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배신자는 어떻게 경사노위 위원장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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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더미래연구소]

노사정위에서 경사노위로 간판만 바꾼 사회적 대화기구

1월 28일 민주노총에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이른바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대의원대회가 열린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재 민주노총 집행부를 책임지고 있는 김명환 위원장이 경사노위 참여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이미 지난 2017년 민주노총 선거 기간부터 사회적 대화 참여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가령 2017년 11월 19일 국민TV 초청 선거토론회에서 당시 후보였던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에 국회 대표를 더한 ‘신8인회의’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 제시했다. 이것은 한국노총이 이미 제안한 8인회의를 일부 수정한 제안에 불과했다.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진 이래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이후 계속 들어가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된 양보를 정당화하는 기구이자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을 관철시키는 기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도 노사정위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도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문재인은 후보시절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집권 이후에는 실제로 새로운 대화기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진영, 특히 민주노총을 대화기구에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김명환 위원장이 위원장 후보 때 내놓은 주장은 사실 이런 문재인 정권의 입장과 그 궤를 크게 달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2018년 1월 11일 문성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존 노사정위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꾸릴 것이고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이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들어선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애초 그것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수용했고 그 결과 1월 31일 노사정 6자회의가 열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2018년 6월 12일 노사정위법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으로 전면개정되어 11월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했다.

쉽게 말해 정부는 간판 바꾸고 인테리어 새로 했으니 이번에는 들어오라는 것이다. 만약 문재인 정권이 촛불투쟁의 요구를 받아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였다면, 이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법이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먹혔을지 모른다. 촛불투쟁 이후 문재인이 집권하면서 상당수 노동자 민중은 문재인 정권에 대해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애초 촛불투쟁의 요구를 수행하기 어려운 계급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자본가 정권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권이었다. 이런 정권의 한계는 2018년 본격화됐다. 특히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5월 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이 이뤄지면서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노사정 6자회의 불참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문재인 정권의 반노동 정책은 노골화됐다. 심지어 경사노위 출범을 앞둔 11월 초에는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하여 스스로 계급적 실체를 드러냈다. 이렇다 보니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이에서 사회적 대화를 위해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성현, 노동운동의 배신자가 경사노위 위원장이 되다

아무리 간판을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경사노위가 노동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한편 그것을 ‘타협’으로 포장하는 기구에 불과하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경사노위에 관한 한 수구, 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자본가 계급 전체가 합심해 지지를 보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극명한 증거는 바로 주류 언론의 태도이다. 민주노총에 대한 경사노위 참여 압박은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 한겨레, 경향 등 자유주의 언론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작년 12월 5일 자유주의 『경향신문』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인터뷰 “노동 양극화가 모든 문제 근원…노조도 ‘격차 해소’ 논의를”」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12월 23일에는 수구 『신동아』가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민노총 투쟁하려면 오지 말라, 미련 없다”」는 제목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마지막으로 한겨레는 아예 「“민주노총, ‘국민 밉상’ 된 것 아니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란 제목의 김명환 위원장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압박했다.

정권 입장에서는 작년 말부터 수출감소 등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자본을 위해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을 뿐 아니라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뭔가 성과물을 만들고 있다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이것은 언론 등을 통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경제사회노동위원장 문성현이다.

① 자본의 “돌아온 탕아”가 되기까지

문재인 정권 들어 노동운동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해 노동자의 양보를 종용하고 이를 통해 자본의 이해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부쩍 활개를 치고 있다. 이것을 일러 “돌아온 탕아” 수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과거 나쁜 길에 들어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를 망쳤는데 이제는 회개를 해서 올바른 길로 되돌아 왔다는 식인 것이다. 이때 과거 나쁜 길은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고 올바른 길은 자본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고 잘 타협·양보하는 것이다.

과거 대우자동차 노조에서 활동했던 경력을 내세우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가 그것의 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노동운동 출신이라고 해도 급수가 있는 법이다. 홍영표는 노동운동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잠시의 경험을 부풀려 이용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홍영표를 두고 노동운동을 배신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성현은 다르다. 그는 초창기 민주노조운동에서 적잖은 역할과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 자신이 했던 일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자본의 대변인으로까지 타락했다. 노동운동 배신자의 표본이 된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경동교회에서 야학활동을 했고, 1980년 동양기계에 입사했다. 동양기계는 1982년 통일교재단에 인수되어 (주)통일이 되었고, 공장이 창원공단으로 이전됐다(현재 사명은 S&T중공업이다). 1984년 (주)통일 노동조합 사무국장이 되었다가 1985년 위원장이 되었는데, 위원장이 된지 두 달도 채 안되어 구속 해고됐다. 그 후에는 경남노동자협의회(경노협) 의장,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전노협 부위원장, 사무총장,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 등을 지냈다.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 통합하여 만든 통합진보당에까지 계속 머무르며 2012년 총선까지 출마했다. 그 후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후 완전히 자유주의 세력 편에 붙어 2012년 대선에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일자리혁신위원장을 지냈고, 2017년 대선에서는 과거 노동운동 출신 인사들을 모아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회연대노동포럼을 만들었다. 이렇게 문재인 당선을 위해 온 몸을 내던진 데에 대한 보답으로 2017년 8월 노사정위원장에 임명됐다. 이제 노동자에게 양보를 뜯어내어 자본에게 바치는 과제가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

