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연금을 만들기 위한 대안: 반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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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작년 12월 14일 정부의 국민연금개혁안이 발표되었다. 작년 8월 17일 국민연금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가 제4차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하며 내놓은 재정안정화에 무게를 둔(안)에 비해 국민연금 본래의 목적인 노후보장이 진전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애초의 자문위의 안은, 첫째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액의 비율)을 45%로 두고 보험료율은 현행 ‘소득의 9%’에서 내년 11%로 올리고 단계적으로 18%까지 올리는 방안, 둘째 소득대체율을 40%로 두고 내년부터 10년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까지 올리는 방안, 이 두 가지였다.

자문위안이 나오고 나서 이 안에 대한 여론이 정부에게 나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8월 27일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종합해 노후소득 강화,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정부안에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한 사항을 반영하여 정부는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4개의 안을 제시했다. 1안은 ‘현행유지’, 2안은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3안은 ‘보험료 12%, 소득대체율 45%’, 4안은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로 요약된다.

이러한 복지부의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 대하여 국내 300여개의 노동시민단체를 총망라하는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은 이번 안이 재정안정화론자들의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식의 방안이 제외되고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사각지대 해소 방안 일부 진전 등 노후소득보장 강화로 방향이 잡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책임성이 보이지 않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상충적 관계로 설정한 점 및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여전히 부족한 점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평가에 따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동시 강화를 통해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사각지대 해소, 퇴직연금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국민의 안정적 노후생활보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투쟁과제를 밝혔다.

이러한 평가는 상당한 부분 수긍이 간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제1차에서 제4차에 이르는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주로 재정안정화에 기반한 ‘더 내고, 덜 받는’ 신자유주의적 개악이었는데 반해 이번 정부안은 그것과는 다른 방향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하락과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의식해 당장 예산이 수반되지 않고 언제든지 무효화 할 수 있는 추상적 문구와 최소한의 예산으로 가능한 사각지대 보완책으로 노동자 민중들을 포섭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지속성 제고를 위한 보장성강화론(이하 보장성강화론)’으로 표현되는 연금행동의 주장 역시 국민연금에 관한 논의를 지배해 온 ‘재정안정화론’에 대한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재정안정화론에 반대해 나온 보장성강화론도 한계가 있다

우리가 연금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재정안정화론이 어떻게 대두되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재정안정화론의 대안으로 제출된 보장성강화론의 주장과 한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먼저 재정안정화론에 대하여 살펴보자. 필자는 몇 년 전 『연금투쟁평가와 사회보장요구 투쟁의 원칙』이란 글에서 재정안정화론의 등장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생산을 통한 자본의 이윤율의 확보가 한계에 봉착하자 전세계를 무대로 금융자본강화를 통한 이윤확보에 나섰다. 이를 위해 세계은행은 1994년 『고령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구시한폭탄’또는 ‘회색물결’이라는 일종의 공포전략을 제시하였다. 그 내용은 사회의 고령화가 노동인구 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 국가재정을 위협하고 후세대에게 극복 불가능한 짐을 지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연금을 민영화하고, 노후 위험에 대한 개인부담을 강화하는 것을 새로운 연금제도의 원칙으로 할 것을 전세계적으로 전파시켰다. 이는 공적, 사적 연기금을 통한 세계금융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구제금융차관권고안을 통해 파산가능성이 있는 기업연금에만 사용하던 ‘연금부채’ 개념을 국민연금에 적용하여 연금 재정불안을 야기했고, 공적연금을 축소하고 민간보험 시장을 넓히려 했다. 그러나 재정안정화론자들이 바라는 만큼 국민연금의 민영화가 진척되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은 각종언론을 통하여 ‘저부담-고급여’는 장기지속이 불가능하다 기금소진에 따라 연금을 미수령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유포하고, 고령화로 미래세대의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보험료를 올리거나 급여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즉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회적인 민영화전략을 구사했다. 결국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축소하고 대신 저소득층은 기초연금을 적용하고 중산층 이상은 민영퇴직연금 및 민영개인연금을 활성화하는 다층제 연금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정안정화론자들에 대하여 연금행동은 보장성강화론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연금행동에 정책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은선은, 연금행동이 발표한 「국민연금의 발전적 재구성」(2017년 6월 발표)이란 보고서에서 연금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서는 급여의 적절성 확보를 통한 국민연금제도의 본래의 기능회복이 필요하며, 제도의 재정 안정을 첫째 출산률, 경제성장률, 사회보험 가입률 등을 통한 사회지속성 기반확충, 둘째 보험료 등 직접수입 확충, 셋째 정부의 재정보조와 기금수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급여의 적절성 확보라는 긍정적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재정 안정을 위해 제시한 대안들은 사실상 자본주의 현실은 무시한 채 재정 안정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하더라도 주관적 바람에 그칠 수밖에 없다. 주은선의 출산율, 경제성장률,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여 재정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국가재정이 투입되어도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예컨대 출산율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6년부터 13년간 153조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으나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출산율이 악화된 이유는 무엇보다 민중의 삶이 악화된 데 있고 이것은 다시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면서 출산율을 높이면 된다는 식의 주장으로는 아무리 예산을 투입한다 한들 아이를 낳지 않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만성 침체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보험료 수입과 정부재정 관련 부분 역시 실제로 들어가면 기술적으로 법, 제도를 만든다고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과의 치열한 계급투쟁을 전개해야만 하는 문제다.

