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자살과 불편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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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지하철노동조합]

11월 16일 오후, 서울지하철(현 교통공사) 군자기지 차량사업소에서 검수지원업무를 하던 무기계약직 노동자(36세)가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과 함께 고인이 숨진 자택을 방문하였던 같은 소속의 동료가 경찰의 참고인 조사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전하면, 고인은 사업장내에서 진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쟁에 대해 심적인 압박과 답답함을 주변에 호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인 진술 내용은 경찰관계자에 의해 고인의 가족에게도 전달됐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노동조합이 인지하였다면 지하철 사업장 주변은 시끄러워질 터이고 조합원들도 안타깝고 서러운 죽음 앞에 정성어린 애도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데, 세상은 너무도 조용한 상태다.

한 죽음과 더불어 하나하나 삭제되고 있는 직원 소통방의 글들

필자는 『사회주의자』의 11월 1일자 기사, 「서울지하철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노동자가 함께 가자」에서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신입사원 중심의 정규직과 안전, 일반 업무직으로 분류되는 무기계약직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일부 선배 정규직 노동자들의 견해를 전했고,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일부 신규직원과 정규직화 논의 관련 노사, 노-노-노 협의(통합공사에는 3개의 복수노조가 있음)의 일주체인 지하철노동조합에 바라는 바를 글로 적었다.

최근, 지하철 사업장 내에서 정규직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특정인 몇몇을 ‘김일성주의자’로 이미지화하여 게재한 게시글도 있다(현재 삭제상태). 이 글은 온전한 정규직화를 주장하는 조합원이나 노동조합 간부, 그리고 차별을 두자는 입장을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노동조합 간부의 이름을 특정하고 김일성의 사진을 뒷배경으로 배치한 글로 통합공사 내 직원소통방에 올라왔다. 이렇듯 정규직화를 둘러 싼 논쟁은 이제 결코 논쟁이라 할 수 없는 ‘일부진영을 향한 마녀사냥’로 바뀌고 있었다.

[사진: 사회주의자]

물론 이런 갈등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고인께서 생을 달리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교통공사 내부망의 소통방에 올라왔던 ‘민감하고도 노골적인’ 정규직화 반대 입장의 글들이 어느새 삭제되고 있다고 한다. 온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동지들은 ‘이런’ 글들을 미리 미리 캡처해 두고 향후의 마찰에 대비해야 했을 정도로, 인격적인 비하나 수치, 모멸감이 인내의 수준을 넘었다. 직원 소통방에서 문제가 되는 글들이 삭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인의 죽음을 둘러 싼 진상이나 갈등이 외부로 여론화되는 것을 차단하자는 의도라고 읽힌다.

죽음에 침묵하며 정규직화 논의를 조속하게 종결을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들을 의아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하철 사업장 내의 이러한 갈등관계가 주요 신문이나 매체에도 자주 소개되고 있었는데, 정작 이번 무기계약직 동지의 죽음은 거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하철노조가 10월 23일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중간보고회 및 공청회”에서 노사, 노-노-노 간의 논의 수준을 공개했을 뿐, 관련한 제반논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관련된 죽음에 대하여 ‘보도자료’ 하나 나오고 있지 않다.

노동조합이 발표한 애도문 중에는 “정규직화 관련 노사협의가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이와 같은 일이 생겨”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사 간, 노동조합 간, 조합원 간 갈등이 첨예하여 관련 논의가 파행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조합원들 보기에는 뜬금없는 내용이다. 혹여나 무기계약직 동지의 사망을 계기로 정규직화 협의를 조속하게 ‘종결’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하는, 그리고 협의의 종결 수준은 사규에도 없는 ‘직급 외 직급’을 신설하자는 차별적인 정규직화에서 일부 절충하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들이 많다. 10월 19일 서울지하철노조 전체 간부들이 참여하는 ‘집행회의’에서 정규직 전환대상자들의 직급승진을 유예한다는 결정이 번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화 선언으로 정치적 성과만 취하려는 박원순 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규직’의 조건없는 정규직화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정규직화에 따른 임금예산 배정이나 직급편성 문제에 대하여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나고 사흘이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서울시장은 지난 7월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 정규직화 선언을 한 것만으로도 정치적 성과를 충분히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다른 한편 지하철 내부에서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노갈등이 무기계약직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동안, 참교육의 진지라던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의 시험대인 인천공항공사에서는 사측이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를 제시하여 비정규직 제로가 아닌 ‘정규직 제로’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서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절충하고 짜깁기된 정규직화안이 나오면, 서울시는 ‘예산편성 상’의 손해도 없을 것이고 박원순 시장 역시 다음 시장선거에서도 별로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끼리의 삿대질과 상처,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다

자신이 직접적인 손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 같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온전한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젊은 조합원들의 세력화, ‘노동조합 탈퇴’를 카드로 내밀며 정규직화 반대를 노동조합의 입장으로 내세우라는 이들 ‘공개채용’ 조합원들의 요구에 기껏 공청회나 토론회나 제공하면서 위계와 차별의 질서에 스스로 빠져들게 하는 노동조합의 행태, 그런 ‘토론마당’이 차별의 확산기제로 작동하고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제적인 평등 주장들은 거듭거듭 외면되는 현실, 극단으로 달리는 현장의 노노갈등, 그리고 “대화에는 상대가 있다”는 논리로 노-사, 노-노-노 간의 절충에 매달릴 줄만 알았지 실제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는 서울시장에게는 전혀 예봉을 겨누지 않는 현재 노동조합의 태도와 행동, 이것이 현재의 지하철 사업장의 상황이다.

노동자들의 삶은 궁핍화 되고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은 일상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것은 자본의 이윤창출 구조가 위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을 계속 생산해내기 위해 자본은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를 강제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본축적이 수월하던 70-80년대는 예비노동자들이 공무원이나 교원이라는 직업을 선호하지 않았던 ‘이상한’ 시절도 있었다. ‘고학력자들’과 ‘기술자’들에게, 그리고 도시로 몰려드는 이농인구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너른 고용시장이 형성되었던 그런 시기였다.

90년대 말 이후부터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질서로 전환하게 되는데 생산력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의 이윤율이 저하하고 ‘노동력’에 대한 착취가 고도화되었다. 자본주의 경쟁교육을 통해 배출된 고학력, 고스펙의 산업예비군들은 새벽의 ‘인력시장’에서 간택을 받는 일용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39살의 나이에 ‘마지막’ 고시에 패스하고 37의 나이에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기사를 보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민주노조’의 조합원들마저도 이런 자본이 강제한 질서에 갇혀 있다.

서울지하철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문제는 정확히 자본주의의 문제다. 자본주의의 이윤창출 위기와 자본주의 경쟁교육이 구워낸 노동자들끼리의 삿대질이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이다. 지하철의 정규직화 논쟁과 투쟁이 이것을 바꾸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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