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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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주소성리 공동상황실 텔레그램 채널]

[편집자 설명] 이 글은 기간제 교사 노동자이자 르포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분숙 동지의 글이다. 서분숙 동지는 소성리 사드반대 투쟁에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데, 현재 소성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하여 기고를 해주었다. 이 글은 문재인 정권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하고 있다. 『사회주의자』 편집위원회는 이 글의 배경이 되는 몇 가지 점들을 설명하여 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 2016년 7월 13일 성주에 사드배치가 공식 발표되고 그후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로 성주 소성리가 제3부지로 결정되어 2017년 4월 26일과 9월 7일 사드포대를 실제 배치한 이래, 소성리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배치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해왔다.

– 문재인은 2017년 5월 대선 이전에는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인 송영길 의원이 3월 30일 성주를 방문해서, 주민들에게 “당선 이후 바로 특사를 파견해 사드 배치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 그러나 이 약속은 선거 시기 사드반대 진영을 자기 진영에 붙잡아 두려는 정치공학에 불과했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외교부장관 강경화는 6월 25일 사드배치가 “한미동맹에 따른 약속이며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고 말했고, 문재인이 직접 한 인터뷰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는 게 사드 배치 결정을 연기하거나 번복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이것은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 역시 미국에 예속적인 정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드배치를 위한 적절한 핑계와 시기만을 기다리던 문재인은, 북한이 작년 7월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실시하자 “환경영향평가”라는 허울을 벗어 던지고 사드배치를 전격 결정했다. 이때 붙은 “임시”라는 형용사는 사실 모든 이가 아는 거짓말에 불과했다.

– 문재인 정권의 위선적 태도는 4월 들어 극에 달했다. 작년 9월 8일 문재인은 대통령입장을 발표하여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한반도 정세는 급변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이어 3월 6일에는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하였고 드디어 오늘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된다. 더욱이 북한은 4월 20일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 중단을 선포했다. 더 이상 사드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분위기가 형성되자 오히려 정권은 정상회담이 한창 준비되는 와중에 주둔부대 시설공사에 박차를 가하며 철저히 사드 알박기에 나섰다.

판문점에서 한반도 평화가 논의되는 바로 그때 소성리 주민은 경찰의 폭력 아래 놓인 현실,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 이상 근거가 없고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사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지난 해 가을에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 조영삼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이,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2017년 9월 19일 오후 4시경의 일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고층 건물의 야외 테라스에서 그는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붙였습니다. 늦게 낳은 아들이 이제 겨우 중학생이라던데, 경남 밀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산다던데, 이제 인생 좀 즐기면서 누리면서 살아도 좋은 나이인데, 예순을 목전에 둔 그의 죽음이 안타깝고 애타는 세간의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장지인 경남 밀양시 밀양성당 추모관으로 가기 전, 경북 성주읍 소성리에서는 고 조영삼 선생을 위한 노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밀양으로 가기 전, 유족들과 문상객들에게 따뜻한 국밥이라도 실컷 먹이고 보내자고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는 가마솥 두 개가 걸렸습니다. 살아생전 서로 얼굴한 번 마주 한 적 없는 낯선 이들이었지만 죽은 뒤 오히려 인연이 단단하게 맺혀 버린 고 조영삼과 소성리 사람들, 그렇습니다. 조영삼 선생은 경북 성주읍 소성리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사드가 배치되는 걸 반대했습니다. 그 뜻을 이룰 사람이 문재인이라 여겼고 2017년 5월 대선 때는 그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문재인이 당선된 후 성주 소성리의 주민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드 배치 안되는구나.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사드배치 안된다고, 소성리에 있는 군부대도 철수하고 이미 들여온 공사 장비들도 몽땅 가져가겠구나, 그러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조영삼 선생도 그렇게 대통령을 믿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에 걸려 넘어졌나요? 철썩 같이 믿었던 그 약속, 밀양에서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송전탑 건설 안한다고, 밀양과 청와대를, 그 먼 거리를 오가며 문재인을 대통령 만든다고 애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밀양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그 사람은,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마자 밀양 땅에 송전탑이 세워진다는 걸 공공연한 사실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밀양 사람들의 표현대로 ‘가녀린 희망을 무참히 꺾어 버린’ 그는 설날에 밀양에 선물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언젠가는 소성리에 선물을 보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소성리에서도 밀양처럼 그의 선물이 개봉되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문재인이 당선된 후 성주 소성리의 주민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드 배치 안되는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에 걸려 넘어졌나요?

 

2017년 9월 7일, 8천여 명의 병력이 소성리에 들어왔습니다. 소성리는 산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자궁처럼 한가득 달마산이 마을을 품고 있는 형세인데 그 자궁 같은 마을이 병력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50여명의 주민들이 다치고 수십 대의 차들이 부서지고, 무엇보다 얼마나 오래 갈지, 어쩌면 평생을 안고 살 깊은 상처를 사람들의 마음에 던진 채 문재인 정부의 소성리 진압작전은 끝이 났습니다. 병력들에 의해 부서진 살림살이들로 소성리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거대한 탑을 세웠습니다. 이 마을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 탑을 만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문재인 정부가 행한 파괴의 행위, 그 상징이 되어버린 이 탑은 지난 겨울이 다 가고 다시 봄이 오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져 있습니다.

고 조영삼 선생의 유해가 모셔진 경남 밀양성당 추모관에서는 한눈에 밀양시 전경이 다 내려다보입니다. 유서에 쓰인 대로 ‘이 세상의 소풍을 마친’ 선생을 그곳에 모셔두고 다시 성주 소성리로 돌아온 날, 사람들은 밤이 가고 새벽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뚝뚝 떨어지듯 미끄러져 내려온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9월 7일에 어떻게라도 소성리에 병력이 들어오는 걸 막아냈더라면 그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팔천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다 막노? 문재인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명박이나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똑 같은 놈들이라 카이.

