부분적으로 유리하게 변화되어 민중들이 자신의 관점을 갖고 개헌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현실 변화를 반영하여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개헌 과정을,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출한 요구를 더욱더 분명한 형태로 부각시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 자본가세력을 폭로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개헌투쟁을 통해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출한 요구를 더욱더 분명하고 의식적인 형태로 부각시키자!

개헌투쟁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세력, 자본가세력을 적극적으로 폭로하자!

개헌투쟁을 노동악법 철폐, 노동법 개정 투쟁 등 향후 전개할 계급투쟁으로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가자!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