② 부풀려지고 왜곡된 과거 경력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돌아온 탕아”들은 대개가 과거 자신의 전력을 부풀린다. ‘나쁜 길’에 있었던 자기 과거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그것을 대단하게 포장해야 지금의 변신에 더 큰 극적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성현도 마찬가지다. 주류 언론에서 그를 소개하는 기사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의 경력은 왜곡되고 부풀려진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여러 언론의 약력 소개에는 그가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전태일 평전』은 1983년 초판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과 그가 남긴 일기가 문성현의 청년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그의 노동운동 시작을 『전태일 평전』과 연결시키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다(이런 내용이 담긴 기사가 계속 게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성현 측이 내용 정정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문전투”라는 별명에 대한 것이다. 스스로 자기 별명이 “문전투”였다고 하고 언론역시 “문전투”란 별명을 선호한다. 앞서 말한 극적 효과를 노린 탓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오래 해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문전투”란 별명은 생소한 것이다. 만약 “문전투”라는 별명이 있었다면 그렇게 불릴만한 시기 자체가 매우 짧다. 왜냐하면 문성현은 스스로 과거 매우 전투적 노동운동을 했던 것처럼 포장하지만 199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이미 투쟁성과는 거리가 먼 활동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단심”이란 별명도 마찬가지다. “문단심”은 문성현, 단병호, 심상정의 성을 따서 만든 별명인데 문성현과 언론은 마치 자신이 노동운동에서 대단한 지도자였던 것처럼 보이려고 이 별명을 들먹인다. 그러나 “문단심”은 사실 관료화되고 타협주의로 치닫는 ‘중앙파’라는 민주노총 내 세력의 우두머리들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조롱 섞인 별명이었다. 스스로 사용하기 꺼려야 할 별명조차 자신의 과거를 포장하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다.

③ 사상없는 운동, 타락과 퇴보가 배신으로 치닫다

문성현은 본인 스스로 “어느 순간부터 투쟁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때가 대략 1999년 무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전부터 투쟁보다는 타협으로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엄혹한 시절, 그리고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시절에는 시대적 조건 상 대부분의 민주노조 활동가들이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당시 성장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에는 노동자들이 사회변혁의 주체로 서야한다는 정치적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문성현은 노동자들을 변혁의 주체로 세우는 문제는 거부하고 노동조합 틀 안의 활동에만 머물렀다. 그 결과 전투성이 가미된 노동조합주의는 어느새 실리와 타협의 노동조합주의로 변해버렸다.

노동자 사상이 없는 운동은 결국 계속된 타락과 퇴보로 이어졌다. 노동운동에서조차 밀려나자 그때서야 민주노동당에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라는 운동적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늦게나마 정당 안에서 자기 자리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던 정파인 ‘중앙파’가 아닌 NL 자민통 계열의 지지를 받아 민주노동당 대표가 되었다. 문성현 스스로도 2018년 11월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운동에서도 중앙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신이 변방으로 밀려났다고 보는 이유라는 게 참으로 속물적이다. 그는 “금속노조위원장 하다가 민주노총 위원장 해야 하는데 못했다는 게 변방에 간 거 아니겠냐”고 말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출세와 자리 차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타락과 퇴보가 계속되고 일상화되다보니 자유주의세력에 빌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통합진보당도 민주대연합을 추구하면서 자유주의세력과 일상적 연대를 하는데, 자유주의세력에 아예 붙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였던 것이다. 운동이 퇴보하자 서울대 출신 학연, 자기 사건을 변호해줬던 문재인과의 과거 인연 등도 정치적 행보에 크게 작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문재인 편에 붙은 이유를 2017년 10월 30일 서울대 비정규직 대상 강연에서 이렇게 밝힌다. “2012년이 이 양반(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나간다고 해서 제가 먼저 찾아갔다. “당신이 꼭 대통령 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되면 노동운동이 해결하지 못한 비정규직 문제를 같이 풀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옆에서 돕는 역할 하겠다.” 내가 그때부터 대통령 만드는 길에 나섰다.” 그가 주도해서 2017년 노동운동 배신자들을 모아 만든 사회연대노동포럼은 “주체적인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차선으로 자유주의 정당과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며 자신의 길이 ‘차선’임을 강변했다. 그러나 위 강연의 발언으로 비추어볼 때, 자유주의세력에 붙은 것이 차선이라기보다는 주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위 강연 발언 역시 자신과 문재인을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 본인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는 정치세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을 늘어놓지만, 사실 문재인 이전 자유주의 정권 자체가 비정규직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언이다. 이제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정책의 실상은 다 드러났다. 심지어 문성현이 강연했던 서울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 여태껏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는 정규직 전환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지난 1월 16일에는 전국대학노조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규직 전환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동운동 배신자와 단절하는 운동 기풍이 생겨야 한다