자본주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연금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재정안정화론자들이 연금 재정확보가 어렵다며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식으로 연금을 바꾸고 민영화와 금융화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노골적인 친자본 방식을 택했다면, 보장성강화론자들은 비록 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지만 이를 위한 재정 안정 방안에 가서는 자본주의 현실은 보지 않는 주관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사회보장이 필요한 원인은 노동자가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여 늘 곤궁하며 또한 사고나 질병, 노령, 장애 등에 대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자본가들의 착취에 저항하였고, 체제위협을 느낀 자본가들은 노동자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미약하나마 사회보장제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있은 직후인 1988년에 국민연금이 도입된 것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IMF 공황을 거치면서 세계 금융자본과 한국 자본가들은 알량한 공적연금마저도 민영화하려고 혈안이 되어 기금소진론을 대대적으로 양산하였고 그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노후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이와 함께 노후보장을 위한 많은 공공자산과 서비스가 시장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어 가뜩이나 불안한 노동자민중들의 노후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한편 수십 년간 계속된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외주화 등을 통하여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양산됐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취업이 폭증하게 됐고 대학진학경쟁과 취업경쟁이 전쟁판이 됐다. 이 힘든 세상에서 자식들을 기를 수 없어 젊은 세대는 아이들을 낳지 않게 됐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연금재정 고갈의 핵심적인 원인인 것이다. 즉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축적체제가 연금문제에서도 핵심 원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운영원리를 문제 삼지 않는 한 연금 문제의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자본주의 운영원리의 일부 보완을 통해서 연금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진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은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를 침해하는 원리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온전한 노후보장을 위해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한편에서는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노후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당면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도 자본주의를 문제 삼고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를 공격해야 한다. 후세대 부담론은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를 감추는 사기다, 오랜 기간 노동자 착취를 통해 쌓은 자본가들의 막대한 부를 노동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데 써야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연금문제와 관련된 당면 투쟁을 사회주의라는 궁극적 투쟁과 결합시켜야 한다. 현재 격렬한 모순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민중의 노후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해결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연금수급자들이 화폐를 지급받아 시장에서 생활에서 필요한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도구로 연금제도가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후보장에 필요한 핵심영역(주택, 의료 등)을 국공유화 함으로써 노후생활에 필요한 실물(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생계비용이 획기적으로 줄 수 있다. 또한 민영화를 막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과 비정규직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확장된 공적영역을 노동자민중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한다면 민주주의를 심화 발전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각성된 노동자들이 앞장서 반자본주의 투쟁을 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로 상징되는 프랑스 민중의 봉기가 자본주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미 프랑스 민중은 2010년 연금개악 관련 총파업을 하였으며 이번 봉기의 주요 이슈 중에는 연금세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노동자도 역사의 주체로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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