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소확행’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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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YTN 뉴스 캡쳐]

나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자 카페에 간다. 어느 날, 매일같이 들리던 카페 메뉴판 한켠에 ‘커피 한 잔의 여유, 소확행을 선물하세요.’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후 점차 소셜 미디어와 거리의 광고판에도 ‘퇴근 후 떠나는 소확행 여행’, ‘직장인을 위한 소확행 가이드’ 따위의 홍보 문구가 우후죽순처럼 내걸렸다. 대체 ‘소확행’이 뭐길래 이토록 유행하는 것일까?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누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검색 결과 ‘소확행’을 주제로 작성된 기사만 16만 건 이상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확행’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관광·외식·문화 등 각종 컨텐츠와 광고에 활용되고 있다. ‘맛집 탐방’, ‘혼술 하기’, ‘셀프 인테리어’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문화현상들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거나, 작지만 소소한 제품들을 구입하여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만족하는 식으로 ‘소확행’을 즐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소확행’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청년실업이 악화일로를 걷는 마당에,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에게 ‘소확행’은 현실을 은폐하는 도구이자 그자체로 기만일 뿐이다.

유행어의 기만성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행어를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행어 트렌드는 꽤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왔다. 2000년대 ‘웰빙’부터 2010년대 초에 ‘힐링’ 열풍까지. 그런데 2017년 들어서는 ‘욜로(You Only Live Once)’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요컨대 한번 사는 인생이니 남 눈치 보지 말고 즐길 것 다 즐기자는 말이다. 이러한 ‘욜로’의 열기는 작금의 ‘소확행’과 다를 바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일명 ‘욜로족’ 마케팅을 펼쳤고, 연일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 역시도 한때의 유행어 프레임이었다. 점차 ‘욜로 찾다 골로 간다’, ‘병든 욜로’와 같은 비판적인 시선이 늘어갔다. 예견된 일이었다. ‘욜로’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1000원의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며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청년이 어떻게 ‘욜로’를 한 단 말인가?

월급의 절반을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은 돈의 절반은 월세로 나가는 현실이다. ‘욜로’ 열풍이 시들어가자 2018년에는 이른바 ‘소확행’이 등장했다. ‘소확행’은 마치 ‘욜로’ 열풍의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확실한 행복’ 앞에 ‘소소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거기다 지금 당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에게서 행복을 느끼자며 삶의 태도까지 설파한다. 이렇듯 ‘소확행’으로 규정된 행복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잠깐의 즐거움으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은폐하는 ‘소확행’의 이면

이렇게 유행하는 신조어들은 오늘날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과 자본주의의 본질을 교묘히 감춰버린다. 때문에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보다는 소비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소확행’이란 불평등한 계급사회에서 기인한 문제점들로 고통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신을 속이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조사 결과는 ‘소확행’이 결국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행복 키워드’ 조사에서 응답자의 10명 중 7명 이상이 ‘소확행에 공감한다’(75.1%)고 답했다. 그 이유로 ‘가끔 오는 큰 행복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만족감이 더 크고’,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행복감을 얻어서’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소확행에 공감한다’는 응답자의 82%가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취업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58.5%)’와 ‘생활비 마련이 어려워서(32.3%)’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가 조사한 통계와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8년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자는 125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12만 명이 급증했으며, 이 중 15~29세 청년 실업자는 50만 7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 8000명 늘어났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명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라고 불리는 청년의 주거빈곤 문제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가고 있다. 서울의 1인 거주 20~34세 청년가구 가운데 주거빈곤가구의 비율은 무려 40%를 육박한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이처럼 청년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주거환경과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실업난 등은 모두 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그 자체의 모순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소확행’과 ‘욜로’ 같은 유행어 트렌드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또한 자본은 미디어와 결탁하여 광고와 기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이러한 유행어들을 상업적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착취하고 기만하는 ‘자본’은 그 형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온갖 메이커와 브랜드, 근사한 맛집, 예쁜 인테리어를 한 술집 등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동시에 ‘자본’은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까지도 통제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노동력을 팔고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도 개인의 욕망은 충분히 만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 노동자는 상품의 구매자로서 시장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상품[노동력]의 판매자로서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의 가격을 최저한으로 제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모순. 자본주의적 생산이 그의 있는 힘을 모두 발휘하고 있는 시기는 항상 과잉생산의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가치의 생산뿐 아니라 가치의 실현이 생산력의 사용에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의 판매, 상품자본 따라서 또 잉여가치의 실현은 사회 일반의 소비 욕망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 대다수가 항상 가난하고 또 항상 가난한 채로 있지 않을 수 없는 소비 수요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다.

– 『자본론』 Ⅱ (2015년 개역판) 389쪽의 각주

이러한 체제가 계속되는 한 청년들의 삶은 결코 개선되지 않을 뿐더러 삶의 고통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는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며 상황을 악화시키고만 있다. ‘소확행’ 따위의 환상을 되풀이하여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기만은 잠깐이다. ‘소확행’에 속지 말자. 유행어에 휩쓸리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문제를 냉철히 짚고서 반자본주의를 주장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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