2017년 8월 문성현이 노사정위원장이 되자 자본과 수구세력은 문성현의 임명을 부정적으로 봤다. 민주노총 출신을 노사정위원장에 임명해 노사정위가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재계의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자본과 수구세력 어디에서도 문성현에 대한 비판은 보기 어려워졌다. 문성현이 자기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주류 언론이 하나같이 문성현과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 내용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변하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압박하는 것이다.

심지어 문성현은 자유한국당에게도 따뜻한 대우를 받았다. 민주노총 출신 노사정위원장이 국회에 출석하면 날 서린 질문과 공격이 가해질 법도 한데 그게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은 작년 7월 25일 국회 환노위 업무보고 때 문성현에게 “민주노총에 정말 진심 어린 조언을 해 달라”는 질문을 했고, 문성현은 그에 대해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지금처럼 근로자 간 격차를 확대하고 심화시키고 구조화하는 거라면 나는 노동운동을 안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만약 자신이 정말 과거에 잘못된 노동운동을 했다면 그것에 반성하고 조용히 사는 것이 상식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문성현은 자신의 과거까지 부정하고 비난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다니고 있다. 이런 속물적 태도의 저의가 민주노총을 공격해 자본의 이해를 충족시켜 주려는 것임은 분명하다.

사회적 대화의 실체는 문성현이 작년 5월 11일 국민일보와 한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자본(기업)은 변화와 개혁에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노동자가 먼저 고통 분담을 해나갈 때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며 기업가들도 설득하고 정부 역할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사노위가 과거 노사정위원회처럼 자본이나 정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대화기구라고 말해왔는데 실상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노동자 고통분담이 우선임이 문성현 스스로의 입으로 밝힌 것이다. 이러니 자본가들이 문성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성현이 노동운동을 배신하여 자본의 대변자가 되었고, 과거 노동운동 경력을 자본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 이용해먹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운동 안팎에는 문성현과 비슷한 부류의 세력들이 잔뜩 포진해서 노동운동을 흔들고 자유주의로의 투항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얼마 전까지 민주노총에서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낸 한석호는 비록 문성현의 행보에 직접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연대임금, ‘풀빵’ 정신, 사회적 대화 참여 등 문성현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김명환 위원장의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공약은 문재인 정권이나 문성현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양자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같은 흐름 속에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문성현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 가면서 노동자에게 자본에 투항하라고 종용하는 세력을 드러내고 그들과 단절하는 운동 기풍을 만드는 일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이 세력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적 적대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노동운동을 계속 타락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계급의식을 분명히 세우려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선을 분명히 세우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6 댓글

  1. 전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전태일평전에 관한 기사는 팩트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전태일평전을 처음 접했을 때가 1979년입니다. 물론 출판사에서 정식 인쇄된 것은 아니었지만요.
    아마 문위원장도 그 팜플렛으로 된 자료를 읽지 않았나싶군요.

      • 댓글 감사드립니다. 문성현이 대학을 졸업한 것은 1975년이고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경동교회 야학활동 등을 하며 노동운동과 관련된 운동을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제 글은 이런 초기 문성현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성현은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직접적 영향을 받았고 그가 남긴 글을 보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른바 ‘전태일 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후적 필요에 따라 자기 과거를 과장 윤색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 이미 평전이 83년이 아니라 70년대에 나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출판사에서 인쇄된 책자는 아니었지만… 제목 자체도 전태일 평전이었구요.

  2. 문성현이 이후에 잘못을 한것을 강하게 비판하는것은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과거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전태일평전 운운 부분은 이 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서 보다가 놀랐습니다. 차라리 삭제하시는게 필자의 논지에 더 부합할거라 보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개량이고 변절이어도 30년을 헌신한 것은 그리 쉽게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뭐라뭐라 반론하시겠지만, 대충 짐작이 가지만, 저 문성현이라는 자는 한명의 ‘혁명적사회주의자’ 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내고 남긴 사람입니다. 그걸 옹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부끄러운 현실이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 지금 문성현이 자기 과거를 팔아먹는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기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댓글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마 뭐라뭐라 또 물타기를 하시겠지만 아무리 30년을 헌신했어도 지금의 더러운 짓으로 그걸 다 뒤집는 잘못을 희석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여기서 문성현 은근슬쩍 옹호하는 댓글 다는 사람보단 사회주의자가 운동에 훨씬 더 많이 기여하는 것 같으니 부끄러움은 혼자 느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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