안타까운 죽음은 늘 죽음의 원인을 찾고 또 찾습니다. 고인이 되어버린 조영삼 선생의 모습은 소성리 마을 회관 앞 집회장 담벼락에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가을과 겨울이 갔고 봄이 되어 나무가 꽃을 피우고 또 떨구는 동안에 고 조영삼 선생의 모습도 소성리의 산천처럼 깊어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절망스러웠던 사람, 그러나 죽어서라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빌겠다던 사람, 그가 내건 마지막 희망은 사드를 소성리에서, 아니 이 땅에서 걷어치우라는 염원이었습니다.

[사진: 성주소성리 공동상황실 텔레그램 채널]

2018년 4월 12일, 다시 병력이 소성리에 들어 왔습니다. 조용필이 ‘그 겨울의 찻집’을 평양에서 불렀던 며칠 뒤의 일입니다. 레드 벨벳인가 하는 젊은 가수들은 평양의 공연장 무대를 폴짝폴짝 뛰어 다니며 춤을 췄다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남북 평화 교류라고 했습니다. 소성리에 군시설 공사 차량 출입을 막던 사람들에게 다시 수천 명의 병력을 보내 부수고 때리고 끌어내던 그때, 레드 벨벳과 조용필을 향해 남북평화 교류를 이뤘다고 칭송하는,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소성리에 군시설 공사 차량 출입을 막던 사람들에게 다시 수천 명의 병력을 보내 부수고 때리고 끌어내던 그때,

레드 벨벳과 조용필을 향해 남북평화 교류를 이뤘다고 칭송하는,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성리를 장악한 인민군 부대는 마을 한가운데에 빵공장을 세웠습니다. 소성리는 인민군들의 식량 공급기지였습니다. 소성리의 어른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 ‘먹을 것이 필요했으니 마을 사람들 데려다가 빵을 만들었을 뿐 해코지를 하고 그러진 않았다’고 말씀은 그리 하시지만 곧 국군이 들이 닥치면 어찌 할꼬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소성리에서 읍내 쪽으로 나가는 길에 산속으로 난 길로 걸어 들어가면 인적 없는 골짜기에 제법 너른 평지가 나옵니다. 빵공장을 세울 만큼 기세 좋던 인민군도 국군에게 밀려 나가고 인민군을 돕던 마을 사람들인지, 아니면 외지에서 끌려온 또 누구였는지, 이곳으로 끌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 채 수북한 주검들이 낙엽처럼 이곳에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남편이었거나 아들이었을 사람들, 빨갱이 가족으로 몰리면 남아있는 식구들조차도 살아갈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 가족을 잃고도 한평생을 벙어리 속앓이만 하던 시절이 이곳 소성리에는 스며들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수면위로 끌어 올린다는 건 여전히 두렵고 아픈 일입니다. ‘모른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고만 말하는 마을의 어르신들도 그때나 지금이나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살았지만 ‘지금이 젤로 힘들다, 이렇게 마을을 부수고 사람을 깔아뭉개고 이런 일은 여즉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고 말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분명 다릅니다. 그 시절은 속절없이 목숨을 빼앗겼지만 지금은 미군과 경찰 병력에 맞서 싸웁니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으면 미군 차량도 돌아가야만 하는 소성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 점령한 땅, 미국에 종속된 권력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미군과 정부의 병력에 맞서 싸웁니다. 이곳 소성리에서는 트럼프의 군대가 함부로 마을길을 밟을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으면 미군 차량도 돌아가야만 하는 소성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 점령한 땅, 미국에 종속된 권력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미군과 정부의 병력에 맞서 싸웁니다.

 

올 가을 벌초 때는 아무 탈 없이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요? 수십 년째 자리한 조상들의 무덤 옆으로 사드 발사대가 세워졌습니다. 사드가 들어온 후, 벌초하러 가던 길은 멀고도 어려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싸움은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들여다 보내줄 수 없다던 군인과 경찰들, 왜 갈 수 없냐고, 수십 년 돌보던 조상들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왜 막고 있느냐고, 한 시간, 두 시간, 싸우다가 기다리다가 한참을 겨룬 끝에 겨우 산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사진: 성주소성리 공동상황실 텔레그램 채널]

무장한 군인들이 앞뒤로 서 있는 그 사이를 포로처럼 한 줄로 서서 풀이 무성한 숲길을 더듬어 무덤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철망이 있으니 저 길로 돌아가라, 이 길은 안 되니 저 길로 돌아가라, 사드라는 무기가 땅의 주인이 되어버린 길이었습니다. 전쟁 포로처럼 무장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조상들의 무덤에 풀을 베고 소주한잔 올리던 지난 해 벌초, 조상들께 기도하듯 읊조리던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할매, 할배, 우짜든지 내년에는 아무 탈 없이 벌초하러 올 수 있게 해주이소,’

 

소성리에는 여전히 평화가 오지 않았고 이곳의 통일은 여전히 사드에 묶여 있습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살펴보는 오늘의 날씨처럼 언제 또 병력이 투입될 거라는 소문은 소성리에서는 날씨 같은 근심이 되었습니다. 성주에 사드를 몰고 온 지 햇수로 삼년이 되는 올 해, 그러고 보니 성주로 맨 처음 달려왔던 해고 노동자들도 삼 년째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복직을 향한 농성을 하며 소성리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향한 싸움을 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제 일터의 주인이 되는 일이 평화와 통일의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평화와 통일입니까. 남북 평화 통일이라는 말이 미세먼지처럼 거리를 덮는 봄날입니다. 소성리에는 여전히 평화가 오지 않았고 이곳의 통일은 여전히 사드에 묶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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