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간부, 삼성 위해 탄원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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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작년 촛불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의 즉각적인 퇴진과 함께 외친 구호가 ‘이재용 구속’과 ‘재벌 해체’였다.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는 박근혜정권의 최대 후원자이며 수혜자가 바로 삼성자본이었으며, 한국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삼성 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재벌이라는 이유에서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는 구속되었지만 이재용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이것은 삼성 이재용을 단죄할만큼 운동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 과거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사법부가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 삼성과 유착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문건의 발견

이재용 석방 이후 최순실과 박근혜의 법정 공방과 이명박의 구속으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다스 소송비 대납을 위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공작 관련 문건 6,000여 건을 발견했다. 이 문서에는 무노조의 신화를 이어가던 삼성그룹 내에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염호석 열사의 부친을 매수한 일, 노동조합이 강력했던 서비스센터를 위장폐업하여 노동조합을 와해시킨 정황, 조합원에 대한 사찰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삼성은 민주노조가 삼성그룹 내에 들어서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삼성그룹 차원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에 대한 와해공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자본가가 민주노조를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걸림돌로 여긴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문제는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공작에 나서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진정에 대해 불법의 소지가 있다는 일선 고용지청의 의견을 노동부가 뒤집은 사실이 밝혀졌다. 노동부가 직접 나서 삼성의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는데 조력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논란이 크게 일었던 2014년 블라인드 교섭 당시 경찰이 삼성 측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장충기 문자에서도 드러났듯이 삼성의 장학생들이 부패한 이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가를 위해 탄원서를 쓰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다

삼성과 그의 장학생들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한 일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속노조 간부인 조건준이 노동조합 파괴공작을 벌였던 책임자인, 그래서 당연히 투쟁해야 할 대상일 따름인 삼성 임원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이다. 민주노총 내에서 강력한 규율과 조직력을 자랑하던 금속노조의 상근간부가, 자본가의 충실한 하수인이 법정구속될 것을 염려하여 탄원서를 낸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조건준에게는 이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를 지냈던 조합원이 퇴사하면서 서비스센터에 금품을 요구하는 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건준은 반복해서 민주노조의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조건준은 민주노조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고 특수한 관계인 삼성과의 노사관계에서 불가피한 전술이었다는 것이다.

탄원서 사건과 관련해서 금속노조는 신속하게 당사자를 면직처리했지만, 이런 처리에 대해 아무런 교훈도 없이 사건을 급하게 마무리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속노조 경기지부 임원들은 금속노조 징계위원회에 조건준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조건준의 행동이 불가피한 교섭전술, 따라서 커다란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매우 넓게 퍼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탄원서 사건을 신속한 면직으로 마무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했다. 이는 지금이라도 필요하다.

민주노조의 원칙인 민주주의의 실종

조건준은 탄원서 사건이 불거지고 비판이 일자 자신은 2014년 블라인드교섭 논란 이후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에서 손을 뗐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회의 전 부지회장이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과정을 중재하고, 노조파괴 문건 발견 이후 삼성의 직접고용 선언 과정에도 개입했던 것이 밝혀져, 탄원서 사건에 대한 그의 해명을 신뢰하기 어렵게 한다. 조건준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누구와 협의해서 이런 일을 했는지에 대한 소명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2014년 블라인드교섭 당시처럼 모든 것이 비밀에 갇혀 있다.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정보의 조건 없는 공개와 토론, 조직적인 결정이 되어야 한다. 정보를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가공할 수 없고, 소수의 집행간부나 위원장이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역사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면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지켜온 과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만이 노동조합이 범할 수 있는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권조인이 횡행하던 80년대엔 교섭체결에 대한 승인 권한을 조합원 총회에 두는 방식으로 규약을 개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탄원서 사건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민주주의의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정보는 소수에게만 공개되었고, 논의 과정과 결정에서 조합원들은 소외되었고, 토론은커녕 이견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중요성은 그저 당위가 아니다.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움직인다면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자신과 노동조합의 미래를 조합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그 구성원인 조합원은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토론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의한다. 그러나 소수가 그 결정권한을 모두 가져가면 조합원은 지침에만 따르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더욱 심각한 건 이렇게 불철저한 민주주의를 몸에 익힌 노동자는 똑같이 관료화의 길을 걷고 말아 노동조합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원천봉쇄하게 된다.

개인적 인맥, 자본가계급의 또 다른 노동자 지배 방식

개인적 인맥을 이용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태도는 조직의 집단적 힘을 무력화시키고 개인의 관료화를 부추긴다. 민주적인 정보의 공유와 토론과정이 생략되면서 노동조합은 자본가권력에 의해 점지(點指) 받은 사람의 입만 쳐다보는 구조로 내몰리게 된다. 당연히 모든 정보는 그 개인의 판단에 의해 가공될 수밖에 없고, 결정과정 또한 개인의 판단과 결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점차 그 개인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커지고, 노동조합의 미래가 개인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한 구조가 안정화되면 조직은 급속하게 관료화된다. 현실적으로 모든 권한이 개인과 소수에게 강제로 위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과 조직의 관료화에만 비판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본가권력과의 개인적 인맥은 바로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는 자본의 노동자 지배 구조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이번 탄원서의 경우, 해당 삼성전자 임원이 없으면 이후 지회의 정규직화 관련 협상이 열리지 못할 것을 염려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노동조합의 상태에 비유하자면 위원장이 공석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대화(협상)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지 그 협상의 대표가 누구냐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삼성이 대화할 의지가 있었다면 다른 임원을 협상 대표로 선출해서 충분히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개인에게 집착할까? 자본가가 대화와 협상의 창구로 특정 개인을 지목하고 그 개인과만 대화와 협상을 진행한다고 나온다면, 그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노동조합의 조직적 저항과 투쟁을 사전에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반면 그 개인은 소영웅주의에 빠져 스스로 조직력을 훼손하게 되어 자본가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결과를 얻는다.

노동자 민주주의로 다시 투쟁하자

삼성의 노조탄압 문건 발견은 어떤 개인의 인맥을 통한 협상력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물러서지 않는 단호한 투쟁이 만든 결과이다. 문건이 발견되면서 삼성은 무노조신화가 깨질까 두려웠고, 그 돌파구로 조건준 개인을 이용했을 뿐이다. 2016년 겨울 이재용 구속, 재벌해체를 주장하면서 거리를 가득 메웠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위장폐업과 갖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그 이전의 수많았던 노동조합 무력화 사례들처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도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수세에 몰린 삼성이 스스로 협상의 문을 연 지금, 노동조합에게 필요한 것은 단단한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투쟁력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투쟁의 결과가 개인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수렴되도록 노동자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오직 노동자 민주주의만이 승리를 보장한다. 자본가계급의 독재가 잔인하게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쉬운 길로 가는 것은 패배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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